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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염원휘리 작성일25-08-1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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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내용으로 제작한 AI 이미지.


서울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는 '이건희 컬렉션'을 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이 전시회가 국립제주박물관에서도 열리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더불어 이 특별한 미술전람회에 함계룡건설 주식
께 갈 파트너가 있었다는 것도 나의 결심을 쉽게 만들었다. 고교 시절에 나의 제자였던 김성희가 서울에서 미술대학을 마치고 제주도에 돌아와서 독립 화실을 차리고 화가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옛날 제주 사람들처럼 동백꽃을 특히 좋아한다는 재원이었고 얼굴도 동백꽃처럼 불그스레 상기되어 보이는 것이 기억나는 제자였다. 미대 나온 제자와 함께 미술전시회를 함께대한과학 주식
구경간다는 것은 누가 봐도 가당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김성희에게 미술 방면의 기본 소양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이 전람회 전시작가들 중에 관심 가는 몇 사람의 작품세계를 미리 공부해 두기로 했다. 다만 나의 동반자가 여자라는 사실을 아내가 알지 못하도록 나는 아내에게만은 함구하고 있기로 했다.
나는 국립제주박물관에 직접 가서 세력주
전시회 티켓을 구입하는 수고를 했다. 서울지역에서 이 전람회가 대성황을 이루어서 현장에 갔다가 티켓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지방 전람회에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사전 예매방식을 쓴다는 얘기였다.
티켓을 구입한 다음 날 아침 나는 출근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의 직장인 **고등학교로 나온 다음에야 티켓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 생각났주식ARS
다. 그 티켓을 상의 호주머니에서부터 꺼내놓은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것을 어디에 간수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내가 그 티켓을 보았다면 이를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나는 진종일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 다음에 집에 들어갔는데, 아내는 별다른 내색이 없어서 내 마음은 더욱 조여들었다. 밤이 되어도 아내에게서는 티켓 이야핸드폰주식
기가 나오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티켓은 나의 책상 위에서 발견되었다. 티켓은 실로 아슬아슬하게 아내의 시선을 피한 셈이었고, 나는 결국 아내 몰래 비밀 데이트 계획을 초심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나의 계획은 치밀한 데가 있었다. 전람회 관람 날짜는 아내의 고교동창들 친목 모임에서 육지여행 가기로 예정된 날로 잡아두었으니 내가 전람회에 가는 것을 깜쪽같이 숨길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이건희 컬렉션'을 무대로 하는 나의 비밀 데이트는 보기 좋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내 동창들의 육지여행 계획은 무슨 사정 때문인지 무기 연기되었는데 이들 동창 모임에서는 육지여행 불발의 실망스러움을 달래기 위하여 부부동반 오찬 모임을 갖기로 했는데, 이 날이 바로 나의 비밀 데이트 약속 날짜라고 하였다. 그날 하루 동안의 스케줄 두 가지를 모두 소화하는 방향으로 묘안을 짜낼 수도 있겠지만, 차마 그렇게까지 하면서 아내를 속일 배짱은 나에게 없었다. 
나는 결국 부부간의 의리를 우선하기로 했는데, 때마침 나의 결심을 가벼운 마음으로 바꿀 수 있는 사정이 생겼다. 나의 비밀 데이트 동반자로 예정되었던 김성희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서울에서 관광 차 내려온 친구와 동행해야 하는 날이 바로 우리가 전시회에 가기로 약속한 날이라고 하였다. 나는 어떻게 나의 약속 변경을 변명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먼저 그런 말이 나오게 되어 천만다행이었다. 
하여간 나는 마음 편히 그날 하루를 즐기기로 결심을 굳히고 예정된 날을 기다렸다. 아내 동창들 간의 오찬이 끝난 다음에 '이건희 컬렉션' 관람을 즐기자는 말로 아내의 프라이드를 살려주기로 했다. 같은 날 같은 전람회에 친구와의 관람 계획이 잡혔다는 김성희와의 조우가 걱정거리로 대두되었지만, 그런 문제는 그날 운수에 맡기기로 하였다. 나는 이 전시회 관람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아내에게 안내 역할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 정보검색을 통하여 이건희 씨의 미술품 사회기증이 갖는 의미를 엿볼 수 있었고, 이를 기초로 아내에게 충실한 안내 멘트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업인 이건희 씨가 아무리 돈 많은 부자라 할지라도, 그가 개인적으로 소장했다가 국가사회에 기증한 국내외 유명 미술품들이 2만3천 점이라는 사실은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전국 각 지방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분산 소장하기로 했는데, 현재로선 이것들을 소장할 수장고가 부족할 정도라고 하였다. 
