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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는 길 애조로 
애월과 조천을 잇는 애조로(2024년 7월 개통)를 타고 서쪽으로 가다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애월읍 경내이다. 대략 17세기 이후 애월은 제주목의 우면(18세기 이후는 신우면), 조천은 좌면에 속했다. 위에서 보시기에 서쪽은 오른쪽, 동쪽은 왼쪽이었기 때문이다. 우면과 좌면 사이에 제주목이 삼성저축은행 자리한다. 제주목은 제주도에서 가장 큰 행정중심이며, 상업 지구이자 인구가 가장 많은 번화가이다.
그러니 굳이 제주목을 건너 서쪽으로 갈 일도, 동쪽으로 올 일도 거의 없었을 터이다. 오랜 농경 생활에 익숙한 이들이 타지로 이주하는 까닭은 둘 중에 하나였지 않을까? 하나는 결혼, 또 하나는 파산이나 도피. 하지만 그 옛날 혼인 상대가 저 중소기업대출금리인하 멀리 있을 리 만무하며, 땅에 기대어 사는 이들에게 파산은 가당치 않다. 물론 상호 왕래가 아예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뜸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친척도 안 보면 멀어진다. 멀어지면 낯설고, 낯설면 척지기 쉽다.
사실 미워하거나 좋아하는 일이 뜬금없는 것은 아니나 그 근원을 찾아보면 작은 오해에서 비롯되거나 그냥 이러저러한 까닭 없는 퀵서비스 이유 때문인 경우가 허다하다. 애조로는 그러한 사소한 오해, 무지와 무관심을 확 풀어버리는 거침없는 길이다. 
아름다운 이름, 애월涯月
제주에는 달 月자가 들어간 이름이 참 많다. 강정江汀, 월정月汀, 애월涯月, 월두月頭, 명월明月 등등. 누군가 가장 아름다운 마을 세 군데를 이야기했는데, 모두 月자가 들어갔다. 개인 취업알선정보 취향이겠지만 필자 역시 동의했다. 제주의 달이라! 제주도 좋은 데 달님까지 두둥실이라. 어찌 흐뭇하지 않겠는가?
월정은 달이 뜨는 물가, 애월은 바닷가 달님, 명월은 허공 뜬 밝은 달이다. 밝은 달이 보이는 곳, 명월과 애월에 진성鎭城이 있다. 그 위에서 바라보는 달은 바닷가의 달과 또 다르리라. 달은 둥글다. 둥근 달은 어디든 비춘다. 한국학자금대출 빈천의 구분도 시비의 판단도, 산천의 나뉨도 없다. 그저 둥글게 떠서 하염없이 비춘다, 교교한 초승달에서 시작하여 애틋한 반달이 되는가싶더니 어느 결에 둥근 보름달이 되는데, 다시 반달을 거쳐 그믐달로 몸을 숨긴다. 달은 지구를, 지구는 태양을 공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세간의 달은 여전히 토끼가 방아 찧는 초승달, 반달, 보름달, 그믐달 아니겠는가? 

사면이 바다이니 어딘들 바닷가가 없을 것이며, 중천에 뜬 달이니 따로 주인이 어디 있겠는가? 하여 제주에는 달빛 바닷가든 바다에 비친 달이든 어디서든 누구든 향유할 수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애월만 바닷가 달님인가? 명월은 어찌 홀로 밝은 달을 지녔는가? 




