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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대표적 의병장인 왕산 허위 선생의 네 아들 중 막내아 농협 대학생 대출 들의 둘째로 태어난 허 블라디슬라브(75)씨는 “할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했고, 목숨 바쳐 찾으려 했던 대한민국이라서 그런지 나도 항상 긍지를 가지고 살고 있다”고 강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폭압적인 구소련 체제에서 1937년 부모는 현재의 키르기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했지만 1950년생인 허씨는 항상 독립운동가 자손이라는 자부심과 교육열이 높은 부모 덕택으로 주택종합저축 대학에 진학해 지질학을 전공했을 만큼 지식인이다.
그는 지난 13일 경기도 수원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광복 이후에도 구소련 시대에는 시골에 살면서 아버님이 대한민국에 대해 아예 말조차 꺼내지 못했지만 ‘할아버지의 조국’에 대한 아들로서 자긍심이 대단했다”고 전했다. 이어 “단적인 예로 제가 어릴 다음 때 손수 도표를 만들어 가면서 한글을 가르쳤다. 그때 읽힌 한글로 부족하지만 지금도 한국어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나도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이어받아 한국이 우리나라인 것은 변함없어 두 아들 모두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한국어학원에 보내 한글을 익히도록 했다”면서 “(아버님이) 기회가 되면 한국에 꼭 가봐라 권했는데 이루어져 너무 기쁘다 sbi저축은행 안전 ”며 눈시울을 붉혔다.
허씨는 한국에 올 때마다 안전한 치안에 놀라고, 현지에 돌아가서는 한국의 휴대전화와 자동차 등이 최고로 인정받을 때 더욱 신이 난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에 와서는 아무 데나 밤늦은 어느 시간 때 밖에 나가도 안전해서 너무 좋다”며 “세계 어느 나라도 한국처럼 안전한 나라는 없다”고 단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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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계봉우 선생의 손녀 계 다찌야나씨와 허위 선생의 손자 허 블라디슬라브씨, 이동화 선생의 외손녀 주용용씨(왼쪽부터)가 지난 13일 경기도 수원의 한 호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할아버지가 목숨 바쳐 찾으려 했던 대한민국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수원=윤웅 기자
함께 만난 계봉우 선생의 손녀 계 다찌야나(75)씨는 “할아버지는 생전 자신의 활동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며 “우리가 너무 위험한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가족들조차 한국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계봉우 선생은 연해주에서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로서 활동하다가 1937년 소련에 의해 카자흐스탄 키질로르다로 강제이주됐다. 이후 키질로르다에 정착해 후손들과 살아가다 1959년 순국했다. 당시 계씨는 9세였다.
계씨는 할아버지가 자신이 독립운동가였다는 점을 알리지 않은 것을 돌이켜보며 “우리의 안전을 위해 조심하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련은 고려인 사이에 일본 첩자가 숨어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켜 감시했다”며 “할아버지는 1921년 자유시 참변 때 ‘혁명방해죄’로 징역 5년형을 받은 적도 있어 더 조용히 사셨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계씨는 광복된 지 무려 50년 가까이 지난 43세가 돼서야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고송무 헬싱키대 동아시아학과 교수가 1993년 찾아와 할아버지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줬다”고 기억했다. 이후 할아버지가 집필한 ‘만고의사 안중근전’ ‘조선문법’ ‘조선국어’ 등을 차례로 만나며 할아버지의 활동에 존경심을 품게 됐다.
그는 할아버지의 삶을 공부하며 역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용기를 배웠다. 계씨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가스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는데,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무시는 일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힘들 때면 우리 민족을 위해 치열히 노력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떠올렸다”며 “한민족은 성실하다. 남들보다 2배 더 일해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덧붙였다.
할아버지의 삶이 한국의 성장에 이바지했다는 점은 계씨에게 감동을 준다. 그는 “어렸을 적 할아버지가 ‘내 노력이 언젠가 빛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이어 “파라과이에서 유학 중인 손녀가 현지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한다. 전 세계에 한글학교가 있는 걸 보면 할아버지의 활동이 정말 빛을 본 날이 온 것 같다”고 전했다.
계씨는 고려인 후손들이 “한국이라는 뿌리를 잊지 않고, 정체성을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특히 교육을 강조하는 한국의 정신을 잊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다양한 방면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며 “젊은 고려인들이 공부를 통해 성공적인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 언어를 잊지 않게 한국어 공부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동화 선생의 외손녀 주용용(68)씨도 외할아버지의 독립운동 이력을 2008년에야 알게 됐다. 주씨는 “한국의 국가보훈처에서 2008년쯤 어머니에게 찾아와 외할아버지의 독립운동 이력에 대해 구술증언을 받아 갔다”며 “그때 저도 외할아버지의 역사를 처음으로 듣게 됐다”고 말했다.
이동화 선생은 의열단 일원으로서 중국 난징 조선혁명군사 정치간부학교에서 교관으로 활동하다가 1934년 폭탄 오발사고로 현지에서 순국했다. 주씨는 중국 충칭에서 태어나 지금은 원저우에 살고 있다.
주씨는 생전 외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주씨에게 큰 자부심이다. 그는 “외할아버지는 한국을 위해 피땀을 흘렸다”며 “한국이 현재 누리고 있는 평화와 경제적 부강에 일조하셨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주씨의 최근 관심사는 중국에서 활동한 애국지사들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주씨는 “우리 선조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조국을 위해 일했다”며 “우리도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정신을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상하이에서 1년에 2번씩 애국지사 후손들을 만나 정보를 교류하고 있고, 보훈처에 주기적으로 기부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우리가 되찾은 빛 제대로 반듯하게’라는 광복 80주년의 주제에 맞춰 국외에 거주 중인 이들 3인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15일 광복절 경축식에 초청했다.
수원=김용헌 강희청 기자 y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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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김용헌 강희청 기자 y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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