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권태기, 시알리스로 활력 있게 다시 시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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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낭달웅동 작성일26-01-03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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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권태기, 시알리스로 활력 있게 다시 시작하기
부부 관계에서 권태기를 겪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매일 같은 일상, 반복되는 대화, 그리고 성적 생활의 변화까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권태기가 오면, 서로의 감정과 성적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부부의 관계 회복, 그리고 다시 활기찬 성적 삶을 되찾기 위한 첫걸음으로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정력 회복과 자신감 회복입니다.
오늘은 시알리스를 통해 권태기 부부가 어떻게 활력을 되찾고, 부부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에 대해 유머러스하면서도 전문적인 시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시알리스는 단순히 발기부전 치료제를 넘어서, 남성의 정력 회복과 자신감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럼, 권태기를 극복하고 활기찬 부부 관계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볼까요?
1. 권태기, 단순한 일상의 변화일까?
부부가 권태기를 겪는 이유는 매우 다양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일상, 서로의 관심이 약해지는 경우, 심지어 성적 불만족이 누적되면서 자연스럽게 권태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성적 문제는 단순히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남성은 종종 자신의 정력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정력 저하가 바로 권태기의 원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남성의 성적 문제는 신체적, 심리적 요인 모두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정확한 원인 파악과 적절한 치료가 필요합니다.
2. 시알리스, 부부 권태기 탈출의 시작
시알리스의 작용 원리와 효과
시알리스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효능은 그 이상입니다. PDE5 억제제인 시알리스는 성적인 자극이 있을 때 성기 주변의 혈류를 증가시켜, 발기를 도와주는 약물입니다. 그러나 시알리스는 단순히 발기부전 치료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시알리스는 그 효과가 최대 36시간까지 지속되어, 부부가 성적 활동을 계획할 때 매우 유용합니다.
시알리스의 장점: 36시간 지속되는 효과로, 부부가 성적 활동을 계획하거나 일상에서 보다 자연스럽게 활력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반응: 시알리스는 성적 자극에 반응하는 약물이기 때문에, 자극이 없으면 약물이 작용하지 않습니다. 이는 시알리스가 자연스러운 성적 반응을 유도하도록 돕기 때문에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정력 회복과 자신감
시알리스는 정력 회복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남성들이 나이가 들면서 겪을 수 있는 성적 불안이나 자신감 저하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성적 문제를 겪고 있던 남성은 다시 자신감을 되찾고, 성적 활동에 대한 불안감을 덜 수 있게 됩니다. 이는 결국 부부관계에서 감정적 거리감을 줄여주고, 성적 만족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3. 부부의 관계 회복, 시알리스와 함께하는 변화
성적 자신감 회복
부부의 성적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자신감입니다. 자신감을 잃으면, 성적 활동에 임할 때도 불안하고 두려움이 커집니다. 그러나 시알리스를 복용하면, 발기부전 걱정 없이 자연스럽게 성적 활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정력 회복이 이루어지면, 남성은 성적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이 자신감은 부부 간의 성적 만족도와 정서적 유대감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부부관계의 정서적 강화
성적 만족도는 단순히 성적인 만족을 넘어서, 정서적 유대와 신뢰를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적 문제가 해결되면, 부부는 더 이상 성적 불만족으로 인한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대신,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깊어지고, 부부 관계가 다시 한 번 활기를 찾게 됩니다.
4. 시알리스의 복용법과 주의사항
시알리스 복용법
시알리스는 성적 활동 전에 복용하는 약물입니다. 성적 활동을 1시간 전에 복용하면,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하며, 최대 36시간까지 효과를 지속시켜 성적 활동을 보다 유연하게 만들어줍니다. 시알리스는 하루 1회 복용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복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정기적인 복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복용 시 주의사항
음주 주의 시알리스와 음주는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과도한 음주는 약효를 약화시킬 수 있으므로 적당한 음주를 권장합니다.
기저 질환이 있는 경우 심혈관 질환, 고혈압 등 기존의 질환이 있는 경우, 시알리스를 복용하기 전에 전문가와 상담이 필요합니다.
부작용의 가능성 시알리스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안전하지만, 드물게 두통, 소화불량, 어지러움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상 증상이 있을 경우, 즉시 사용을 중단하고 전문가와 상담해야 합니다.
5. 결론: 시알리스로 부부 권태기 극복하기
부부 관계에서 권태기는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시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적 문제와 함께 정서적 거리감을 해소할 방법이 필요합니다. 시알리스는 정력 회복과 자신감 증진을 통해 성적 불안감을 해소하고, 부부간의 성적 유대감과 정서적 연결을 다시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시알리스와 함께라면, 부부는 다시 활기차고 즐거운 성적 생활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성적 문제로 인한 갈등을 줄이고,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부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새롭게 시작할 준비가 되셨다면, 시알리스와 함께 활력 넘치는 부부 생활을 되찾아보세요.
시알리스타다라필은 대표적인 발기부전 치료제로, 긴 작용 시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선호합니다. 시알리스효능효과는 최대 36시간까지 지속될 수 있어 자연스러운 관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실제 시알리스후기를 보면 효과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으며,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한편, 전통적인 정력 강화법으로 신기환을 찾는 분들도 있지만, 보다 즉각적인 효과를 원한다면 시알리스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비아그라구매 사이트 전문가와 상담 후 올바르게 복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자 admin@119sh.info
■ 방송 : 경인방송 라디오 <사람과 책> (FM 90.7MHz 토8~9시 방송)
■ 코너 : 책으로 만난 사람 : <언제라도 안아줄게> 저자 양진채
■ 진행 : 조용주 변호사
■ 출연 : 양진채 작가
◆ 조용주 : 한 권의 책 안에는 독자에게 전하는 내용뿐 아니라 작가의 고민과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책을 펼치며 우리의 삶도 들여다보는 시간 책으로 만난 사람 오늘도 반갑게 만나보겠습니다.
바다이야기5만 1978년 인천 동일방직에서 벌어진 여성 노동자 노조 탄압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은 단순히 사건을 재현하거나 투쟁의 연대기를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는데요.
누군가의 딸인 동시에 친구였고 웃으며 사랑하던 청춘이었던 여성들의 삶을 사람의 이야기로 복원한 소설입니다. 반백 년에 걸쳐 이어진 투쟁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의 시간을 기억의 서사이자 애도의 형식으로 되살려낸 장편 소설이죠.
따끈한 신작 소설 <언제라도 안아줄게>를 쓴 소설가 양진채 작가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양진채 : 안녕하세요.
◆ 조용주 : 새해가 됐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작년에는 일 많이 하셨죠?
◇ 양진채 : 네 바다이야기프로그램 . 연말을 아주 바쁘게 보냈습니다. 조 변호사님도 새해 좋은 일 많기를 바랍니다.
