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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5일, 1993년생 중국 단역배우 왕싱의 실종 소식이 중국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다. 타이(태국)에서 연락이 끊겼던 왕싱은 여자 친구의 빠른 신고 덕분에 며칠 뒤 미얀마에서 무사히 발견됐다. 삭발된 채 구출된 왕싱은 귀국 후 자신이 스캠(사기) 범죄 단지에 감금되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 이후 중국 전역에서 “내 가족도 미얀마에서 실종됐다”라는 제보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1월9일 한 누리꾼이 실 오르가 종자의 신상과 사연을 적을 수 있는 온라인 공유 문서(제목 ‘싱싱 귀가 계획’)를 만들어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에 공유했는데, 48시간 만에 실종 사연 1568건이 모였다. 소문으로만 존재했던 수많은 ‘왕싱’들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1568명의 ‘왕싱’ 중 대다수는 부채 이유 가 있거나 사업 실패 혹은 취업난을 겪는 청년 실업자였다. 해당 공유 문서는 현재 비공개로 전환됐다.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실종자들에게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 거의 남성이었다. 둘째, 16~40세이지만 이 중에서 특히 28세 이상인 경우가 많았다. 셋째, 출국한 계기는 ‘취업’ ‘여행’ ‘연애’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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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싱싱 귀가 계획’에 기록된 실종자들은 최근 한국에서 불거진 캄보디아 사태의 피해자들과 닮았다. 미얀마-타이 접경지에서 발생한 왕싱 납치 사건의 배후가 현재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범죄 조직과 동일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일자리를 미끼로 출국하도록 상대방을 유인하는 수법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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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캄보디아였을까?

징조는 나온 지 오래다. 5월19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동남아시아 전역에 퍼진 스캠 범죄 단지 안에서 발생한 강력범죄가 “인도주의적 위기 수준”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유엔 특별보호관은 전 세계에서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캄보디아·미얀마· 복합할부금융 라오스·필리핀·말레이시아 등에 감금되어 있다며 강력 비판했다. OHCHR는 해당 성명을 아세안·미얀마·캄보디아·중국·타이 그리고 한국 등에 전달했다.


동남아 스캠 범죄의 가담자 다수는 중국인으로 파악된다.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1990년대 타이완에서 유래한 스캠 범죄가 중국 푸젠성으로 옮겨 갔고, 이후 관광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던 필리핀·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들이 도박 사업을 허가하면서 스캠 범죄 조직의 활동 기반이 넓어졌다. 지리적 인접성으로 항공료가 낮다는 점도 스캠 산업이 동남아에서 확산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국면은 2019년 캄보디아 정부가 온라인 도박을 전면 금지하면서 전환됐다. 다수의 도박 업체가 스캠 센터 같은 범죄 산업으로 갈아탔다. 이들은 기숙사·식당·상점까지 갖춘 폐쇄형 ‘범죄 단지(국내에서는 ‘웬치’로 표기)’를 형성해 자급자족 구조를 갖췄다.


가상화폐 등장과 맞물리면서, 자금 세탁의 문턱이 낮아졌다. 불법 자금을 추적하는 일도 전보다 훨씬 번거로워졌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동남아 화교 송금을 주제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종호 서강대 교수는 “과거에도 불법 산업은 많았지만, 지금처럼 불법 자금을 양지화하기 쉬웠던 적은 없다. 이제 코인으로 1차 돈세탁을 하고, 싱가포르·두바이 같은 글로벌 허브에서 2·3차 세탁까지 하는 게 가능해졌다”라고 분석했다.


왜 하필 캄보디아였을까? 2024년 12월7일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13회 동아시아금융피해자교류회에서 타이완 사례 발표를 맡은 우쭝성 타이완 푸런 대학 교수는 동남아에서 사기 산업이 확대된 배경으로 “비교적 느슨한 거버넌스, 높은 인구 유동성, 중국 자본 유입, 카지노와 경제특구의 부상” 같은 요소를 꼽았다.


