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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생이면 연세가 어찌 되더라. 익숙한 아버지 생년월일로, 고인이 지나온 생의 길이를 가늠하며 두 손을 앞에 모았다. 77세를 끝으로 용산 어느 집에서 숨졌을 할아버지. 흰 국화꽃으로 장식된 제단 위에 단출히 남은 명패. 까만 글씨로 단정히 적힌 이름 석 자. 태어났을 때 가족들이 고심해 지어줬을 것이며, 평생토록 불리고 또 불리었을 거였다.
1시간여 화장을 거쳐 한 줌 가루가 되어 떠나는 곳, 서울시립승화원. 이승과 인사하는 마지막 관문. 들어올 때부터 영정사진을 든 가족들의 행렬이 줄을 지었다. 뜨거운 눈물과 입김이 수많은 이들 넋을 위로하는 듯했다. 누군가는 할머니 아파트담보대출금리비교 뱅크하우스 였고 또 누군가는 아버지였으며 다른 누군가는 젊은 청년이었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이 다 그러한 배웅인 건 아녔다. 어떤 이는 지독히 혼자인듯했다.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이별을 슬퍼해 울어줄 사람도, 내 몸을 화장장까지 옮겨줄 이도, 국화꽃 한 송이 놓아줄 추모객도 하나 없었다.
다행히 조금은 외로운 이들이 떠나는 공무원 퇴직금 길을 함께해주는 제도가 있었다. 서울시가 2018년부터 시행 중인 '무연고 공영장례'다.
가족과 관계가 끊겼거나, 가족이 있어도 경제 사정이 어려워 장례를 치를 여력이 없는 이들. 그런 이들도 수의 하나쯤은 깔끔한 걸로 입고, 추모할 수 있게 자릴 마련해주는 거였다. 죽음이 너무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도록. 그해 5월 10일 첫 번째 무연 원금균등상환 계산 고 공영장례가 진행됐고, 2023년 기준으로 1218명이 그리 존엄하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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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사진 텅 빈 제대…술 한 잔 따라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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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이라 영하권으로 뚝 떨어진 추운 날이었다. 1월 13일 오전 9시 30분에 서울시립승화원에 도착했다. 화장장으로 향하던 오르막길. 까만 옷을 입은 유가족들이 분주히 오가는 광경이 자주 보였다. 입가에서 피어 대부중개업 오르는 입김, 그게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르는 경계선처럼 보였다.

이날 공영장례를 치를 고인은 모두 세 명이었다. 1948년생 박성귀님, 1959년생 이춘근님, 1966년생 송원배님. 지난해 11월과 12월에 모두 돌아가신 이들이었다. 2층으로 가니 '그리다'란 이름의 빈소가 마련돼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섰다. 공영장례를 돕는 임예원 나눔과나눔 팀장이 있었다. 차분히 인사를 나누었다.
무채색 국화꽃이 제대 양쪽에 하얗게 폈다. 고인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었다. 사진은 텅 비었고 틀만 있었다. 양옆엔 파스텔톤 꽃장식이 화사했다.
향의 끄트머리를 두 손으로 잡고, 일렁이는 촛불에 향의 머리를 가만히 놓아두었다. 몇 초가 흐른 뒤 뒤로 빼니 벌겋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삽시간에 향 내음이 빈소를 가득 메웠다. 혹자는 향 피우는 일이 고인을 부르는 일이라 했다. 향로에 꽂으니 툭툭, 하고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생을 등진 이들과 그날 처음 만나, 마지막 길을 함께 하는 일이라니. 어쩐지 더 귀하게 느껴졌다. 정중히 인사하고, 뭇국으로 마지막 한 끼 식사하고 가실 수 있게, 숟가락을 그릇 옆에 두었다. 고갤 숙이고 가만히 기다렸다. 국물 한 숟갈 천천히 떠서 먹기를, 온기 채워지기를 바라며.
무릎을 꿇고 술 한 잔을 따랐다. 받은 술잔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세 바퀴 돌렸다. 술을 따숩게 하고 나쁜 기운을 제거하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한 잔 드시도록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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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미련일랑 다 접어두고"…국화꽃 한 송이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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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사(弔辭)를 읽어주시겠어요?"