◆ 조용주 : 네 감사합니다. 저도 경인방송 <사람과 책>을 이제 1년 반 넘게 해 왔거든요. 오늘 또 양 작가님을 평소에도 존경하는 분인데 방송국에서 만나니까 겁나게 반갑습니다. <언제라도 안아줄게>이 책은 12월에 나온 책이죠?
◇ 양진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채 : 11월 20일에 나왔어요.
◆ 조용주 : 이 책이 실제 사건인 동일방직 노조 탄압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잖아요. 양 작가님 청취자분들께서 동일방직을 모르는 분도 많으실 것 같고 동일방직 노조 탄압 사건은 더 모르실 것 같아요. 그 이야기에 대해서 좀 설명해 주시고 이 이야기를 왜 소설로 택했는지 얘기해 주시겠어요?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 양진채 : 네 먼저 청취자 여러분께 인사를 못 드렸는데요.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 소설가 양진채입니다. 이번에 두 번째 장편 소설 <언제라도 안아줄게>로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이 소설은 동일방직 노조 탄압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동일방직 사건은 똥물을 뒤집어쓴 여성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50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왔어요. 그 사건으로부터 그녀들의 꿈인 복직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들의 삶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인터뷰 자료나 이런 것들이 곳곳에 있기는 하지만 이분들의 삶을 조금 삶으로 기록을 하고 싶었어요. 투쟁이 아니라.
그래서 저는 소설 마지막 부분에 보면 '수억 광년의 빛이 우리에게 와서 빛을 내듯이 너는 그렇게 왔고 내내 사라지지 못한 거라고 아마 빛도 그래서 사라지지 못하고 내내 빛을 내는 거라고 누군가의 염원이 모이고 모이면 물리적 시간은 길이를 알 수 없는 시간이 된다.'라고 적었습니다.
누군가의 가슴에 박혀 끝끝내 사라지지 못하는 기억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길이를 알 수 없는 시간이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 사건으로부터 50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왔지만 그녀들에게 그날은 5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어제처럼 생생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되돌이켜 보면 그분들은 청춘이었죠. 이제 막 20대 초반이거나 중반이거나 청춘을 겪었던 그런 노조 탄압을 당했던 사건들은 그녀들에겐 영영 뽑히지 않을 상처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시절의 기억과 청춘을 부당한 것에 고개 숙이지 않았던 그녀들의 용기와 연대를 보여주고 싶어서 이 소설을 썼습니다.
◆ 조용주 : 우리 양 작가님은 인천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시는 분으로 유명한데요.이 동일방직은 어디 있죠?
◇ 양진채 : 지금 인천시 동구 만석동 관할입니다. 거의 50만 평이 넘는 매우 큰 공장이고요. 그래서 동구의 지도를 보면 그 동일방직 건물 자체가 전체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조용주 : 지금은 공장이 운영이 안 돼서 사실 그 옆을 지나갈 길이 별로 없고 그래서 아마 인천에 새로 이사 오신 분들이나 그런 분들은 만석동이나 동일방직에 대해서 잘 모르실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 화수동, 만석동 그 부근에서 살았던 사람이라 동일방직은 저한테는 멀지 않은 곳이에요.
그리고 사실 저희 누님 두 분이 동일방직에서 노동했던 그런 분들이었기 때문에 더 좀 다가왔던 소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누님들 같은 경우에 2교대 하고 거의 밤낮이 바뀌어서 사는 거죠.
◇ 양진채 : 맞아요.
◆ 조용주 : 그래서 집에서는 그냥 잠만 잤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회사 나가면 12시간 근무하고 집에 오면은 잠만 자고.
그래서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는데 잘 접할 기회는 없었는데 공장에서 힘든 일이 있었는지는 제가 어렸을 때는 잘 몰랐었는데 또 나중에 커서 '똥물 사건' 이거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78년에 일어났더라고요. 기록을 보면 1978년 2월 21일로 되어 있던데 그때 그 여공들한테 똥물을 끼얹는 사건 또 그게 또 사진으로 남아서 그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것 같아요.그 일이 일어났던 배경이나 과정에 대해서 한번 좀 설명해 주시겠어요
◇ 양진채 : 아시는 분들도 많이 알고, 또 모르시는 분들은 전혀 모를 텐데요. 이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뭐 '역사저널' 이런 데서도 이 동일방직 똥물 사건이 한번 방송이 된 적이 있었는데요.
이 똥물 사건은 그 이전에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이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지부장을 세웁니다. 그러니까 여성 노동자들이 모임을 통해서 '아, 이게 노동자의 삶이 어떻게 돼야 한다.'라고 각성하게 되고 그래서 노조 대의원 선거에 나가게 되고 대의원으로 뽑히고 나서는 나중에 지부장까지 뽑는 최초의 여성 지부장을 선출하게 되죠.
처음에는 회사 측에서 되게 우습게 본 거예요. 뭐 무식한 여공들이 뭘 알면 안다고 뭐 또 얼마나 자기들끼리 뭐 복작거리겠어. 뭐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잘 싸워왔거든요. 탈의실도 만들고 점심시간도 조금 더 확보하고 생리 휴가도 따내고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이게 조금 회사 측에서 위협을 느낀 거예요. 그러다가 뭐 여러 사건을 겪게 되죠.
그중에 한 사건이 지부장하고 사무장을 경찰서로 연행하는 바람에 여공들이 단체로 시위를 벌였던 게 있고요. 이분들이 그래서 회사 측에서 조금 위험하다고 느낀 거예요. 다음 선거에서도 또 여성 지부장이 뽑히면 이건 좀 곤란한데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래서 회사 측뿐만 아니라 정보과 형사도 개입해서 이 여성 지부장 선출을 방해하려고 며칠 전부터 분위기가 안 좋았죠. 이게 소설 속에 보면 새벽 6시에 그 당시로는 아까 조 변호사님은 누나들이 2교대를 했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3교대였거든요.
그래서 밤을 새우고 10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여성 노동자들부터 투표를 시작하고 있었어요. 투표를 방해해야 여성 지부장이 선출되는 걸 막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투표를 하러 줄을 맞춰서 막 퇴근하면서 투표를 하러 가던 길에 남성 노동자들이 똥물을 뿌리는 사건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나 황당했던 거죠.
동일방직 전경 [사진=연합뉴스]
◇ 양진채 : 투표하러 오는 여공들뿐만 아니라 그 노조 사무실 안에도 이미 똥물을 뿌리고 투표함을 부수고 이러면서 투표를 아예 못하게 방해를 했고 그러면서 그냥 똥물만 뿌린 게 아니라 무자비한 폭력도 같이 같이 일으키고 뭐 했었죠.
