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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티메프 사태'를 겪었던 유통업계는 패닉에 빠졌다. 홈플러스 제휴업체들은 홈플러스 상품권 사용을 중단했고, 협력업체의 납품 중단이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혼란의 중심엔 홈플러스 대주주 MBK파트너스가 있다. 10년 전인 2015년 홈플러스의 대주주에 오른 MBK파트너스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던 걸까.



홈플러스가 지난 4일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사진｜뉴시스]


사금융대출기록 지난 2월까지만 해도 '홈플러스'는 마케팅에 열심이었다. 창립 28주년을 맞아 배우 김수현을 광고모델로 재발탁했고, 28일엔 2주간(3월 12일까지) 진행하는 대규모 할인행사 '홈플런 is back'을 시작했다.
그랬던 홈플러스가 논란의 도마에 오른 건 지난 4일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면서다. 홈플러스는 이날 새벽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 러시앤캐시 무직자 생절차 개시를 신청했고, 법원이 11시간 만에 받아들이면서 곧바로 기업회생절차를 시작했다.
홈플러스 측은 "올해 초 주요 신용평가사들이 단기 신용등급을 하향조정(A3→A3-)하면서 향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을 대비해 선제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했다"면서 "금융채권 상환은 유예되지만 협력업체와의 일반 상거래 채무는 정상 변제하고 임직 요양기관 원 급여도 정상적으로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회생절차가 진행되더라도 홈플러스의 운영엔 별다른 지장이 없다는 얘기다.[※참고: 지난 2월 28일 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는 홈플러스의 기업어음과 단기사채 신용등급을 각각 A3에서 A3-로 하향조정했다.]
하지만 시장의 시각은 그렇지 않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돌 장안평실매물 입한 직후 주요 신용평가사(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들은 홈플러스의 단기 신용등급을 기존 A3-에서 투기등급인 D로 낮춰 잡았다. 홈플러스가 사실상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다는 거다.
홈플러스의 신뢰도도 급락하고 있다. 외식 브랜드 빕스‧뚜레쥬르를 운영하는 CJ푸드빌, 영화관 CJ CGV, 신라면세점 등 주요 제휴업체는 홈플러스 상품권을 저금리상품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외식 브랜드 아웃백의 운영사 다이닝브랜즈그룹도 향후 상황을 지켜보고 제휴 중단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상품권 결제액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홈플러스가 사실상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다고 판단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홈플러스 측은 "현재 미사용 상품권 잔액은 400억~500억원 수준으로, 상품권은 100% 변제되는 일반 상거래 채권"이라고 밝혔지만 시장의 동요를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홈플러스에 제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의 이탈까지 이어지고 있어서다. 일례로 LG전자는 5일부터 홈플러스에 제품 납품을 일시 중단했다.
그만큼 MBK파트너스의 주장과는 달리 홈플러스의 위기는 깊고 심각해 보인다. 오래전부터 '나쁜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 징후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 징후➊ MBK파트너스 인수 = 홈플러스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새어나온 건 2015년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의 최대주주로 올라선 직후다. MBK파트너스는 영국 유통업체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 지분 100%를 사들였는데, 7조2000억원에 달하는 인수금액 중 4조원 이상을 차입금으로 조달해 논란을 일으켰다.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차입매수(LBO‧Leveraged BuyOut)'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측은 "MBK파트너스가 무리한 차입을 통해 홈플러스를 인수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고 강변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2015년 11월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을 줄줄이 강등했다.
홈플러스의 단기 신용등급을 A1에서 A2로 하향 조정한 나이스신용평가는 "인수금액의 상당 부분이 차입금으로 이뤄진 데다, 홈플러스가 차입의 주체가 되면서 재무 부담이 커졌다"고 꼬집었는데, 이는 끝내 현실이 됐다. 홈플러스의 부채비율은 MBK파트너스 인수 전인 2014년 151.8%에서 2024년 11월 1408.6%(한국기업평가)로 치솟았다.
■징후➋ 자산유동화 = 홈플러스가 주요 자산을 매각하는 '자산유동화' 정책을 펼친 것도 또다른 위기 징후였다. 팬데믹이 기승을 부린 2020년 이후 홈플러스의 위기는 더욱 깊어졌는데, 팬데믹 기간에 온라인 쇼핑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한 탓이었다. '비대면 국면'에서 쿠팡을 비롯한 이커머스 업체가 세력을 넓히기 시작한 것도 홈플러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도 홈플러스는 온라인 시장 대응이나 오프라인 사업 재투자에 소극적이었다. 되레 점포를 팔아 인수금융을 상환하는 데 주력했다. 신규 점포 출점은 2016년 파주운정점을 끝으로 중단했다. 몇몇 점포는 매각 후 재임차하는 '세일앤리스백(sale and lease back)' 방식으로 전환했다.



