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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블랫먼 지음｜강주헌 옮김｜김영사｜564쪽｜2만9800원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200㎞가량 떨어진 제2의 도시 메데인은 과거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불렸다. 한때 이 도시를 장악했던 갱단 ‘파첼리’는 교도소까지 힘을 뻗쳐 마약과 휴대폰을 팔고 심지어 침대 사용료까지 걷었다. 이곳에 수감돼 있던 라이벌 갱단 ‘엘메사’ 단원들은 불만이 컸다. 결국 양 갱단은 2012년 교도소에서 총격전을 벌였고 재소자와 간수 23명이 다쳤다. 갱단의 갈등은 도시 전역으로 퍼질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두 갱단은 이른바 ‘기관총 협정’을 체결하며 전쟁을 피했다. 전쟁을 치르면 수입이 줄기 때문이다. 싸우는 비용은 드는데 마약 판매나 돈세탁을 할 수 없게 대형카드사 된다. 갱단은 여전히 서로 증오하지만 이 지역의 살인율은 미국 대도시보다 낮아졌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글로벌갈등학을 연구하는 저자는 전쟁을 예외적인 현상으로 바라본다. 언젠가 윈스턴 처칠이 “턱과 턱이 만나는 게 전쟁보다 낫다“고 했듯이, 대부분의 전쟁은 파멸적이라 손익계산서에 큰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장 적대적인 상대도 전쟁보다는 연말정산차량유지비 협상을 선호한다. 아마 수많은 전쟁 사례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벌어진 거대한 전쟁만 조명받기 때문”이다. 전쟁 이면의 끝없는 협상과 대화는 알려지지 않는다. 이 갱단의 도시에서도 전쟁을 벌인 경우보다는 협상과 거래로 전쟁을 피한 경우가 1000배는 많았다.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전쟁을 분석한다. 저자는 메데인의 협상 과정을 카드연체기준 사례로 든다. 두 갱단의 무력이 비슷해 승리 확률은 50:50이었다. 그들이 다투는 영토, 마약 판매, 도피처, 돈세탁 등의 가치를 100달러, 전쟁 비용은 각각 20달러로 가정한다. 여기서 지면 0달러, 이기면 80달러를 손에 쥘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한 기대 수익은 평균 40달러가 된다. 이 경우 양측은 40~60달러 선에서 협상이 가능하다. 설령 힘 일반상환학자금대출 의 균형이 무너져도 협상은 된다. 한쪽의 승리 확률이 20%로 줄었다고 쳐보자. 이때는 약한 쪽이 가져갈 협상액 범위가 16~36달러로 낮아진다. 적에게 큼지막한 쇼핑센터를 주거나 매년 공물을 바쳐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전쟁의 손해가 더 크므로 협상은 타결된다.
그럼 왜 전쟁이 생길까? 저자는 불확실성, 무형의 동기, 견제되지 않는 저렴한 중고차 이익 등 다섯 가지를 짚는다. 그중 불확실성은 나의 상황과 상대의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을 말한다. 실제 현실에서도 정보의 왜곡이 게임 판을 흔들고 전쟁을 만든다. 사담 후세인은 중동 지역 정책 결정권을 가지고 싶었다. 유가와 석유 생산량, 독재 등 여러 가지 이익을 바랐다. 이란과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쿠르드족을 학살했다. 더 나아가 대량 살상 무기를 확보하려 했다. 특히 핵무기를 가지면 이라크는 아랍 최초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미국은 후세인의 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려 했다. 1990년대 유엔은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제재를 가했다. 매년 무기 사찰단이 관련 시설들을 고발했다. 후세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은폐했다. 이 책은 “10여 년의 제재로 후세인 정권은 1990년대 말쯤 핵무기 개발 능력을 상실했으나 미국은 이를 알지 못한 채 2003년 이라크를 침략했다”고 말한다. 후세인이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대량 살상 무기가 있는 것처럼 ‘블러핑’(전략적 허세)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 “5일이든 5주든 5개월이든 그 이상 전쟁이 지속될 리 없다”고 장담할 정도로 정보가 부족했다. 실제 종전 선언은 2011년에야 나왔다.
세계는 후세인이 최소한 생화학무기 정도는 갖고 있으리라 봤다. 이라크 침략을 반대했던 노르웨이가 대사관에 생화학 보호 장비를 준비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전쟁이 끝났을 때, 이라크의 고위 장성들조차 후세인이 실제로 어떤 무기를 얼마나 비축해뒀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라크전의 원인과 관련, 부시의 입장에 선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 ‘불확실성’이 균형을 깼고 전쟁이 발발했다는 분석을 제시한다.
저자가 지향하는 평화는 갈등의 부재가 아니다. 오히려 긴박하지만 비폭력적 대치가 가득한 임마누엘 칸트의 ‘영구평화론’ 같은 평화를 강조한다. 칼 포퍼의 말처럼 ‘조금씩 무언가를 짜 맞추는 엔지니어’같이 전쟁의 원인들을 찾아 억제하고 협상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본다.
이 책은 국가가 강할수록 협상력과 평화의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한다. 전쟁과 평화는 인류애가 아닌 이기적 집단의 전략적 선택에서 나온다는 현실주의적 관점이다. 전쟁뿐만 아니라 노사관계, 소송 등 사회 여러 갈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반면 해결책은 구조화돼 있지 않다. 국가 간 연결을 증대시켜야 하고 국제 기구가 중요하다는 이상주의적 원론을 기반으로 여러 추상적 해결책들을 제안한다. 게임이론을 몰라도 읽는 데 큰 무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