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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는 최초 인류인 아담과 하와가 처음 옷을 입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선악과를 먹은 직후 가장 먼저 옷을 만들었다. 인간에게 자의식이 생기고 역사가 태동하는 순간, 원단의 역사도 시작됐다.
무화과나무 잎과 같은 자연 재료에서 시작된 원단의 역사는 문명과 더불어 쉼 없이 발전해 왔다.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며 정교하게 짜인 그 형태처럼 인류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인류 최초의 원단은 마였다. 마의 식물 줄기로 짰다. 아마에서 뽑아낸 아마포(리넨)는 기원전 7000년 조각이 발견될 정도로 역사가 깊다. 이집트 계급사회에서 아마포는 그 자체로 신분증이었다. 파라 실효금리 오 미라는 아마포로 감쌌다.
로마제국 전통의상 토가의 원단은 리넨과 비단이었다. 어떤 원단의 의상을 입느냐가 그의 지위를 보여줬다. 누에고치에서 뽑은 비단은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를 냈다. 한 올의 실이 세계사를 바꿨다.
중세 유럽에서 모직은 ‘부의 척도’였다. 금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됐다. 하지만 서민들은 여전히 마 주택청약종합통장 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원단은 동·서양 무역로를 잇는 첫 번째 무역품이었다. 중국에서 유럽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는 더 좋은 옷을 입고자 하는 유럽 귀족들의 욕망을 투영한다. 길은 동서양의 문화 교류를 촉진했고, 종교사까지 송두리째 바꿨다. 인류사를 다시 썼다.
14세기 이탈리아의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유럽 무역의 채권형펀드 중심지였다. 베네치아 길드는 실크로드를 통해 들여온 실크 직조 기술을 현지화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직조 기술은 유출한 자를 사형에 처할 정도로 엄격히 보호받는 산업 기술이었다. 베네치아 부(富)의 3분의 1은 원단산업에서 창출됐다. 이 원단을 거래하기 위해 신용장과 선물계약이 등장했다. ‘현대 금융의 모태’다 .
16~17세기 프랑스와 sc은행 영국이 직조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하자 패권이 움직였다. 루이 14세의 ‘리옹 실크’는 원단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국가 정책이었다. 영국이 산업혁명 기술로 면직물 대량생산을 가장 먼저 시작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원단의 패권을 잡는 자가 세계 경제를 주도했다. 오늘날 명품으로 불리는 원단이 대부분 유럽산인 것은 오랫동안 경쟁하며 쌓아 올린 기술력이 있기 개인사업자대출 때문이다.
18세기 영국 산업혁명은 그 자체로 원단의 역사다. 맨체스터의 면직물 공장은 근대 공장 시스템의 출발점이다. 면직물이 대량 생산되자 일반 대중도 양질의 원단으로 만든 옷을 입을 수 있게 됐다. 누구든 괜찮은 옷을 입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입은 옷만으로 신분을 알 수 있는 시대는 저물었다.
현대에 들어와 수많은 기능성 원단이 쏟아졌다. 그 힘을 빌려 인간은 에베레스트산에 올랐다. 신체의 한계를 극복해나가고 있다. 원단과 의류는 기능을 넘어 나를 드러내는,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패션산업이 부흥했다. TPO(시간·장소·상황에 맞게 옷을 입는 것) 개념도 등장했다.



로로피아나 2025/2026 가을겨울 컬렉션 (모델 사진), 제냐 원단으로 만든 목도리


럭셔리 빚은 명품 원단…제냐·로로피아나, 닿는 순간 다르다최고급 원단사의 비밀
14세기 유럽에서 원단 거래 시장이 태동했지만 본격적으로 ‘명품 원단’의 노하우가 쌓이기 시작한 건 20세기 들어서다. 18~19세기 산업혁명 과정에서 발달된 기술이 양복 수요 증가와 함께 발전해 ‘3대 원단’을 비롯한 명품이 탄생했다. 영국과 이탈리아가 원단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두 나라는 일찌감치 최상급 양모와 캐시미어 등 천연섬유 시장의 공급망을 장악했다. 철저한 가족 경영을 통해 자체 기술 유출을 방지하고 품질을 통제했다.
세계 3대 원단사로는 에르메네질도제냐(이탈리아), 로로피아나(이탈리아), 스카발(영국)을 꼽는다. 비탈레바르베리스카노니코(이탈리아), 도멜(영국), 콜롬보(이탈리아) 등도 최고의 원단사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물 차이가 만든 원단의 질감



명품 원단은 공통된 특징이 있다. 우선 최고급 원료다. 100수, 150수 이상의 가늘고 부드러운 양모로 특유의 원단 질감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중앙아시아 등에서 생산되는 캐시미어 공급망을 쥐고 있다. 숙련된 생산 기술은 기본값이다. 직조 기술은 브랜드마다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는 노하우다. 다른 기업이 쉽게 아성을 넘지 못하는 것도 이런 기술 때문인데 업계에선 ‘기술과 예술의 경계’라고 표현한다. 여기에 각 원단사가 지키는 헤리티지(전통)가 더해져 브랜드 특유의 품격을 갖추게 된다.
에르메네질도제냐는 1910년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 트리베로에서 시작했다. 원단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인데 알프스 산맥에서 흘러나온 이탈리아 북부의 부드러운 물이 제냐 원단의 핵심 경쟁력이다.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서 원단산업이 발달한 것도 물의 영향이 크다. 세계대전을 거친 뒤 1950년대 이르러 제냐는 방적, 직조, 가공에 이르는 생산 과정을 모두 내재화했다. 철저한 품질 관리로 명품의 명성을 얻기 시작한 시점이다. 추후 제냐는 호주에 직접 양 목장을 운영하며 모든 생산 과정을 내재화했다. 제냐 고유의 자연스럽고 고급스러운 광택을 선호하는 마니아층이 두텁다. 제냐는 1990년대 들어 원단을 넘어 자체 패션 브랜드로 진화했다.
 공급망 장악→브랜드 확장
로로피아나도 1924년 이탈리아 북서부 작은 마을 콰로나에서 탄생했다. 제냐처럼 얇고 가는 양모와 캐시미어 등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로로피아나는 1960년대 들어 가족 경영 체제하에서 철저한 기술 통제를 시작했다. 부드럽고 가벼운 원단에 염색 기술을 더해 디자인 측면에서도 차별화에 성공했다. 오늘날 명품 원단 브랜드 가운데 가장 다양한 디자인 혁신을 이뤄낸 것도 이 시기부터 쌓아 올린 노하우 덕분이다. 로로피아나는 몽골 캐시미어 산지 공급망을 장악했는데, 어린 산양의 첫 솜털을 채취해 만든 초극세 섬유 등은 로로피아나의 원단을 최고급 반열에 올렸다. 2013년 프랑스 명품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에 편입되면서 위상은 더 높아졌다.
이탈리아 북부의 또 다른 유명 원단사 비탈레바르베리스카노니코(VBC)의 역사는 16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오래된 모직 원단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 대중 브랜드의 주요 원단 공급사로 자리매김했다.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1920년 나폴리에서 ‘임파라토’ 가문이 만든 아리스톤나폴리가 유명하다. 경쾌한 느낌의 원단이 특징이다. 이탈리아 북부보다 더운 남쪽 날씨 영향으로 리넨 등이 주력 제품이다.
영국 원단으로 가장 유명한 건 스카발과 홀랜드앤셰리다. 영국 원단은 통상 이탈리아 원단보다 내구성이 강하다. 홀랜드앤셰리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애용한 원단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