그런 일들이 지금은 그냥 '똥물 사건' 이렇게 되는데 그래서 그 사건을 기록한 건 동일방직 길 건너편에 있었던 우일 사진관 사진사분이 사진을 찍어줬고 그 사진을 보관하고 있는 바람에 그게 세상에 알려지게 됐었고요. 우리가 막연히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했다면 그건 믿을 수 없으므로,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만큼 참혹한 일이었던 사건이죠.
◆ 조용주 : 그러니까 그게 만약 사진이 안 남아 있으면, 지어낸 이야기야 뭐 말도 안 돼. 이렇게 얘기를 했을 것 같은데, 사진이 딱 남아 있으니까 말을 못 하는 거죠.
◇ 양진채 : 맞아요. 이게 단순히 한 공장 안에서 회사 측이 일으킨 사고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조직적인 게 나중에 아주 나중에 가서야 밝혀졌던 거고요. 그 당시에는 여성 노동자들이 이렇게 싸움이라는 것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에서도 굉장히 냉대했던 거죠.
당시가 70년대 말이거든요. 70년대에 우리나라 사회상을 생각을 해보면 짐작이 갈 거예요. 그래서 그 와중에 여성 노동자분들이 그것도 좀 청춘이었을 20대 초중반 여성분들이 그렇게 싸워왔던 내용이라고 볼 수 있어요.
◆ 조용주 : 저도 이제 그 사진을 보면서 똥물을 맞은 그 여공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존감 떨어지는 거 생각하면 울컥하더라고요. 이분들 지금 살아계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지금 살아계시면 나이가 어느 정도 될까요?
◇ 양진채 : 지금 살아계시는 분들은 보통 70대 중반 후반 이렇게 많이 계시고요. 지금도 그때 싸움에 앞장섰던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끼리 모임도 하시고 아직도 사회 활동을 하시고 계세요.
◆ 조용주 : 양 작가님 소설 쓰실 때 그분들을 인터뷰하셨다든가 뭔가 이야기를 들어서 이 소설에 반영한 것도 있나요?
◇ 양진채 : 물론 있죠. 그런데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인터뷰를 하지는 않았다고 제가 뒤에 작가의 말을 쓰기는 했는데 그분들과 만나는 계기는 여러 번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 소설을 위해서 만난 게 아니라 저도 인천 지역에서 문화 활동을 하고 사회 활동을 하다 보니까 같이 만나게 되는 접점들이 있었고요. 예전에 제가 화도진 문화원에서 근무 할 때는 동일방직도 인천 동구지만 그 소설 속에 나오는 '도시산업선교회'도 동구에 있었기 때문에 동일방직에 계셨던 분들이...
그 당시에 활동했던 사진을 모아서 저희가 한번 집담회 그러니까 사진을 보면서 옛날이야기를 나누는 이런 집담회를 그분들 한 10여 분을 모셔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또 여성 노동자의 길, 노동자의 길이라는 길들이 있는데 그 길을 같이 걷기도 했고요.
◆ 조용주 : 그 길은 우리 양 작가님이 만드신 길이잖아요?
◇ 양진채 : 제가 만들었다기보다는 어쨌든 제가 기획을 하고 화도진 문화원에 있을 때,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기획을 한 거죠. 인천이 노동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도시잖아요. 개항에서부터 70년대 이렇게 쭉 보면 노동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가 있는데요.
특히 동구가 그런 쪽에서는 중심이었고 제가 화도진 문화원의 사무국장으로 와 있으면서 20년대부터 문학 작품을 보면 이 동굴을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 특히 노동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많아서 그 길을 한번 열어서 연결하고 뭔가 문학 이야기를 하고 이렇게 노동으로 보는 인천의 정체성을 좀 찾고 싶어서 노동자의 길을 만들기도 했고요.
또 '도시산업선교회' 분들과 또 배다리에 있는 문화 양조장에 계셨던 선생님들. 이렇게 해서 여성 노동자의 길도 만들고 그래서 비슷한 코스이긴 한데 그런 코스들을 많이 답사할 수 있도록 했고요. 특히 학교에서 단체로 답사를 하거나, 그 길을 돌아보면서 인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이런 많은 계기가 됐었어.
◆ 조용주 : 제가 이 책도 읽고 다른 자료도 보니까 결국 나중에는 진실도 밝혀지고 이분들 명예 회복하지 않으셨나요?
◇ 양진채 : 네 맞아요.
1970년대 노동 운동을 벌인 동일방직 인천공장 노조 [사진=연합뉴스]
◆ 조용주 : 그래서 국가가 개입한 사건이라는 걸 알고 저는 충격이었어요. 무슨 노조 사건에 안기부가 개입했나. 그 정도로 이게 중요한 사건인지 아니면 그 시기에 국가가 개입해야 할 일이었던 건지 잘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 양진채 : 저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보통 단위 노조 사업이라고 생각을 하고 했는데, 그 당시에는 여성이 동일방직의 똥물 사건뿐만 아니라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 활동이 중요했던 이유는 최초의 여성 지부장을 세웠던 때 세웠어요.
그러니까 동일방직뿐만 아니라 70년대에는 일차 산업 방직 공장들이 엄청 많았고 또 뭐 섬유 산업이 엄청나게 발달했었는데 그런데도 여성들의 임금은 남성 임금의 거의 절반 수준도 안 되고 뭐 이랬었는데, 동일방직에서 최초로 여성들이 여성 대의원들을 뽑기 시작하고 여성 지부장을 최초로 세운 거예요.
◆ 조용주 : 최초로?
◇ 양진채 : 그러니까 이게 좀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러면서 이게 상급 노조하고 관계도 있고 여러 가지 얽혀 있는데 그중에 나중에 정보과에 있었던 사람이 양심선언을 했거든요. 그때의 그런 개입이 되었던 정황들을 밝히면서 이분들이 명예도 회복하고 보상도 일정 부분 받게 됐고 그렇게 되었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이분들이 원하는 건 물론 본인들의 싸움이 정당했다는 것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해고가 부당하므로 다시 공장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싶다.
해고된 대부분의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로 이 해고가 부당하므로 나는 단 하루를 일하더라도 다시 공장에 들어가서 정당하게 일을 하고 내가 내 손으로 걸어 나오는 것.
이런 꿈이 있었는데 해고되셨던 분들은 끝내 복직 권고가 있었음에도 복직되지 못하기도 했고 지금 동일방직 공장이 이제 베트남이나 또 지방으로 일부 이전되기도 하고 이러면서 또 이미 이제 나이도 많이 드셔서 복직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죠. 그러니까 그분들에게는 끝내 응어리가 하나는 남아 있는 거예요.
