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존 D. 맥아더 재단이 수여하는 맥아더 펠로십(MacArthur Fellowship)을 받은 존스 홉킨스대 정치학과 한하리 교수./한하리 교수


“보통 사람들의 정치 참여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이해하려는 것, 제 연구의 핵심입니다.” 올해 미국 맥아더 펠로십으로 선정된 재미 한국계 정치학자 한하리(50) 존스 홉킨스대 교수는 최근 본지와 화상으로 만나 이같이 말하고 “‘시민 참여’와 ‘사회 운동의 조직’이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데 필수적인 쌍두마차”라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지난달 존 D 맥아더 재단에서 발표하는 2025 맥아더 펠로십 22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이 재단은 미국의 유명 보험회사 뱅커스 라이프 소유주 부부가 설립한 비영리 재단이다. 이곳에서 선정하는 맥아더 펠로십은 특정 분야에서 창의성과 혁신성을 입증한 연구자를 선정해 5년에 걸쳐 총 80만달러(약 11억6000만원)를 조건 없이 지급한다.
파격적인 후원과 베일에 가려진 선정 방식으로 화제가 됐고, 수상자 여럿이 세계적 석학으로 명망을 얻으면서 ‘천재들의 상(Genius Grant)’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한국계 수상자로 김용(2003년) 전 세계은행 총재, 수학자 허준이(2022년) 프린스턴대 교수 등이 있다.
맥아더 재단은 한 교수를 펠로십에 선정한 이유로 “어떤 형태의 시민 참여가 더 지속 가능하고 실질 적 영향을 미치는가를 학문적으로 진전시켰다”고 밝혔다.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해 집중 연구해 온 한 교수는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써 내려갈 수 있다고 느낄 때 더 나은 사회가 된다”면서 “모든 것의 핵심엔 ‘어떻게 사람들을 자치(自治) 프로젝트에 참여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다”고 했다.
그는 유튜브와 소셜미디어 등 이른 바 ‘뉴 미디어’가 정치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경계심도 드러냈다. “정치에서는 시민 참여를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로 꼽지만, 유튜브나 팟캐스트 등을 통해 디지털 미디어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흐름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디지털이라는 도구 자체가 본질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플랫폼은 민주주의 를 위해 설계되지 않았거든요.”
한 교수는 ‘정치 인플루언서’들의 극단적 언행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인플루언서들이 만들어내는 ‘분노 유발 콘텐츠’에 사람들이 반응하며 부정적인 악순환이 생겨납니다. 이 문제는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며 민주주의를 약화시킬 겁니다.” 그는 인공지능(AI)의 발달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우리가 가진 기술은 과거보다 훨씬 쉽게 허위 정보(disinformation)를 퍼뜨릴 수 있게 만들었고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며, 정부가 이 부분을 규제할 책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정치 경험이 일천한 서른네 살의 무슬림 이민자 조란 맘다니를 당선시킨 뉴욕시장 선거에 대해 한 교수는 “공적인 삶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갈망하는 사람이 모든 연령대에 걸쳐 많이 있다는 것이 이번 선거 과정에 나타났다”면서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수요와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도전 과제”라고 했다.
1970년대 초 미국에 유학 온 부모 아래에서 자란 한 교수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웰즐리 칼리지와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버라에서 가르치다 2019년 존스홉킨스에 부임해 정치학을 강의하면서 글로벌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SNF 아고라 연구소도 이끌고 있다. 한 교수는 “어린 시절 조국이 분단된 현실을 경험한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해주던 이야기에 큰 영향을 받고 자랐다”며 “부모님은 ‘가능성의 세계를 상상하고 실현할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자라도록 나를 키웠고, 지금도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기자 admin@seastorygame.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