탐라순력도 ｢애월조점｣. / 사진=심규호


탐라순력도 ｢애월조점涯月操點｣에 보면 애월 포구가 반달 형태로 지금은 일주도로가 되어 있는 내영통목 안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고, 애월진은 바다 바로 앞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옛 글에 따르면, 애월진은 "조천진과 더불어 해조海潮로 호壕를 삼아 방어했다." 천연의 바다 조수가 성곽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해자垓字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애월은 바닷가의 밝은 달이 아니라 애월포구가 안쪽으로 쑥 들어와 반달처럼 생겼기 때문인 듯하다. 원래 마을의 지명은 지리를 따르기 마련이다.  
애월로 들어오다 
제주도가 1416년(태종 16년) 삼읍, 즉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으로 나누어진 후로 제주목은 제주성안의 일도一徒, 이도, 삼도 외에도 동쪽으로는 현재의 구좌읍 종달리, 서쪽으로는 한경면 두모리, 남쪽으로는 성산읍 수산2리까지 사방 7,80여 리에 달하는 너른 지역을 관할했다. 그 중에 애월은 제주목의 서북쪽 중심지가 되었다. 지리적으로 서북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제법 큰 포구가 있어 동쪽의 조천포구와 함께 북쪽 내륙에서 오는 바닷길의 도착지 가운데 하나였다는 이유 때문이다. 
원래 서쪽 여러 포구들은 다른 지역에서 제주로 들어오는 이들의 도착지였다. 예컨대, 항몽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삼별초의 지휘관 김통정이 진도를 거쳐 제주로 들어온 곳은 명월포이고, 목호의 난을 정벌하기 위해 출정한 최영의 군사들이 닻을 내린 곳도 명월포이다. 최영의 군사들은 명월포에 정박한 후 어름비, 밝은오름, 검은데기 오름 등지에서 목호의 기병들과 격전을 벌였는데, 어름비는 지금의 애월읍 어음리에 있는 너른 들판이다. 
고려말 공민왕 시절 문하부의 정2품에 해당하는 찬성사贊成事을 역임한 진계백秦季伯은 환관 최만생崔萬生과 자제위子弟衛 홍륜洪倫에 의해 공민왕이 시해되는 참혹한 사건이 발생하자 그 화를 피하기 위해 제주 애월포로 들어와 진주 진씨의 입도조가 되었다. 희성稀姓인 진씨秦氏의 집성촌이 한림읍 명월리에 있다. 
고려 유신으로 1393(조선 태조2년) 제주로 유배된 김해 김씨 입도조 좌정승 척재惕齋 김만희金萬希도 애월포로 들어와 곽지악郭支岳(과오름) 자락에서 살았다. 그런 까닭에 그의 묘역이 곽지리에 조성되어 있다. 
김만희가 유배를 당한 것은 고려조에서 도첨의都僉議 좌정승左政丞까지 오른 고위급 관리로서 고려 유신을 영입하려던 이성계의 권유를 거부한 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지조를 지켰기 때문이다. 그가 제주에 와서 읊었다는 한시가 이를 증명한다. 
한라산이 어찌 서산을 닮았겠는가?고죽의 맑은 바람 아득하여 오를 수 없네.바다가 뽕밭으로 변하고 사람도 이미 바뀌었나니집 문을 나서 작은 영주의 세상으로 가고자 하네. 拏山何似(以)古西山, 孤竹淸風遠莫攀. 海變桑田人已矣, 出門欲往小瀛寰.(시는 판본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다. 2구와 3구가 바뀐 판본도 있다. 칠언절구는 일반적으로 1,2,4구에 압운을 할뿐더러 내용면에서도 인용한 시의 순서가 맞는 듯하다.)
고죽은 고죽국 출신의 왕자인 백이와 숙제를 비유한 것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세월 속에서 그들도 사라지고, 정권 또한 바뀌고 말았다. 어찌할 것인가? 자그마한 섬 영환瀛寰(세상, 탐라를 비유함)으로 사라지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겠는가? 하여 그는 이름도 경흥景興으로 고치고, 호도 월포月浦로 새롭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제주의 서쪽은 황해 건너 중국과 마주 보는 곳이다. 차귀도遮歸島의 호종단 전설이나, 우리나라 천주교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가 1845년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목선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하다가 폭풍을 만나 표착한 곳이 바로 차귀도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거한다.(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관이 용수리 해안에 있다) 이렇듯 서쪽 포구는 외지인, 외래문물이 들어오는 창구이자 왜구들이 침범하는 곳이었다. 애월에 진성이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용두암에서 애월로
언제부터인가? 애월, 특히 바닷가 주변은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이른바 핫 플레이스, 너나할 것 없이 즐겨 찾는 인기 있는 곳이 되었다. 제주목을 사이에 두고 동쪽도 아름다운 바다와 해수욕장이 있고, 서쪽도 그러한데, 어찌 서쪽 애월이 외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 되었을까? 혹자는 유명인들이 그곳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 시작은 용두암과 그곳에서 시작되는 해안도로 때문이 아닌가싶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1992년), 가장 가고 싶었던, 아니 처음 들었던 관광명소가 바로 용두암이었다. 막상 가서 보고난 후엔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용두암이란 이름은 누구나 한 번은 가보고 싶도록 만드는 무게감이 있었다. 그곳에서 용담포구, 도두봉을 거쳐 이호 테우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제주를 처음 방문한 외지인에게 흥미롭고 즐거운 곳이 아닐 수 없다. 제주에 온 이들이 가장 보고 싶은 것이 바다 아니겠는가? 
사람은 익숙한 것에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가보지 못한 곳, 낯선 것은 호기심에 앞서 두려움을 동반하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러하다. 의식주는 물론이고 길이나 방향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용머리와 애월을 연결시켜 보았을 뿐이다. 
해안海岸의 화려함 - 애월의 겉모습