◆ 조용주 : 우리 양 작가님 소설에서 또 좀 더 잘 이해가 됐던 것이 이 공간이 저한테는 익숙한 공간들이거든요. 만석부두나 자유공원 답동 성당. 이런 곳들이 나오는데 그곳은 우리 양 작가님도 잘 아시는 곳들이고 여기 아마 노동자들도 당시에 그곳을 잘 다니고 연애도 하고 바람도 쐬고 놀러 가는 것도 있어요. 특히 물치도에 놀러 가는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 양진채 : 네 그 당시에는 작약도였죠. 그 당시에는 이렇게 인천 사람들이 거기 자주 놀러 갔죠.
◆ 조용주 : 또 답동 성당이 등장해요. 거기서 종을 치는 장면이 자주 나오고 소설 속 태후가 종을 치는 애죠. 그래서 이제 신부로 성장하는 과정들이 이렇게 쭉 나오는데 그 종이 의미하는 게 뭘까요?
◇ 양진채 : 제가 이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요소 중의 하나가 이 종을 치는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실제로 들었어요. 그러니까 제일 가까운 지인이 우연히 어느 자리에서 '내가 고등학교 때 답동 성당에서 새벽종을 한 달간 쳤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 조용주 : 원래는 종 치는 분이 따로 있는 거죠?
◇ 양진채 : 네. 소설 속에서도 그렇듯이 종을 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나 칠 수 있는 게 아니라 신앙도 있어야 하고 그다음에 체력이 굉장히 중요해요.
◆ 조용주 : 종이 답동 성당 꼭대기에 있나요?
◇ 양진채 : 맨 꼭대기는 공명실이고 그 위에는 이제 첨탑처럼 밖으로 볼 수 있는 데고 그 아래에 종이 있어요.
◆ 조용주 : 그럼 한참 올라가야 하는 거죠. 종을 치려면?
◇ 양진채 : 계단으로 2층 조금 넘게 올라가는 정도니까 그게 힘든 게 아니라 종 자체가 엄청나게 크고 밧줄이 무거우므로 웬만한 사람은 줄을 잡다가 놓치면 크게 다칠 수가 있대요.
한 2m까지 따라 올라가다가 떨어질 수가 있어서 그래서 이제 힘도 있어야 하고 종교적 신앙도 있어야 하고 뭐 이런 여러 조건 때문에 아무나 종을 칠 수는 없는데 신포시장 안에 성광 떡집이라고 있어요.
거기에 이종복 시인이라고 계시는데 그분이 종을 쳤던 분이에요. 그래서 우연히 그 얘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분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건 정말 중요한 요소다. 종이라는 것이 보통 그 당시에는 70년대는 삼종 기도를 했기 때문에 하루 3번 종을 쳤거든요.
근데 이 종이라는 게 소설 속에서도 나와 있지만, 예수님의 고통과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한 뭐 위안과 이런 여러 의미로 종을 쳤는데요. 이 종을 치는 것을 소설 속에 꼭 넣고 싶었어요.
인분 뒤집어 쓴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 [사진=연합뉴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기증자료]
동일방직의 여성들이 폭력을 당할 때, 지금 같은 경우에는 무슨 일이 터지면 다 연락망이 돼서 동원되고 뭐라도 할 수는 있지만, 그 당시에 그 새벽에 그 똥물을 뒤집어쓰고 있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것 때문에 누군가가 그렇게 온 상처 입은 여성 노동자들을 좀 도와줄 수 있었더라면, 소설 속에 태호나 경준처럼 올라가서 종이라도 쳐 줄 수 있었더라면 그때의 싸움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답동 성당이 아주 이 소설 속에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고요. 답동 성당에 계신 선생님들 소설 한번 읽어보시고요. 이 소설을 쓸 때 80년대도 그렇고 답동 성당은 인천에서 굉장히 중요한 종교적 역할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할을 했었어요.
◆ 조용주 : 서울에 있는 명동 성당과 같은 역할을 한 거죠. 노동자들에게.
◇ 양진채 : 87년 88년도 인천에서도 대대적인 민주화 운동을 할 때, 모든 싸움의 시작은 답동 성당 안에서 집회를 하고 그 길로 나와서 동인천역까지 가는 그 대로변에서 행진하고 했었거든요.
또 거기에 계신 신부님들이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탄압을 막아주기도 하고 싸움을 함께 하기도 하셨고 그래서 원래는 제가 동구에 있어서 '도시산업선교회' 얘기를 더 많이 넣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제 도시산업선교회는 저하고 인연이 깊기도 하고 굉장히 많이 찾아가기도 하고 거기 계신 목사님도 잘 알고 그런데도 (답동 성당) '종'이 필요했기 때문에 답동 성당을 모델로 했고 답동 성당이 당시에 그러니까 실제로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을 품어준 두 곳, 도시산업선교회와 답동 성당이기도 했고요.
또 80년대에 그런 역할을 해왔던 이 성당의 역할들 이런 것들을 다시 한번 환기하고 싶어서 답동 성당을 이번 소설에 등장시켰어요.
◆ 조용주 : 그렇게 된 거예요. 네 그러면 우리 양 작가님 음악 하나 듣고 가야 할 텐데요. 어떤 곡 들어볼까요?
◇ 양진채 : 어 생각을 해 봤는데요.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이 곡이 문득 떠오르더라고요. 가사 중에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막막한 어둠으로 별빛조차 없는 길일지라도 포기할 수는 없는 거야.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뜨겁게 날 위에 부서진 햇살을 보겠지'라는 가사가 있어요.
이 그분들께 제 방식대로 여러분들이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걸어와서 어느 날에는 햇살을 부서진 햇살, 나를 위해 부서진 햇살을 보듯이 지금의 삶을 맞닥뜨릴 수 있었던 것.
그분들이 이게 삶이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라 당당한 삶으로 여태껏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는 모습으로 보여드려서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제 나름의 그분들을 안아주는 방식이랄까요. 그런 생각으로 이 노래를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 조용주 : 토요일 오전에 편안한 문화 쉼터가 되어주는 조용주가 만난 사랑과 책, 오늘 책으로 만난 사랑 코너에서는 <언제라도 안아줄게>를 쓰신 양진채 작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나스카 라인'으로 등단하셨죠? 데뷔 이후에 단편 장편, 테마 소설, 스마트 소설까지 다양한 형식 창작 활동을 이어오셨는데요.
작년에 인천광역시 문화상을 수상하셨고 또 인천 출판인협회인가요? 거기서 출판문화상도 수상하시고 큰 상 2개나 받으셨어요?
◇ 양진채 : 문화 쪽으로 보면 그전에 인천문인협회에서 주는 인천 문학상을 받았고 이 인천시 문화상은 그 해에 또 그 해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인천에서 문화 활동을 하면서 공적이 있는 사람들한테 주는 상이 인천시 문화상인데 저는 문학 부문에서 받았고요.