방대한 중국 자본이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캄보디아에 유입되면서 범죄 산업이 성행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캄보디아의 가장 큰 투자국이다. 동시에 캄보디아는 시진핑 주석이 추진해온 ‘현대판 실크로드’ 일대일로 사업의 열렬한 파트너이자 지지자이기도 하다. 타이완동남아학회 이사장을 지낸 천상마오 타이완 포광 대학 교수는 10월17일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캄보디아가 도박 산업으로 성공한 싱가포르를 모티브 삼아 관광산업을 육성하려던 때, 마침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시아누크빌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했다. 이때 중국인 약 8만명이 시아누크빌로 유입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캄보디아 스캠 산업과 일대일로 간의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은 섣부르다는 신중론도 있다. 캄보디아 연구자인 천스룬 중국 광저우 중산 대학 교수는 10월22일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으로 다소 빈약하다”라고 주장했다. “일대일로로 중국인이 캄보디아 경제특구에 유입되면서 도시가 빠르게 팽창했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 시아누크빌 거버넌스가 성숙해지는 속도가 도시 팽창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치안이 나빠졌다. 그렇다고 일대일로 사업으로 입국한 중국인 노동자가 모두 불법 산업에 빠졌다고 볼 수는 없다. (인과관계가 있다는 주장은) 이슈의 정치화가 아닐까?”


한편 캄보디아를 세습 통치해온 훈 센 가문이 범죄 활동을 눈감아주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캄보디아에서 30년째 거주 중인 익명의 선교사는 10월20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캄보디아는 동남아에서 손에 꼽히는 부패 국가다. 부패한 공무원이나 경찰이 사기 집단과 유착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천스룬 교수는 “훈 센이 범죄 조직의 배후에 있다는 확증은 아직 없다. 그러나 훈 센이 승인하지 않은 일은 캄보디아에서 실행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캄보디아는 올해 2월 훈 마네트 총리 산하 온라인 스캠 대응위원회(Committee to Combat Online Scams, CCOS)를 출범시켰지만, 위원회의 실효성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10월16일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 범죄 단지로 알려진 ‘태자단지’ 외벽에 철조망이 쳐져 있다. ⓒ연합뉴스



중국 현지 언론은 동남아에서 벌어지는 스캠 산업을 ‘현대판 노예제’에 비유하며 “범죄자들이 범죄 단지 안에서 현대적 법도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잡초처럼 성장했다”라며 비판했다. 이들의 주요 사기 수법은 ‘피그 부처링(Pig butchering·돼지 도살) 사기’이라고도 불린다. 돼지를 우선 배불리 살찌운 뒤 도축하는 것처럼, 미끼를 먼저 던져 상대를 유인한 후 범죄를 저지른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다.


이런 스캠 산업은 적극적인 폭력에 기대어 굴러가고 있다. “일단 상대를 이유 없이 구타한 다음, 인터넷으로 온라인 스캠 범죄를 저지르도록 강요한다. 반찬 없이 쌀밥만 제공하고, 사기 실적이 안 좋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폭행과 고문을 서슴지 않는다(국제앰네스티 보고서 ‘나는 누군가의 소유물이었다(I was someone else’s property)’ 피해자 증언).” 국제앰네스티가 만난 캄보디아 스캠 범죄 생존자 58명 가운데 미성년자도 9명 있었다. 가장 어린 생존자는 14세였다.


캄보디아 범죄 단지들의 건물은 철조망이 설치된 높은 담장으로 막혀 있었으며, 담장 곳곳에 감시용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국제앰네스티는 설명했다. 어떤 범죄 단지에서는 총기를 소지한 경비 인력이 순찰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자력 탈출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느슨한 네트워크로 구성된 이들의 총규모는 가늠하기 어렵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는 2023년 기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온라인 사기 범죄 피해자들의 경제적 손실액을 약 180억 달러에서 370억 달러로 추산했다. 한화로 약 25조8000억원에서 53조900억원 수준이다.

“타이완은 3~4년 전에 이미 겪은 일”

한국은 이 거대한 동남아 스캠 산업의 유일한 피해국이 아니다. 범죄자와 피해자 간의 언어 호환성이 좋을수록 범죄가 용이하기 때문에, 스캠 산업 초기에는 중국인·타이완인·말레이시아 화교·싱가포르 화교 등 중국어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이 범죄의 주요 표적이었다.


