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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은 국가무형유산 고성오광대놀이의 인간문화재다. 마당에 나설 때는 탈을 쓰고, 무대에 나설 때는 탈을 벗는다. 장단에 들려 공기를 밀며 꺼내는 그의 춤사위는 무(舞)이자 무(武)이다. ‘라운드테이블’ 이진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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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경남 창원의 성산아트홀. 장고가 덩! 하고 울리니 나도 몰래 발이 들린다. 아차! 출연자 눈에 띄면 정신 나간 사회자 아닌가. 애써 두 발을 바닥에 붙이고 꾹 눌렀다. 장고의 진동을 보퍼트의 풍력 계급에 대입하면 2등급인 남실바람 정도 된다. 10분간 평균 풍속이 초속 1.6~3.3m로 바람개비가 미동하고 나뭇잎 저소득자영업자대출 이 흔들린다. 얼굴에 밀려와 귀밑의 잔털을 건드리는, 나를 나부끼게 만드는 춤바람이다.
공연 후 로비에 나오니 이윤석(1949년생)이 있다. 객석에서 내내 남실바람에 부대꼈을 것이다. 춤추는 농사꾼, 떡 벌어진 골격에 어디를 가든 ‘시비 거는 놈 없는’ 사람이다. 다만 겁나는 것은 ‘비워 놓은 논밭’이다. 작물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장기적금이자 자라는데, 무시로 춤판에서 호출장을 보내온다. 출연이든 구경이든 판이 끝나면 두리번거릴 여가가 없다. “고성 가자!” 하며 함께 온 일행들과 앞장을 섰다. 내비게이션에 경남 고성군 마암면 도전리 명송마을을 찍었다.
고성 이윤석, 고성오광대놀이의 이윤석이 줄어든 호칭이다. 고성오광대놀이의 총무와 회장을 거쳐, 이제 명송마을 이장이다. 사람들 새마을금고중앙회 직무 은 여전히 고성을 호처럼 이름 앞에 붙여 부른다. 고성오광대놀이는 1974년부터 탈춤 전수를 시작해 50년간 4만명을 가르쳤다. 그 50년을 그가 함께했으니, 청년들에게 이윤석은 ‘청춘이란 영롱한 땀방울에 새겨진’ 이름이다. 나 역시 고성에 첫발을 디딜 때, 바람든 무처럼 속없는 춤바람이 들어 버렸다.
1989년 겨울, 전수회관에 100명 진건지구 이 넘는 대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탈춤 전수를 시작하기 전, 모두가 “이윤석 총무님!”을 외쳤다. 팔척장신에 툭 불거진 골격이 춤보다는 도축업에 종사하면 좋을 듯한 사내가 나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오느라 파카를 껴입어 실밥이 터질 것처럼 부푼 게, 흡사 마징가제트 같았다. 그런데 장단을 타고 뛰다 급작스레 솟구쳐 바닥에 박혔다. ‘배긴(박힌)다’해서 ‘배김새’ 동작인데, 그 기민한 일순간에 나는 덜컥 걸려들고 말았다.



고성오광대놀이보존회는 1974년부터 지금까지 여름과 겨울에 4만명 학생들에게 춤을 전수하였다. 50년 세월의 한가운데, 춤추는 농사꾼 이윤석이 있었다. 보라! 저 기하학적 기울기를. ‘라운드테이블’ 이진환 제공


비닐하우스에서 고랑 치우다 온 사내가 흙 묻은 채로 뛰어드는 춤. 화려한 무대에서 잠자리 속 날개 같은 의상의 춤이 줄 수 없는 흔듦이 있었다. 마치 국수를 삶아 찬물에 헹궈 한가닥 입에 넣었을 때의 맛이었다. 춤을 가르칠 때도 “야비하게 꼬지 말고, 고마 통으로 뽑아라!” 했다. 그가 출렁거리는 4박자 굿거리장단에 올라서면 흡입, 압축, 폭발, 배기의 네 사이클이 구동되었다. 그리고 학처럼 외발로 서서 장단을 흘려보내는 멈춤에 “얼씨구!”가 터졌다.
고성을 다녀오면 굿거리장단이 이명처럼 울렸다. 지하철을 기다릴 때는 속으로 ‘하나아, 두우울…’ 박자를 세며 승강장 끝에서 끝까지를 왕복했다. 순서를 헤아리다 열차가 섰다가 가는 줄 모른 채 걸었다. 아차! 역무원이 모니터로 보면 승객의 주머니를 노리는 소매치기 아닌가. 지하철 승강장의 시시티브이가 두려웠다.
고성을 오가면서 우리 춤의 핵심이 발걸음이란 것을 깨달았다. 춤뿐인가, 아이들이 제기차기나 고무줄놀이로 놀 듯, 우리는 발놀림의 민족이었다. 가까운 일본과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길가에 깡통이 뒹굴고 있다고 치자. 일본 아이들은 십중팔구 손으로 집어 던진다. 한국 아이들, 누가 집어 들겠는가? 열이면 열, 발로 찬다. 그래서 일본은 야구를 잘하고 한국은 축구를 잘한다. 싸움도 일본은 붙잡아 넘기는 유도요, 한국은 발로 차는 태껸이다. 춤도 일본은 발을 바닥에 붙이고 손으로 자태를 형용하며 춘다. 한국은 직진과 후진과 유턴으로 걷는 게 춤이 된다.
왜일까? 일본이 왜 그러는지는 일본이 밝혀줬으면 좋겠고, 우리가 발이 앞서는 것은 중국을 보면 답이 나온다. 중국은 남선북마(南船北馬), 남쪽은 배, 북쪽은 말이 주된 교통수단이다. 배를 저으면 상체가 발달하고, 말에 박차를 가하면 하체가 발달한다. 그래서 싸울 때는 남권북퇴(南拳北腿), 남쪽에서는 상체의 권법, 북쪽에서는 ‘넓적다리 퇴(腿)’를 쓰는 발기술이다. 중국의 북쪽은 대대로 우리 영토요, 우리는 기마민족의 후예, 곧 발차기의 민족이다. 이소룡의 발차기 스승은 태권도 대부 이준구이고, 성룡(청룽), 원표(위안뱌오), 홍금보(훙진바오)에게는 김진팔, 황정리, 왕호 등이 있었다. 홍콩 영화의 현란한 발차기는 모두 한국인의 작품이다.
고성 춤의 발걸음, 예삿일이 아니었다. 1995년 고성에 낙향하였다. 경남 고성군 마암면 보전리였고, 촌로들은 ‘게발골’이라는 자연부락 이름으로 불렀다. 뒷산이 게의 발처럼 동네를 품는 형상이라 그리 불렀다. 그래서 동네는 10가구 이상 살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게 발이 10개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이윤석의 소개로 집을 얻어 게발골의 11번째 가구가 되었다. 그 사이 이윤석의 오토바이가 타이탄 트럭으로 바뀌었고, 나는 조수석에 앉아 들녘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실한 춤꾼의 옆자리에서 농사일을 받아 적었다.