임예원 팀장의 말에 조사가 적힌 종이를 받아서 들었다. 한 분, 한 분의 성함을 다시 부르며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잊을 수 없을 듯한 생생한 기억들을 배웅하며 진심으로 떠나보냅니다. 그런 당신을 그리워하며 기억하며…이 세상 미련일랑 다 접어두고 잘 가시라, 국화꽃 한 송이 올려놓으며 빌고 또 빌어봅니다."
'안녕히 잘 가십시오. 불가에서는 삶은 고통이라 하지요. 사느라 살아내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정 추모의 과정을 함께하며, 속으로 되뇌고 명복을 비는 말들이 이랬다. 태어난 곳도 모르고, 살아온 날들도 모르고, 어떻게 떠났는지도 다 모르지만 어느샌가 그런 건 중요하지 않게 됐다.



얼굴도 모르는 이지만, 같은 시절에 숨 쉬고 살았었단 것. 그 모양은 달랐겠으나, 이리저리 흔들렸을 것이며 그럼에도 잘 살기 위해 노력했을 거란 것.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 모두 죽는단 절대 명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러기에 가는 길 조금은 더 든든하게 함께하고 싶단 것. 단지 그뿐이었다.
이제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 제대에 놓을 시간이었다. 두 손으로 정중히 헌화한 뒤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어쩐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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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녀도 괜찮아…쪽방촌 함께 살던 이들 와서 추모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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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프거나 무겁진 않은, 적당한 무게와 온도. 장례 예식을 마친 느낌이 그랬다.

곁에서 고인 세 분을 잘 보내드리려 고생한, 임예원 나눔과나눔 팀장도 인상 깊은 얘길했다.
"장례식을 대개 무겁고 힘들고 슬픈 이미지로 많이 생각하시는데요. 또는 힘든 일이네요, 좋은 일 하시네요, 이런 말씀을 많이들 하시거든요. 근데 그런 인식보단, 어떻게 보면 누군가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일이잖아요. 마음의 위로를 해드리는 것이기도 해서, 뿌듯하고 좀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타인의 죽음을 함께하는 일이지만, 내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을 마무리할 것인가. 그런 걸 생각하는 계기도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니 비단 가족이 아녀도 괜찮은 거라고, 실제 누구든 공영장례에 추모하러 올 수 있다고 했다.



이날 고인 세 분 중 한 분은 쪽방촌에서 살던 이라고 했다. 이 경우에, 함께 쪽방촌에서 살던 이웃들이 다 같이 빈소에 와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추모하는 경우도 있었단다. 여전히 장례를 치르는 기준이 혈연 우선이지만, 이리 공동체가 장례를 치러준단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고.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했다.
빈소의 한쪽 벽에 붙은 종이는, 이름 모를 한 아가를 위한 거기도 했다. 거기엔 이리 적혀 있었다.
'아가야, 너의 두 발로 이 땅을 걸어보지 못했다고 서러워 말아라. 너의 숨은 영원하고 너의 빛은 이름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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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석 자를 끝으로…생의 흔적을 다 태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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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화장할 차례였다. 고인의 시신이 승화원에 운구되길 기다렸다. 흰 장갑을 끼고 바깥에서 기다렸다. 검고 기다란 운구 차량이 속속 들어왔다. 영정사진이 앞서고 울음과 한숨이 뒤따랐다. 이젠 정말 끝이란 생각에 다들 그랬을 거였다.

송영배 님의 위패를 들고 기다렸다. 김포에서 출발한 고인의 관이, 차가 막혀 조금 늦는다고 했다. 잠시 뒤 기다랗고 까만 운구차가 도착했고, 서울시 공영장례를 위탁하는 해피엔딩 장례지도사들이 관을 들 준비를 했다.
"위패가 앞장서서 가는 거예요. 혼이 먼저 가고 육신이 따라가는 거라고도 볼 수 있지요."
임예원 팀장의 안내에 따라 위패를 들고 앞에서 걸어갔다. 송영배 님의 관이 뒤따랐다. 14번 화장장에 옮겨졌고, 관계자들이 끝으로 위패와 이름을 확인했다.



화장장에 들어가는 고인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했다. 허릴 90도로 굽히는 순간에,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1시간 20분이 지난 뒤 그는 한 줌 가루가 되어 나왔다. 가족을 못 찾은 이들은 무연고 추모 센터에 5년간 모시고, 위임받은 무연고자들은 유택 동산에 유골을 뿌린다고 했다.
아직 뜨끈한 유골을 들고 유택 동산으로 향했다. 예를 갖추어 뿌린 뒤, 이름 석 자가 적힌 위패 종이를 꺼내었다.
불을 붙이는 순간 화르르, 송영배란 이름 석 자가 끝에서부터 타들어 갔다.
"영배님, 영배님." 아주 바스라져서 재가 되기 전에, 얼굴도 모르는 이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원 없이 불러주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