오찬 시간에 기분을 내고 커피를 두 잔이나 마신 탓인지 미술전시장 입구를 눈앞에 두고 나는 화장실에 급히 다녀와야 했다. 나이 들면서 얻은 배뇨장애 때문이었다. 바지 가랑이 적시기를 겨우 면한 창피한 마음으로 전시장 안으로 들어갈 때 나는 이곳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곳으로 들어갈 적격자가 못된다는 심히 자학적인 기분이 되고 있었다. 전람회장 안에 들어가 보니 아내는 전시실 저쪽 멀리에서 보였는데, 혼자가 아니고 어떤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하고 대형 미술작품 하나를 마주하여 서 있었다. 나는 그들 가까이로 선뜻 다가갈 기분이 되지 못해서 한동안 그대로 서서 전시장 안을 둘러볼 따름이었다. 잠시 후 내가 있는 쪽으로 아내가 시선을 보낼 참에 이르러서야 나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발을 옮길 수 있었다. 아내가 나보다는 훨씬 친화력이 있었다. 
--여보, 이 분이 우리집 큰아이가 다니는 학과 교수님이시래요. 인사하세요. --아, 사학과 교수님이십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교사 ***입니다.
쉽게 나대기 잘하는 아내의 경박한 버릇 덕분에 두 사람은 벌써 소탈한 말들이 친숙하게 나오는가 보았다. 나까지도 이들의 대화에 끼어들까 하다가 그냥 침묵을 지키기로 하였다. 서양미술사의 흐름에 대한 공부를 미리 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대학교수에게 나의 짧은 지식이 노출되는 것이 내키지 않았고, 오줌 지린 바지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었다. 나 대신에 미술작품 감상에 해설을 잘 해줄 사람이 있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은 전공이 미술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데 미술전공자 못지않게 많이도 아시네요.--미술사하고 인문학은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닙니다. 인문학이 주인이라면, 미술은 주인을 졸졸 따라다니는 시종과도 같으니까요. 
인문대학 박모 교수라는 사람은 미술사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은 모양이었지만, 우리 앞에서 꺼내는 말은 전시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해설보다는 여기에 소개된 작가들의 생애를 중심으로 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주된 내용이었다. 미술사 방면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으면서도 박 교수의 얘기에 대해 응대하는 말은 열심히 갖다 바치는 아내가 대견스러웠다. 교직에 있으면서 이해력이 한참 떨어지는 열등생을 많이 상대해본 나는 박 교수의 너그러운 아량에 감사하면서, 얌전한 열등생 역할에 충실하기로 하였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예술하는 사람들의 생애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도취와 환상에 젖은 기벽과 탈선으로 가득차 있다고 말하는 박 교수의 안내 멘트는 재미도 있었고,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도 무관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거짓말 위선자가 될 뻔했던 나는 결과적으로 내용이 풍성한 데이트 기회를 만든 셈이 되어 안도의 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불순한 동기에서 출발한 미술전시회 관람에 대해 주눅이 들었던 마음도 오늘 나에게 전개되는 운명을 즐기자는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지막 전시실은 서양화가들의 몫이었다. 이곳에 제일 먼저 들어선 사람이 나였고 내가 공부해 온 피카소 작품은 출입구 바로 다음에 걸려 있었다. 나는 피카소 작품 앞으로 다가가서 그 가까이로 시선을 갖다대었다. 내가 김성희와의 데이트에 대비하여 며칠 전에 대충 봐둔 작품이었다. 박 교수가 모처럼 나에게 말을 건 것도 나의 표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본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생님도 피카소 그림은 많이 보셨을 거 아닙니까. --워낙 유명한 화가여서 몇 개 보기는 했지만,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작가입니다. 