애월 해안도로는 약 9㎞, 하귀에서 시작하여 가문동포구, 구엄포구, 신엄리 방파제, 고내포구를 거쳐 애월포구로 이어지며, 다시 한담 해변을 따라 곽지 해수욕장에 도달한다. 제주의 해안도로는 전체 253㎞. 하귀, 애월 해안도로는 그 일부일 뿐이나, 용담, 도두, 이호를 잇는 해안도로가 외지인들에게 즐겨 찾는 곳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 아닌가싶다. 실제로 애월에 카페나 레스토랑, 호텔 등이 들어서기 이전에 이미 용담에서 이호까지 해안도로는 바다를 보며 먹고 마시는 곳으로 유명했으니 더욱 그러하다. 




애월포구. / 사진=심규호


장사는 예로부터 오가는 이들이 많은 곳에서 흥성하기 마련이다. 제주시에서 신제주가 그러하고, 1970년대 공항 인근에서 가장 가까운 관광지인 용두암과 일대 해안도로가 또한 그러하다. 서쪽으로 향한 발걸음이 해안도로를 따라 애월, 한림까지 이어진 것도 이런 점에서 자연스럽다. 
지금 우리는 폐쇄된 공간에서 잠시 개방된 공간을 거쳐 또 다른 폐쇄된 곳으로 이동하는 데 익숙하다. 개방은 짧고 폐쇄는 길다. 폐쇄된 공간(지역, 마을, 공동체, 온갖 모임)에서 안온함을 느끼기 때문인가? 오랜 농경, 정착생활이 우리에게 준 유전자다. 방랑을 를 꿈꾸지 않는 것은 아니나,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들뢰즈가 의미 부여한 노마드(nomad), 즉 기존의 앎과 삶, 가치와 방식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일은 외롭고 힘들며, 심지어 고통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래서 우리는 끼리끼리 모이고, 들리는 소문에 따라 명소 또는 맛집 앞에서 기꺼이 긴 줄에 동참하며, 시끄럽고 닫힌 공간에서 남들과 함께 있음으로써 오히려 해방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근자에 들어 유명인들의 흔적을 찾아, 맛집 또는 명소 방문의 유의미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애월은 더욱 더 외지인들의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그곳에 가면 관광객이 넘쳐난다. 서로 다른 언어가 쉼 없이 들려오고, 나름 재미가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애월의 발전상인가? 
발전의 진정한 의미
누군가 말했다. 제주는 서쪽부터 발전할 것이라고. 발전의 방향이 서쪽이란 뜻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지만, 곧 의심스러웠다. 무엇보다 결과론적인 발언이라는 점에서 그러했고, 도대체 무엇을 발전이라고 보는가라는 점에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발전發展이란 무엇인가? 발전의 반대말은 쇠락, 후퇴, 정체, 중단, 축소 등이고, 동의어는 번영, 진전, 성장, 진보, 변화, 확대 등등이다. 이렇듯 발전은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고, 개발과 확대의 뜻이기도 하다. 모든 만물의 성장과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발전을 개발의 뜻으로 한정한다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발전과 상충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이냐 보전이냐'라는 오래된 화두가 지금도 유효하다. 누구는 보전을 구태의연이라 말하고, 또 누구는 개발을 환경파괴와 연관시킨다. 
애월의 진정한 발전은 무엇인가? 이는 애월 사람들이 고민하고 답해야 할 문제이다. 다만 필자는 애월의 겉모습 말고 속살이 보고 싶다. 오랫동안 숙성되고, 의젓하여 진득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애월의 본모습을 알고 싶다는 뜻이다. 

* 애월리下편으로 이어집니다.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별꼴학교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