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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60주년 기획-종교 지도자를 만나다
(1)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

“사람이 자기 것만 알면 우애 되겠노. 장님 코끼리 만지기밖에 더 되겠나.”
지난달 29일과 30일, 이틀에 걸쳐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성파(性坡·86) 스님을 만났다. 성파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최고 지도자인 종정(宗正)이다. 영축산 자락에는 가을이 성큼 들어와 있었다. 늘어선 장독대와 연못 사이로 가을꽃도 보였다.
오솔길을 올라 서운암 토굴로 갔다. 마주 앉은 성파 스님에게 물었다. 갈수록 거세어지는 세상의 풍파. 어떻게 헤쳐가야 할까. 성파 스님은 코끼리 이야기를 꺼내며 ‘눈과 체리마스터 공략
지혜’로 답했다.



성파 스님은 “마음공부를 왜 하나. 불 밝히려고 하는 거다. 어두운 인생길에 지혜의 불을 밝히려는 거다. 어리석은 마음을 지혜로운 마음으로 돌리기 위한 거다”고 말했다. 양산=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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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보는 여러 사람이 코끼리를 만졌다. 코 만진 사람, 다리 만진 사람, 꼬리 만진 사람. 다들 이야기가 다르다. 그뿐이 아니다. 자기 말만 옳다고 한다. 직접 만져봤으니까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게 이런 풍경과 똑 닮았다.”
Q : 한국 사회는 진영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침으로도 들린다. 그걸 뛰어넘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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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내 것만 볼 게 아니라 전체를 봐야 한다. 코끼리의 코나 다리, 꼬리만 볼 게 아니라 코끼리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어떡해야 하겠나. 눈을 떠야 한다. 전체를 보는 눈 말이다. 그렇게 ‘큰 눈’을 가져야 한다.” 성파 스님은 “사물을 보고 아는 것은 ‘육안(肉眼)’이다. 살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도 많다. 그바다이야기게임
걸 보는 눈은 ‘심안(心眼)’이다. 우리가 지혜롭게 살려면 마음의 눈도 떠야 한다”고 말했다.
Q : 마음의 눈, 쉬운 예를 들어 달라.
A : “가령 직장인이 퇴근해서 집에 가니 아내가 있다. 아내는 아무런 말이 없다. 대다수 남편이 정말 말이 없는 줄 안다. 그게 아니다. 아내는 말을 하고 있다. 소리가 없을 뿐이다에리트베이직 주식
.”
Q : 그런 소리를 어떻게 듣나.
A : “아내의 얼굴을 보면 된다. 거기에 아내의 마음이 적혀 있다. 얼굴이 곧 마음이다. 그런 식으로 글 없는 글을 읽고, 소리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럼 내 마음에서 거기에 맞는 대응이 나간다. 그게 지혜다.”



성파 스님이 통도사 장경각 앞에 서 있다. 성파 스님은 팔만대장경 전체를 직집 도자기 방식으로 제작해 1000년이 흘러도 변함이 없도록 만들었다. 양산=송봉근 기자


Q : 마음의 눈, 감고 살면 어찌 되나.
A : “누구나 인생이란 길을 걷지 않나. 마음의 눈을 감은 사람의 인생은 밤길이다. 앞이 캄캄하다. 이리저리 부딪치고 자꾸만 넘어지게 된다. 그래서 불을 켜야 한다. 그게 마음 공부다. 사람들은 지지고 볶는 세속에서 그게 쉽겠냐고 반문한다. 선방에선 밝히는데 아파트에서 못 밝힌다는 법이 있나. 승과 속이 둘이 아니다. 하나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성파 스님은 때로는 글로, 때로는 그림으로 깨달음을 표현한다. 그럴 때 글과 그림은 법문이 된다. 지난 6월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불이(不二)-깨달음과 아름다움’ 전시회(단체전)에 스님은 그림 넉 점을 내놓았다. 성파 스님 작품의 주제는 ‘우주’였다.
하루는 미국인 네 사람이 스님의 그림 앞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꼬박 한 시간 동안 뚫어지게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굉장한 충격이었을까, 아니면 전에 없던 감동이었을까. 알고 보니 그들은 한국 미술계를 탐방하던 하버드대 미대 교수들이었다.
작가가 스님이란 말을 듣고, 미국인 교수들은 조계종 총무원을 찾아가 수소문했다. 작가를 만나고 싶다고. 그들은 결국 통도사까지 내려갔다. 성파 스님을 만난 교수들은 세 가지 제안을 했다. “하버드대에서 초대전을 하고 싶다. 학계 거장들을 초청해 학술 세미나를 열고 싶다. 하버드대에서 작가 특강 자리를 갖고 싶다.”
그 말을 들은 성파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내가 화가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거기서 전시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는데. 이 사람들 이거 뭘 볼 줄 모르는 사람들 아이가?” 그 말을 들은 하버드대 교수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하버드대 교수들은 성파 스님의 전시회와 세미나 등을 추진 중이다.