새벽부터 논의 물고를 보러 삽을 메고 간다. 굿거리장단이 마중 나왔는지, 남실바람이 슬슬 분다. “청 노새 청노새” 춤판의 불림소리가 들리니, 농사꾼에겐 논두렁길이 풍류의 길이다. ‘라운드테이블’ 이진환 제공


이윤석은 농사란 샛별 보고 나가 저녁별을 보고 돌아오는 일이라 했다. 옛 어른들 말씀으로 날마다 별의 노래를 듣기에 ‘농사 농(農)’자는 별 진(辰)’과 ‘노래 곡(曲)’을 섞어 만들었다고 했다. 씻나락(볍씨)이 모가 되고, 모가 벼가 되고, 벼가 나락이 되고, 나락이 쌀이 되는 과정, 도합 88번의 공정이 들기에, ‘쌀 미(米)’자는 팔십팔(八十八) 석자를 줄여 만든 글자라 했다. 그는 전수회관과 비닐하우스를 오가면서 과속 딱지를 떼는 게 일상이었다. 나는 논두렁과 밭이랑을 넘는 그의 큰 몸짓을 보고 ‘써레질한 논의 수평에 뙈기밭의 곡선이 흘러든 춤’이라고 써두었다. 6개월을 머물다 상경할 때, 논에서 이윤석이 “농사꾼 눈에는 초승달도 잘 갈아놓은 낫같이 보인다” 말했다.
창원에서 마창대교를 건너니 금방 고성이다. 마암면 명송마을, 차 문을 여니 개구리 소리가 밀려들었다. 그에게 못자리를 물었더니, “벼는 이제 농협이 키워 준다” 한다. 농협에서 기른 모판을 논두렁까지 배달해주니. 모판을 이앙기에 싣고 논을 오가면 된다. 이때 비료, 제초제, 농약도 함께 투입되니 일이 없고, 콤바인이 벼를 베는 순간 탈곡이 되어 곧바로 농협창고로 간다. 농부가 하는 일은 그저 논에 물을 넣고 빼러 가는 발품이란다.
들판이 바뀐 건 이미 알지만, 그의 마음은 아직도 들에만 있다. 농사일이 대폭 줄었으니, 이제 춤 일에 시간을 더 내는 게 어떻겠냐. 그래서 훌쩍 앞지른 이야기를 던졌다.
1501년에 태어난 퇴계 이황(1501~1570)과 남명 조식(1501~1572)은 영남학파의 영수로 추앙받는다. 낙동강 동편 경상좌도(한양에서 봤을 때 왼쪽)의 퇴계는 몸의 궁극을 깨우는 활인심방(活人心方)을 실천하였고, 유연한 자태로 칠순까지 장수한다. 경상우도의 남명은 궁마와 병법까지 손을 뻗었고 평생 검을 놓지 않았다. 무(武)와 무(舞)는 초록처럼 동색이다.
춤에 대한 애정이 빚은 비약일 수도 있지만, 16세기 영남사림(嶺南士林)의 전통을 21세기 영남무림(嶺南舞林)이 계승하고 있다. 부산 동래의 명무 문장원(1917~2012)의 춤이 경상좌도의 유연한 한폭이라면, 고성의 춤은 댓바람으로 성큼 나서는 경상우도의 마디 굵은 춤이다. “특히 지금 고성의 명무 이윤석의 무예 같은 무법은….”
“차 마셔라!” 고추밭에 말뚝을 박아 온몸이 뻐근하다고 했다. 내일은 유기농법으로 식용유와 세제를 섞어 만든 해충기피제를 뿌린다고 했다. 다음달, 보리 베고 모내기하는 지독히 바쁜 시기를 고성에서는 ‘함방장’이라 한다. 얼마나 바쁜지 “공동묘지의 송장들도 일어나 꼼지락거린다”는 말이 있다. 지금 벼농사 기계화율 99%인데 바쁠 게 뭔가. 함방장에 밭일을 좀 거들며, 고성 들에 ‘천지 삐까리’(매우 많이)로 들어찬 춤 이야기를 이어가자.



진옥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