천상마오 교수는 최근 한국에서 이슈화된 캄보디아 범죄 피해에 대해 “한국은 타이완이 3~4년 전에 이미 겪은 일을 겪고 있다”라고 말했다. “과거 타이완에서도 캄보디아 취업 사기 건이 꽤 큰 이슈였다. 수법은 지금 한국 청년들이 겪는 것과 비슷하다. 타이완 청년들도 ‘캄보디아어, 영어 모두 몰라도 괜찮다. 돈 많이 준다, 비행기표와 숙식 모두 제공해준다’라는 구인 공고를 보고 캄보디아로 무작정 떠났다. 타이완 청년층의 극심한 취업난과 시기가 맞물려 이런 유혹이 청년들에게 잘 통했던 것 같다.” 천상마오 교수는 범죄임을 인지했음에도 캄보디아로 떠난 타이완 청년이 많았을 거라며 “위험한 줄 알면서도 ‘모험’을 택한 청년이 타이완에서만 최소 200~300명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타이완 정부는 캄보디아에 협조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 친중 국가인 캄보디아와의 외교관계상 제약이 구조적 한계로 작용했다. 천상마오 교수는 “캄보디아는 대표적인 친중 국가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력히 고수하는 나라다. 당시 타이완의 자체 외교 통로로는 캄보디아 정부와 직접 소통하기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캄보디아 내 구호단체나 현지 네트워크가 있는 타이완 상인들을 통해 피해자들을 구출했다”라고 설명했다.


타이완은 어쩔 수 없이 다른 해법을 택했다. 캄보디아 취업 스캠 범죄가 성행했던 2022년 전후 타이완은 해외 스캠에 관한 대국민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출국 게이트에 경찰 인력을 배치해 탑승객의 행선지와 출국 목적을 묻는 등 불시 검문을 진행했다. 천 교수는 “이제 타이완 사람들 사이에서 캄보디아 취업 공고는 ‘사기’로 간주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반면 중국은 캄보디아 정부와의 공조를 통해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캄보디아에서 자행되는 납치 사건에 관해 약 10년 전부터 캄보디아 경찰과 공조해왔다. 중국 공안을 캄보디아로 직접 파견해 현지 경찰과 협동작전을 펼치며 범죄 조직의 거점을 소탕하기도 했다. 2018년 12월 펼쳐진 한 작전에서는 중국 공안들이 캄보디아 경찰과 함께 캄보디아 스캠 사기 단지 네 곳을 급습해 용의자 233명을 체포하는 성과를 냈다. 당시 용의자 전원은 중국으로 송환됐다.


한국이 뒤늦게 캄보디아 스캠 조직의 새로운 표적이 된 것도 이러한 흐름 속에 있다. 천스룬 교수는 “해외 스캠 범죄에 관한 중국과 타이완의 경계심이 높아지면서 ‘옛 시장’의 성공률이 떨어졌을 것이다. 범죄 조직 입장에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과 타이완을 놓고 봤을 때, 한국을 ‘블루오션’으로 본 것이다”라고 말했다.




10월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캄보디아 내 한국인 범죄 피해와 관련된 문답이 오갔다. ⓒ연합뉴스



한국 정부의 대응 역시 이런 다른 아시아 국가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10월18일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한국인 피의자 64명이 송환된 직후 이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10월22일 기준, 이들 중 59명이 최종 구속되었고 5명이 석방된 상태다. 대규모 송환이 이뤄졌으나 한국 정부의 본격적 대응은 이제 막 시작 단계다.


한편 범죄 조직이 캄보디아에서 도주해 타이와 라오스 혹은 미얀마로 도주할 수 있다는, 범죄의 ‘풍선효과’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김종호 교수는 범죄가 발생한 국가가 캄보디아인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스캠 범죄 조직은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다. 이들이 만약 캄보디아를 떠나 미얀마 같은 나라로 옮겨 가면 큰일이다. 미얀마는 1948년 독립 이래 여태 내전이 끊이지 않은 나라다. 범죄 단지가 미얀마에서 주로 뿌리내리는 지역들은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지역 군벌들이 통제하는 구역이다. 만약 스캠 범죄 조직이 이런 곳으로 확산되면 문제를 해결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긴밀한 국제공조가 시급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 교수는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를 본 국가가 매우 많다. 어느 특정 국가나 민족을 가해자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가해자는 네트워크화한 글로벌 범죄 조직뿐이다. 피해국끼리 협조해서 범죄 자금이 양지화되는 고리부터 끊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10월24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5회 국제경찰청장회의를 계기로 국제공조 협의체를 발족시킬 계획이다.

문준영 기자 jun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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