홈플러스 상품권을 받는 제휴사들이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알짜점포의 매각도 서슴지 않았다. 홈플러스 1호점인 대구점부터 안산점‧대전둔산점‧대전탄방점‧부산가야점‧해운대점 등이 도미노처럼 문을 닫았다. 이런 기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오는 7월에는 부천상동점이, 내년에는 서울 동대문점이 폐점을 앞두고 있다. 그 결과, 2015년 141개였던 홈플러스의 점포는 127개로 줄었다.
홈플러스의 강점으로 꼽혔던 알짜점포가 팔리자 본업의 경쟁력이 약해졌다. 2019년 7조3001억원이던 홈플러스의 매출액은 그 이후 4년 연속(2020~2023년) 6조원대에 머물렀다. 영업이익은 2021년 이후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3년간(2021~2023년) 누적 적자는 5930억원에 달한다.
점포 임차료 부담이 커지면서 리스 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23년 기준 홈플러스의 리스 부채는 3조8501억원이나 된다.[※참고: 홈플러스는 지난 4일 2024년 매출액이 7조462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지만 아직 공시 발표는 하지 않았다.]
■ 징후➌ 대표이사 교체 = 실적은 쪼그라들고 주요 자산을 잃었지만, 홈플러스의 낯선 선택은 계속 이어졌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1월 조주연 CMO(최고마케팅책임자)와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고 각자 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 인사는 홈플러스의 위기를 되레 부채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홈플러스가 선임한 조주연 대표는 한국맥도날드 대표(2016~2020년) 출신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파괴왕'이란 비판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조 대표가 맥도날드 대표 당시 수익성 위주의 전략을 펼쳤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았던 '맥런치' 서비스를 중단하고(2021년 재출시), 배달서비스인 '맥딜리버리'의 최소 주문금액을 지속적으로 인상한 이가 다름 아닌 그였다. 여기에 'MBK맨'인 김광일 대표까지 경영에 참여하면서 MBK파트너스가 적극적으로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나설 거란 전망이 나왔다.
실제로 홈플러스는 지난해 6월 비교적 알짜사업으로 꼽히는 'SSM(홈플러스익스프레스)' 사업부문의 분할 매각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인수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쿠팡‧알리익스프레스가 "인수 의사가 없다"며 못을 박아버렸기 때문이다. SSM 사업부문 매각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이처럼 홈플러스의 위기는 예견됐던 결과다. 10년 전 MBK파트너스가 막대한 빚으로 홈플러스를 인수했을 때부터 징후가 나타났다. 그렇다면 홈플러스의 '아닌 밤중에 회생신청'은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서지용 상명대(경영학) 교수는 "잠재적인 자금난을 예방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하는 건 이례적"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기업회생 절차를 밟으면 영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유통업계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협력사들과 신용거래가 어려워지고, 소비자도 불안감에 이용을 줄일 수 있다. 이런 우려에도 기업회생을 신청한 건 기업가치를 제고해 매각하는 방식이 어려워지자 부채를 탕감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MBK파트너스 측은 4일 입장문을 내고 "회생절차는 경영 정상화를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법정관리에 돌입한 만큼 비용 절감을 위한 점포‧인력 구조조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치고 빠지면 그만'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로선 기업회생이란 명분 뒤에서 손쉽게 비용절감을 꾀할 수 있다. 하지만 홈플러스에 종사하는 직원은 여전히 1만명이 넘고, 홈플러스를 선호하는 소비자도 숱하다. 홈플러스는 왜 이렇게 됐을까. '예견된 위기'를 통제하지 않은 이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