그건 이제 딱 이 책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시기가 묘하게 맞았고 인천 출판문화상은 인천 교보문고하고 인천 투데이라는 신문사가 공동으로 이상 인천 출판문화상 조직위원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책을 5권을 선정하는데요. 제 책이 선정되기도 해서 소설이라 특별상을 받아서 인천 출판문화상도 받았고 오늘 여기 오기 전에 갔더니 별도의 매대로 제 책이 있더라고요.
◆ 조용주 : 네 우리 양 작가님 그동안 상도 지금 올해 작년에 많이 받으셨는데 그전에 낸 소설들 있고 저도 읽어봤는데요. 무성 영화 시절 인천 제물포에서 하는 '변사 기담'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 <변사 기담>을 포함해서 <인천이란 지도를 들고>라는 또 산문집도 냈고 주로 인천을 배경으로 해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계신데요.
양 작가님께서 인천은 소설의 배경에 가까운지 주인공에 가까운지 인천에 대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지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좀 말씀해 주세요.
◇ 양진채 : 그러니까 작가들이 작품을 쓰다 보면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돼요. 결국은 잘 쓰는 작가들은 많이 있는데 이 소설을 읽고 '아! 이건 양진채 소설가가 쓴 것 같은데'라고 느낄 수 있는 것들. 작가들이 자기 이름을 드러내는 방법이 있는데 저는 가진 것도 없고 뭐 이야기할 것도 없어서 아 그러나 인천이 있다.
다른 작가들이 갖지 못하는 소위 서울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갖지 못하는 인천의 정체성을 내 소설 속에 계속 녹여 내야겠다. 내 이야기 속에 그런 생각을 해서 이제 첫 장편 <변사 기담>도 애관극장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었고요.
이번에 <언제라도 안아줄게>도 애관극장 바로 옆에 있는 답동 성당 그리고 동일방직 또 도시 산업선교회 이런 부분을 다루고 있는데요. 제게 인천은 배경과 주인공의 중간쯤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늘 인천이라는 장소 안에 숨어 있거든요.
인천은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도시라기보다는 늘 누군가의 삶을 받아내는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주해 온 사람들, 공장에 다니던 사람들, 항구와 주변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처럼요. 그래서 제게 인천은 무대를 꾸며주는 공간이라기보다 묵묵히 삶을 살아내는 인물에 가깝다고 생각을 합니다.
얼마 전에 '새얼 아침 대화'에 갔는데 지용택 이사장님이 '바다는 빗물에 젖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게 인천이라는 거죠. 바다가 빗물에 젖지 않듯이 가뭄에 마르지 않듯이. 다 받아주는 공간. 제 소설 속의 인천도 자신을 화려하게 드러내는 공간이 아니라 바로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 조용주 : 네 좋습니다. 그러면 마음을 담아서 <언제라도 안아줄게> 이 책 속에서 우리 양진채 작가께서 직접 소개해 주고 싶은 구절이 있다고 하시는데 낭독해 주시죠.
◇ 양진채 : "미은은 외롭게 싸우는 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고 달려가려 했다. 오랫동안 고공농성을 하는 동지들, 침몰한 배에 아이를 묻은 부모, 축제일에 압사당한 이의 가족, 또 산재 사고로 억울하게 죽은 이의 가족 어디든 갔다 가서 피켓을 들든 청소를 하고 밥을 하든 구호를 외치든 행진을 하든 이야기를 나누든 서서 있든 뭐든 했다.
온갖 악의적인 폭력에 맞서 오랫동안 싸워야 할 때 그걸 온전히 그대로 맞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고립되지 않게 곁에 있다고 혼자가 아니라 이렇게 누군가 옆에 있다고 그러니 쓰러지지 말라고 부디 기운을 내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건 미은을, 명숙을 그 아이 찰떡을 위해 태오나 경준이 종을 쳐주던 것과 같았다."
1970년대 국가기관이 개입한 대표적 노조 탄압 사례인 동일방직 '분뇨 투척 사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추가로 위자료를 받게 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8월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을 받았더라도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린 결과다. 서울고법 민사15부(이동근 부장판사)는 14일 김모씨 등 동일방직 조합원 및 그 유족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국가가 이들에게 총 4억5천1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18.12.14 [사진=연합뉴스]
이 소설 속 문장은요. 태오와 경준이 아무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미은의 절규를 듣고 답동 성당 종탑으로 올라가 손바닥에 부르트도록 종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구절을 읽은 이유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동일방직의 여성들처럼 누군가 그들의 얘기를 간절히 들어주길 원하는 목소리들이 있어요.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려면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언제든 그들의 소리를 듣고 곁에 있어 주려는 마음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소설을 쓰게 된 중요한 지향점이기도 해요.
◆ 조용주 : 여기 등장하는 미은, 명숙, 선자 모두 같은 공장에서 일하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제 시대를 견뎌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피해자이기 전에 웃고 사랑하며 질투하고 꿈꾸는 존재로 그려져서 더 아프게 느껴지는데요.
오랜 시간 역사에서 잊혀 왔던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을 삶의 얼굴을 가진 인물들로 전면에 내세운 이유와 그들의 일상도 섬세하게 복원하려고 했던 이유도 우리 작가님의 의도가 뭔지 궁금합니다.
◇ 양진채 : 뭐 이 소설을 쓴다면 다 그렇게 썼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결이 좀 달랐을 뿐일 텐데요. 역사에서 항상 똥물을 뒤집어쓴 여공들로만 기억됐던 분들이죠. 어느 분이든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도 그분도 다 먹고 자고 하는 일들을 다 했었던 것처럼, 이분들도 그저 웃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꿈꾸던 20대 초반의 청춘이었던 사람들이잖아요.
저는 그 삶이 지워진 채 사건만 남아 있는 게 늘 불편했어요. 그분들 중에서는 어떤 분들은 지금 70대가 되도록 자기 자식에게 그때의 그 일을 밝히지 못하는 분들도 있고요.일부러 모임에 안 나오시는 분들도 있고 한데요. 그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념 때문에 그렇게 싸웠던 것이 아니라 같이 싸우던 친구나 동료들 때문에 끝내 이 길에 있었다는 말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지금도 지금의 나이 들어서 만난 분들이 '그때 얘가 나를 그렇게 도와주고 그렇게 유치장에 갇혔을 때 나를 위해서 뭘 해 주지 않았더라면' 이런 얘기를 해요. 유치장에서 이 언니가 너무 맞고 있으니까 연약한데 너무 맞고 있으니까 대신 나를 때려라 뭐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 말이 그렇게 가슴에 박혀서 끝내 이 친구를 배반하지 않고, 동생을 배반하지 않고 이 길을 같이 걸어왔던 그랬던 분들이거든요.