줄곧 침묵을 지키던 내가 한 마디 한 것이 박 교수에게는 뜻밖이었는지 이제까지와는 달리 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흥미있는 테마를 보여주는 작가라고 보지요. 제가 학생들에게 피카소 작품에 대해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제가 공부하는 인간역사를 바라보는 태도를 피카소 작품 감상하듯이 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피카소는 입체파 화풍의 선구자라고 하잖습니까. 인간행동이나 인간역사를 바라볼 때에는 입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입체파 화가 피카소의 입장인 것 같습니다.--저는 서양미술사에서 입체파 화가들이 왜 대단한 존재가 되는지 그걸 모르겠습니다.--알고 보면 단순한 얘깁니다. 사람 얼굴의 형체를 종이 위에 그릴 때에는 2차원의 평면밖에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3차원의 얼굴 모습, 그러니까 정면만이 아니라 측면과 이면까지 보여주지는 못하지 않습니까. 입체파 그림은 그것이 평면 위에 그린 것이면서도 3차원의 입체적인 사물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측면도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뜻이 입체파 피카소의 그림 속에 있다는 거지요. 인간역사도 마찬가지로 실지로 일어난 사건만이 아니라 일어날 뻔하다가 일어나지 않은 사건까지도 관심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역사 가르치는 제가 하는 말이지요.--그렇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들 속에서 아름답거나 오묘한 부분을 발견하고 보여주는 것이 화가가 해야할 일이 아닌가요. 사물의 정면만이 아니라 측면까지 보여주더라도 그곳에서 뭔가 아름다운 점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입체파 그림들은 흉물스럽기만 하고 기껏해야 신기하다는 느낌 밖에 들지 않는단 말입니다.--저는 그것이 입체파 그림의 메시지라고 생각됩니다. 조각조각 찢어발기진 인체의 모습이 예쁠 수 있겠습니까. 사람 얼굴이나 인간역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까발려 놓으면 보기가 흉물스러울 거 아닌가요. 선생님은 백남준이라는 사람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기괴한 행동을 연출하는 사람이 백남준이라는 말은 들어봤지요. 조명등을 깜빡거리거나 넥타이를 찢어발기는 걸 예술이라고 한다데요.--제 생각에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피카소의 입체파 미술에서 영감을 얻은 거 같습니다. 피카소의 그림은 2차원적인 평면 위에 입체적인 사물을 그렸으니까 정지된 사물 모습만을 나타낼 수 있지만,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정지된 3차원 세계만이 아니라, 시간이 가면서 움직이는 사물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니까 한 차원 더 높은 입체파인 거지요.--아무래도 저에게는 괴변만 같습니다. --피카소나 백남준 예술을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현실세계를 그냥 평면적으로만 보지 않고 상식적인 시선을 넘어서자는 것이 이 사람의 개성인 거지요. 반체제적이고 폭력적인 그런 특징이 있다는 것인데, 피카소가 평생 동안 공산당원이었음도 그의 폭력적인 개성을 보여준다는 거지요. 이 사람의 기발한 착상은 얼마 후에 추상화풍이 등장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등 서양미술사에는 커다란 족적을 남긴 셈이죠.
전시실 네 개를 가득 채운 미술품들을 둘러본 우리 세 사람은 지친 다리를 쉬고 싶어 앉을 자리를 찾아보았다. 출구 가까이 놓인 의자들 몇 개가 때마침 비어있었다. 박 교수와 아내는 더할 얘기가 있는 모양이었으나, 나는 전신에 피로가 몰려왔다. 박 교수의 알쏭달쏭한 해설 얘기가 소화 안 된 채로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멍하니 시선을 허공에 던진 나는 전시실을 나가는 관람자들의 면면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젊은이들이 대부분인데, 대개가 혼자가 아니라 두세 사람씩 짝을 지어서 온 것 같았다. 미술작품 감상이 목적이든, 우정 어린 동행 나들이가 목적이든 이곳은 아름다운 시절 청춘남녀들이 찾아올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김성희에게 데이트 신청을 넣은 것은 번짓수가 한참 어긋나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오늘 아내와의 데이트가 그런대로 성공작이 된 것은 김성희 덕분이었다. 김성희와 만나기 위해 준비해둔 미술사 공부가 아내에게 인정받는 기회가 된 것이 아닌가. 마냥 만족한 미소를 띠고 박 교수와 마주 앉은 아내를 보자 김성희의 볼그스레한 볼이 떠오르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당신도 미술감상 실력이 상당허셔. 우리도 앞으로 미술전람회 구경 많이 다닙시다. 
나는 아내가 건넨 한 마디 말을 듣고서 오늘 하루 일진이 무척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마터면 두고두고 후회할 실수를 범할 뻔 했는데, 그래도 나의 기본적인 양심을 인정받는 기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앞으로 언젠가는 아내에게도 오늘 스케줄의 비밀을 고백할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라는 상상까지 떠올랐다. 설마 아내가 화를 내지는 않을 터이고, 어쩌면 유쾌한 웃음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