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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솔루션이 1500억원, DL케미칼이 2000억원의 실탄을 장전하면서 여천NCC가 당장의 부도는 피할 게 유력해졌다. "급한 불은 껐지만,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온다. 근본적으로는 한계산업에 직면한 석유화학 업계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천NCC가 처음부터 부실 기업은 아니었다. 여천NCC는 1999년 DL케미칼과 한화솔루션이 50대 50 지분으로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석유화학의 쌀'이라 불리는 에틸렌·프로필렌을 각 모회사에 공급해오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2017년에는 창사 이래 최대 영업이익 1조124억원을 기록하는 등 '알짜' 노릇을 했다. 설립 이후 두 모회사에 지급한 창업자금지원제도 배당금만 누적 약 4조4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중국이 범용 화학제품 저가 공세를 펼치면서 업황이 둔화했다. 중국의 에틸렌 생산 능력은 2019년 2700만 톤에서 지난해 5700만 톤까지 늘었다. 2028년까지 2200만톤 규모의 추가 증설도 예정돼 있다. 여수·대산·울산 등 국내 3대 석유화학 단지에 위치한 NCC(나프타분해설비) 실사진 10개가 어려움에 빠진 이유다.
여천NCC의 경우 2022년 적자전환한 뒤 매년 손실을 기록했다. 3년간 적자폭은 8200억원에 달한다. 올해 1분기에 49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여수 3공장의 NCC 설비를 멈춰세우기에 이르렀다. 지난 3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각각 1000억원씩 부담하는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인정이자원천징수 를 단행했지만 상황은 반전되지 않았다. '중국발 과잉 공급'이 상수가 된 시장 상황 속에서 NCC의 반등은 요원했다.



결국 이달 말까지 1800억원, 연말까지 3100억원 규모의 자금 투입이 이뤄지지 않으면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했다. 한화솔루션에 이어 DL케 주식담보대출한도 미칼 역시 추가 자금 지원을 결정하며 최악의 상황은 피하긴 했지만, 시장 환경이 달라진 것은 없다. 또다시 적자가 지속되다 보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DL 측은 "무작정 자금만 투입하는 것이야 말로 책임경영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부실문제를 미봉책으로 방치하기 보다는 해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환승센타 DL 측은 동시에 한화가 지나치게 싸게 에틸렌을 여천NCC로부터 공급받고 있다고 지적하며 "에틸렌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화 관계자는 "불공정한 거래 조건으로 인하여 불법적인 이득을 취하고 그로 인하여 여천NCC에 대하여 과세 처분이 내려지거나 부당지원 행위 등으로 법위반이 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맞섰다.
이같은 문제는 여천NCC에 국한된 게 아니다.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국내 주요 화학 기업들이 이미 적자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LG화학은 여수 NCC 2공장을 시장에 내놓은지 오래다. 최근에는 생명과학본부 산하 에스테틱 사업부를 매각하는 등 비주력 자산 매각에도 나섰다. 롯데케미칼 역시 수처리 사업을 정리하는 등 사업 재편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각 기업들은 기존 범용제품 중심에서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하는 한편 원가 절감 방안도 모색 중이다.
기업들의 체질 개선과 포트폴리오 전환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국가 기간산업인 석유화학이 구조적 어려움에 직면한 만큼, 정부가 과감한 구조조정을 주도해야 한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개별 기업들이 고부가 중심의 구조 전환을 추진하더라도, 에틸렌 등 범용 제품 공급은 국내 산업을 위해 어느정도 유지해야 하는 문제도 존재한다. 화학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자원 빈국이기에 범용 소재를 완전히 포기할 순 없다"며 "고통이 따르겠지만, 불가피한 구조조정을 위해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도균 기자 dkkim@mt.co.kr 최경민 기자 brow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