일부러 투쟁의 장면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게 아니라 같이 밥 먹고 방에서 수다 떨고 사소한 꿈을 이야기하는 순간들을 많이 넣으려고 한 거죠. 그 일상들이 복원될 때 비로소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라 삶을 지금까지 살아낸 아까 조 변호사님이 얘기했던 누나, 언니, 나의 딸 지금은 이제 어머니, 할머니가 되셨겠죠. 그렇게 삶이 복원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 조용주 : 저는 이 동일방직이라는 사기업에 대해서 함부로 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인천 동구에 이제 동구가 없어져서 제물포구 안에 편입되지만, 상당히 땅이 크고 괜찮더라고요. (네 맞아요.)
그리고 중요한 위치예요. 그 중요한 위치가 지금 방치되어 있는데, 저는 더는 아파트 들어오고 이런 거는 별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 지역이 아파트 대신에 뭐 이렇게 공원으로, 그건 안 되겠지만 최소한 이러한 동일방직에 관련된 사건들을 기억할 수 있는 박물관이나 역사관 이런 것들이 좀 생겼으면 좋겠어요. 전체 땅으로 봐서는 미술관 같은 문화시설이 들어오면 제일 좋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그건 이제 토지주가 있으니까 뭐라고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장소고 원래 일본 강점기 때부터 거기가 방직 공장이었죠?
◇ 양진채 : 네 방적 공장. 방적은 솜에서 실을 짜내는 거고, 방직은 이제 천까지 만드는 과정이고요.
실제로 많은 분이 지금 조 변호사님이 얘기했던 것처럼, 이 넓은 땅 안에 그런 노동 역사관 같은, 이게 객관적인 사실이잖아요. 최초의 여성 지부장을 세우고 싸워왔던 이런 것들을 좀 이 사건뿐만 아니라 노동 역사를 인천에서 알려낼 수 있는 그런 것도 좀 만들고. 뭐 여러 제안을 하고 이야기하는데 토지주인 동일방직 측에서는 그런 거에 대해서 아주 완고해요.
◆ 조용주 : 자기의 그런 역사를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사용자가 잘못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걸 시인하는 그런 역사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건가 보네요. 그럴 수 있겠죠. 뭐 쉽지 않죠. 그런데 저는 도시 측면에서 볼 때 그 공간이 되게 중요한 위치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공간 하나 변하는 것으로 동구가 그러니까 이제 제물포구 엄청 많이 바뀌지 않을까.
그래서 중구 개항장 쪽은 어쨌든 내향 재개발이든 이런 얘기가 나오지만 사실 동구는 공장들이 많잖아요. 공장들이 워낙 크고 오래된 곳이 많긴 한데, 어차피 이제 그것도 현대에 맞게 변화해야 하고 이제 공장이 비면 그게 하나의 문화시설이나 공공시설로 가면 훨씬 더 우리 원도심이 더 살기 좋은 데가 될 것 같거든요.
근데 그 핵심이 동일방직 부지예요. 그래서 저기가 좀 잘 변했으면 좋겠다. 그냥 아파트만 들어오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인천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변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좀 들더라고요.
◇ 양진채 : 역시 도시 개발, 도시 공부를 하셔서 조 변호사님이 좋은 의견을 내주셨는데요. 그래서 동일방직을 좀 그렇게 해보려고 많은 선진 지역도 갔다 오고, 동일방직 대표, 회장님과 논의도 해보고 그랬었는데 어쨌든 지금은 안 되는 상황인데,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변화되기를 아주 간절히 바라죠.
◆ 조용주 : 리더의 의지와 방법을 찾으면 다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뭐 거기서 제가 지금 말할 건 아닌 것 같고요. 오랜 시간 우리 양 작가님과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끝으로 우리 어떤 곡을 듣고 마무리할까요?
◇ 양진채 : 두 번째 곡으로는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골라봤습니다. 소설 마지막 아까 말씀하셨듯이 해양장례 장면에 '아모르 파티' 노래가 나와요. 아모르 파티는 운명을 사랑하라 하는 의미인데요.
비슷한 느낌으로 이 노래에도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 하지만 후회는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딱 맞아떨어지진 않는데 노래를 생각하는데 이 노래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요. 그분들에게는 그렇게 이 세상을 모르고 그 싸움에 나섰을지는 모르지만, 그분들이 지금까지 후회하지 않는 당당한 삶을 살고 있고 그래서 그것만이 내 세상 그분들이 그렇게 싸웠던 것들에 대한 응원처럼 한번 이야기를 듣는 노래를 듣는 그런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그 길에 섰던 그분들뿐만 아니라 많은 분이 길 위에 서 있는데요.그 모든 분과 함께 듣고 싶고요. 오늘 <사람과 책>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새해에 좋은 일 더 많이 생기길 바라면서요. 저는 소설 쓰는 양진채였고요. 소설 <언제라도 안아줄게>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조용주 : 지금까지 양진채 작가와 함께했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조용주가 만난 사랑과 책>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경인방송을 떠나게 됐는데요. 그동안 '사람과 책'을 넘나들며 여정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청취자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또 다른 곳에서 뵐 수 있으면 그때 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조용주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용주 변호사, 양진채 작가 [경인방송 사람과 책 제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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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너 : 책으로 만난 사람 : <언제라도 안아줄게> 저자 양진채
■ 진행 : 조용주 변호사
■ 출연 : 양진채 작가
◆ 조용주 : 한 권의 책 안에는 독자에게 전하는 내용뿐 아니라 작가의 고민과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책을 펼치며 우리의 삶도 들여다보는 시간 책으로 만난 사람 오늘도 반갑게 만나보겠습니다.
바다이야기5만 1978년 인천 동일방직에서 벌어진 여성 노동자 노조 탄압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은 단순히 사건을 재현하거나 투쟁의 연대기를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는데요.
누군가의 딸인 동시에 친구였고 웃으며 사랑하던 청춘이었던 여성들의 삶을 사람의 이야기로 복원한 소설입니다. 반백 년에 걸쳐 이어진 투쟁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의 시간을 기억의 서사이자 애도의 형식으로 되살려낸 장편 소설이죠.
따끈한 신작 소설 <언제라도 안아줄게>를 쓴 소설가 양진채 작가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양진채 : 안녕하세요.
◆ 조용주 : 새해가 됐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작년에는 일 많이 하셨죠?
◇ 양진채 : 네 바다이야기프로그램 . 연말을 아주 바쁘게 보냈습니다. 조 변호사님도 새해 좋은 일 많기를 바랍니다.