성파 스님이 가나아트센터의 ‘불이-깨달음과 아름다움’ 전시에 내놓은 작품. 하버드대 미대 교수들은 이 그림 앞에서 한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서 있었다고 한다. 하버드대 교수들은 성파 스님의 하버드대 초청전과 학술세미나, 작가 툭강을 추진 중이다. 사진 가나아트센터


Q : 스님께선 작품에서 종종 ‘우주’를 다룬다. 왜 우주인가.
A : “사람들은 우주를 동경한다. 우주는 끝이 없다. 그런 무한의 자유를 동경한다. 그러면서도 우주에 닿기는 참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예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이미 우주 속에 들어가 있고, 우주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이다. 진리도 마찬가지다.”
Q : 진리는 어떤 식인가.
A : “누구는 진리가 멀다고 하고, 누구는 가깝다고 한다. 그런데 진리에는 원근(遠近·멀고 가까움)도 없고, 고금(古今·옛날과 지금)도 없다. 밖에서 따로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가 이미 그 속에 살고 있다. 그걸 몰라서 사람들은 진리를 동경한다. 그걸 깨우치면 어찌 되겠나. 날마다 좋은 날이다.” 지난 4일 개막한 청주 국제비엔날레에 내놓은 성파 스님의 특별전 작품은 더 충격적이다. 작품명이 ‘명명백백(明明白白)’이다. 폭 3m, 길이 100m짜리 통으로 된 한지를 몸소 만들었다. 그걸 200평 넘는 전시 공간에 빙 둘렀다. 작품 하나로 전시관 하나를 다 채운 셈이다. 전시장 입구에는 색깔 있는 한지 6개를 세워놓았다. 바닥에는 검정 카펫이 깔려 있다. 캄캄한 공간에 조명이 들어오면 영락없는 우주다.
“백지로 된 한지 전체는 공(空)이다. 거기에 점 하나라도 찍으면 베리는(망치는) 거라.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한지를 자세히 들여다봐라. 섬유질로 된 자잘한 보풀이 부지기수다. 그게 인도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다. 그 모두가 색(色)이다. 그게 전부 결집이 돼서 백지 한 장이 된다. 그러니 있음이 곧 없음이고, 없음이 곧 있음이다. 둘이 아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이 우주의 존재 원리다.”
성파 스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작품으로 풀어놓았다. 거기가 끝이 아니다. “관람객들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 좌선도 할 수 있다. 이 우주 속에 푹 잠겨서 물어보라. 나는 누구인가.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하나의 선방이 되면 좋겠다.”
법문이 따로 없다. 빚고, 칠하고, 깎고, 쌓는 게 모두 법문이다. 우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성파 스님께 양자역학을 물었다.



통도사 서운암에서 만난 성파 스님은 “티끌 같은 먼지 하나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마라. 하나를 뚫으면 온 우주가 뚫린다”고 말했다. 양산=송봉근 기자


Q : 현대 물리학도 우주의 존재 원리를 묻는다. 그 최전선에 있는 게 양자역학이다. 아직도 풀지 못한 양자역학의 화두가 있다. ‘입자인가, 파동인가.’ 물질의 본질, 우주의 본질이 입자인지, 아니면 파동인지 묻는 물음이다. 어찌 보나.
A : “입자도 색(色)이고, 파동도 색(色)이다. 사람들은 그것만 갖고 말한다. 눈에 보이는 형상, 귀에 들리는 소리만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너머를 봐야지. 저게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인 줄 모르나. 그 소리 너머를 들어야지. 그렇게 소리 없는 소리를 들어야지. 입자도 색이고, 파동도 색이지만 둘 다 바탕은 공(空)하다. 그걸 알아야지. 그래야 우주를 아는 거다. 명명백백하게 보는 거다.”
Q : 올해는 중앙일보 창간 60주년이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 달라.
A : “언출여전 불가경발(言出如箭 不可輕發) 일입인이 유력난발(一入人耳 有力難拔). ‘말이 나오매 화살과 같으니, 가히 가볍게 쏘지 마라. 한번 사람 귀에 박히면 아무리 힘이 있어도 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지도자부터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 언론사도 자극적인 말을 무작정 받아서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를 향해서 뿜어내는 독기에 사람들이 질식할 정도다.” 서운암 밖으로 나왔다. 독수리가 양 날개를 펼친 양, 영축산이 우뚝 서 있었다. 그 너머로 해가 떨어졌다. 새소리도 들리고, 풀벌레 소리도 들렸다. 성파 스님은 “소리 없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했다. 눈을 감았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몸을 비울 때, 무슨 소리가 들릴까. 어쩌면 그 소리야말로 우리의 삶이 귀 기울여야 하는 진짜 소리가 아닐까. 산 그림자가 서운암을 덮었다. 밤이 내렸다. 찌르르, 찌르르. 풀벌레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양산=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성파 스님=1939년 경남 합천 출생. 어려서부터 한학을 익혔다. 집에서 먼 곳으로 출가하고자 해인사 대신 통도사로 갔다. 30대 때 경봉 스님에게서 깨달음에 대한 인가를 받았다. 통도사 경내에 서운암을 세웠다. 옻칠로 고려와 조선 불화를 되살리고, 도자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등 왕성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이자 통도사 방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