◆ 조용주 : 네 감사합니다. 저도 경인방송 <사람과 책>을 이제 1년 반 넘게 해 왔거든요. 오늘 또 양 작가님을 평소에도 존경하는 분인데 방송국에서 만나니까 겁나게 반갑습니다. <언제라도 안아줄게>이 책은 12월에 나온 책이죠?
◇ 양진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채 : 11월 20일에 나왔어요.
◆ 조용주 : 이 책이 실제 사건인 동일방직 노조 탄압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잖아요. 양 작가님 청취자분들께서 동일방직을 모르는 분도 많으실 것 같고 동일방직 노조 탄압 사건은 더 모르실 것 같아요. 그 이야기에 대해서 좀 설명해 주시고 이 이야기를 왜 소설로 택했는지 얘기해 주시겠어요?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 양진채 : 네 먼저 청취자 여러분께 인사를 못 드렸는데요.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 소설가 양진채입니다. 이번에 두 번째 장편 소설 <언제라도 안아줄게>로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이 소설은 동일방직 노조 탄압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동일방직 사건은 똥물을 뒤집어쓴 여성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50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왔어요. 그 사건으로부터 그녀들의 꿈인 복직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들의 삶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인터뷰 자료나 이런 것들이 곳곳에 있기는 하지만 이분들의 삶을 조금 삶으로 기록을 하고 싶었어요. 투쟁이 아니라.
그래서 저는 소설 마지막 부분에 보면 '수억 광년의 빛이 우리에게 와서 빛을 내듯이 너는 그렇게 왔고 내내 사라지지 못한 거라고 아마 빛도 그래서 사라지지 못하고 내내 빛을 내는 거라고 누군가의 염원이 모이고 모이면 물리적 시간은 길이를 알 수 없는 시간이 된다.'라고 적었습니다.
누군가의 가슴에 박혀 끝끝내 사라지지 못하는 기억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길이를 알 수 없는 시간이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 사건으로부터 50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왔지만 그녀들에게 그날은 5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어제처럼 생생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되돌이켜 보면 그분들은 청춘이었죠. 이제 막 20대 초반이거나 중반이거나 청춘을 겪었던 그런 노조 탄압을 당했던 사건들은 그녀들에겐 영영 뽑히지 않을 상처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시절의 기억과 청춘을 부당한 것에 고개 숙이지 않았던 그녀들의 용기와 연대를 보여주고 싶어서 이 소설을 썼습니다.
◆ 조용주 : 우리 양 작가님은 인천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시는 분으로 유명한데요.이 동일방직은 어디 있죠?
◇ 양진채 : 지금 인천시 동구 만석동 관할입니다. 거의 50만 평이 넘는 매우 큰 공장이고요. 그래서 동구의 지도를 보면 그 동일방직 건물 자체가 전체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조용주 : 지금은 공장이 운영이 안 돼서 사실 그 옆을 지나갈 길이 별로 없고 그래서 아마 인천에 새로 이사 오신 분들이나 그런 분들은 만석동이나 동일방직에 대해서 잘 모르실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 화수동, 만석동 그 부근에서 살았던 사람이라 동일방직은 저한테는 멀지 않은 곳이에요.
그리고 사실 저희 누님 두 분이 동일방직에서 노동했던 그런 분들이었기 때문에 더 좀 다가왔던 소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누님들 같은 경우에 2교대 하고 거의 밤낮이 바뀌어서 사는 거죠.
◇ 양진채 : 맞아요.
◆ 조용주 : 그래서 집에서는 그냥 잠만 잤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회사 나가면 12시간 근무하고 집에 오면은 잠만 자고.
그래서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는데 잘 접할 기회는 없었는데 공장에서 힘든 일이 있었는지는 제가 어렸을 때는 잘 몰랐었는데 또 나중에 커서 '똥물 사건' 이거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78년에 일어났더라고요. 기록을 보면 1978년 2월 21일로 되어 있던데 그때 그 여공들한테 똥물을 끼얹는 사건 또 그게 또 사진으로 남아서 그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것 같아요.그 일이 일어났던 배경이나 과정에 대해서 한번 좀 설명해 주시겠어요
◇ 양진채 : 아시는 분들도 많이 알고, 또 모르시는 분들은 전혀 모를 텐데요. 이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뭐 '역사저널' 이런 데서도 이 동일방직 똥물 사건이 한번 방송이 된 적이 있었는데요.
이 똥물 사건은 그 이전에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이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지부장을 세웁니다. 그러니까 여성 노동자들이 모임을 통해서 '아, 이게 노동자의 삶이 어떻게 돼야 한다.'라고 각성하게 되고 그래서 노조 대의원 선거에 나가게 되고 대의원으로 뽑히고 나서는 나중에 지부장까지 뽑는 최초의 여성 지부장을 선출하게 되죠.
처음에는 회사 측에서 되게 우습게 본 거예요. 뭐 무식한 여공들이 뭘 알면 안다고 뭐 또 얼마나 자기들끼리 뭐 복작거리겠어. 뭐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잘 싸워왔거든요. 탈의실도 만들고 점심시간도 조금 더 확보하고 생리 휴가도 따내고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이게 조금 회사 측에서 위협을 느낀 거예요. 그러다가 뭐 여러 사건을 겪게 되죠.
그중에 한 사건이 지부장하고 사무장을 경찰서로 연행하는 바람에 여공들이 단체로 시위를 벌였던 게 있고요. 이분들이 그래서 회사 측에서 조금 위험하다고 느낀 거예요. 다음 선거에서도 또 여성 지부장이 뽑히면 이건 좀 곤란한데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래서 회사 측뿐만 아니라 정보과 형사도 개입해서 이 여성 지부장 선출을 방해하려고 며칠 전부터 분위기가 안 좋았죠. 이게 소설 속에 보면 새벽 6시에 그 당시로는 아까 조 변호사님은 누나들이 2교대를 했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3교대였거든요.
그래서 밤을 새우고 10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여성 노동자들부터 투표를 시작하고 있었어요. 투표를 방해해야 여성 지부장이 선출되는 걸 막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투표를 하러 줄을 맞춰서 막 퇴근하면서 투표를 하러 가던 길에 남성 노동자들이 똥물을 뿌리는 사건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나 황당했던 거죠.
동일방직 전경 [사진=연합뉴스]
◇ 양진채 : 투표하러 오는 여공들뿐만 아니라 그 노조 사무실 안에도 이미 똥물을 뿌리고 투표함을 부수고 이러면서 투표를 아예 못하게 방해를 했고 그러면서 그냥 똥물만 뿌린 게 아니라 무자비한 폭력도 같이 같이 일으키고 뭐 했었죠.
그런 일들이 지금은 그냥 '똥물 사건' 이렇게 되는데 그래서 그 사건을 기록한 건 동일방직 길 건너편에 있었던 우일 사진관 사진사분이 사진을 찍어줬고 그 사진을 보관하고 있는 바람에 그게 세상에 알려지게 됐었고요. 우리가 막연히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했다면 그건 믿을 수 없으므로,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만큼 참혹한 일이었던 사건이죠.
◆ 조용주 : 그러니까 그게 만약 사진이 안 남아 있으면, 지어낸 이야기야 뭐 말도 안 돼. 이렇게 얘기를 했을 것 같은데, 사진이 딱 남아 있으니까 말을 못 하는 거죠.
◇ 양진채 : 맞아요. 이게 단순히 한 공장 안에서 회사 측이 일으킨 사고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조직적인 게 나중에 아주 나중에 가서야 밝혀졌던 거고요. 그 당시에는 여성 노동자들이 이렇게 싸움이라는 것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에서도 굉장히 냉대했던 거죠.
당시가 70년대 말이거든요. 70년대에 우리나라 사회상을 생각을 해보면 짐작이 갈 거예요. 그래서 그 와중에 여성 노동자분들이 그것도 좀 청춘이었을 20대 초중반 여성분들이 그렇게 싸워왔던 내용이라고 볼 수 있어요.
◆ 조용주 : 저도 이제 그 사진을 보면서 똥물을 맞은 그 여공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존감 떨어지는 거 생각하면 울컥하더라고요. 이분들 지금 살아계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지금 살아계시면 나이가 어느 정도 될까요?
◇ 양진채 : 지금 살아계시는 분들은 보통 70대 중반 후반 이렇게 많이 계시고요. 지금도 그때 싸움에 앞장섰던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끼리 모임도 하시고 아직도 사회 활동을 하시고 계세요.
◆ 조용주 : 양 작가님 소설 쓰실 때 그분들을 인터뷰하셨다든가 뭔가 이야기를 들어서 이 소설에 반영한 것도 있나요?
◇ 양진채 : 물론 있죠. 그런데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인터뷰를 하지는 않았다고 제가 뒤에 작가의 말을 쓰기는 했는데 그분들과 만나는 계기는 여러 번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 소설을 위해서 만난 게 아니라 저도 인천 지역에서 문화 활동을 하고 사회 활동을 하다 보니까 같이 만나게 되는 접점들이 있었고요. 예전에 제가 화도진 문화원에서 근무 할 때는 동일방직도 인천 동구지만 그 소설 속에 나오는 '도시산업선교회'도 동구에 있었기 때문에 동일방직에 계셨던 분들이...
그 당시에 활동했던 사진을 모아서 저희가 한번 집담회 그러니까 사진을 보면서 옛날이야기를 나누는 이런 집담회를 그분들 한 10여 분을 모셔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또 여성 노동자의 길, 노동자의 길이라는 길들이 있는데 그 길을 같이 걷기도 했고요.
◆ 조용주 : 그 길은 우리 양 작가님이 만드신 길이잖아요?
◇ 양진채 : 제가 만들었다기보다는 어쨌든 제가 기획을 하고 화도진 문화원에 있을 때,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기획을 한 거죠. 인천이 노동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도시잖아요. 개항에서부터 70년대 이렇게 쭉 보면 노동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가 있는데요.
특히 동구가 그런 쪽에서는 중심이었고 제가 화도진 문화원의 사무국장으로 와 있으면서 20년대부터 문학 작품을 보면 이 동굴을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 특히 노동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많아서 그 길을 한번 열어서 연결하고 뭔가 문학 이야기를 하고 이렇게 노동으로 보는 인천의 정체성을 좀 찾고 싶어서 노동자의 길을 만들기도 했고요.
또 '도시산업선교회' 분들과 또 배다리에 있는 문화 양조장에 계셨던 선생님들. 이렇게 해서 여성 노동자의 길도 만들고 그래서 비슷한 코스이긴 한데 그런 코스들을 많이 답사할 수 있도록 했고요. 특히 학교에서 단체로 답사를 하거나, 그 길을 돌아보면서 인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이런 많은 계기가 됐었어.
◆ 조용주 : 제가 이 책도 읽고 다른 자료도 보니까 결국 나중에는 진실도 밝혀지고 이분들 명예 회복하지 않으셨나요?
◇ 양진채 : 네 맞아요.
1970년대 노동 운동을 벌인 동일방직 인천공장 노조 [사진=연합뉴스]
◆ 조용주 : 그래서 국가가 개입한 사건이라는 걸 알고 저는 충격이었어요. 무슨 노조 사건에 안기부가 개입했나. 그 정도로 이게 중요한 사건인지 아니면 그 시기에 국가가 개입해야 할 일이었던 건지 잘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 양진채 : 저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보통 단위 노조 사업이라고 생각을 하고 했는데, 그 당시에는 여성이 동일방직의 똥물 사건뿐만 아니라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 활동이 중요했던 이유는 최초의 여성 지부장을 세웠던 때 세웠어요.
그러니까 동일방직뿐만 아니라 70년대에는 일차 산업 방직 공장들이 엄청 많았고 또 뭐 섬유 산업이 엄청나게 발달했었는데 그런데도 여성들의 임금은 남성 임금의 거의 절반 수준도 안 되고 뭐 이랬었는데, 동일방직에서 최초로 여성들이 여성 대의원들을 뽑기 시작하고 여성 지부장을 최초로 세운 거예요.
◆ 조용주 : 최초로?
◇ 양진채 : 그러니까 이게 좀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러면서 이게 상급 노조하고 관계도 있고 여러 가지 얽혀 있는데 그중에 나중에 정보과에 있었던 사람이 양심선언을 했거든요. 그때의 그런 개입이 되었던 정황들을 밝히면서 이분들이 명예도 회복하고 보상도 일정 부분 받게 됐고 그렇게 되었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이분들이 원하는 건 물론 본인들의 싸움이 정당했다는 것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해고가 부당하므로 다시 공장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싶다.
해고된 대부분의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로 이 해고가 부당하므로 나는 단 하루를 일하더라도 다시 공장에 들어가서 정당하게 일을 하고 내가 내 손으로 걸어 나오는 것.
이런 꿈이 있었는데 해고되셨던 분들은 끝내 복직 권고가 있었음에도 복직되지 못하기도 했고 지금 동일방직 공장이 이제 베트남이나 또 지방으로 일부 이전되기도 하고 이러면서 또 이미 이제 나이도 많이 드셔서 복직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죠. 그러니까 그분들에게는 끝내 응어리가 하나는 남아 있는 거예요.
◆ 조용주 : 우리 양 작가님 소설에서 또 좀 더 잘 이해가 됐던 것이 이 공간이 저한테는 익숙한 공간들이거든요. 만석부두나 자유공원 답동 성당. 이런 곳들이 나오는데 그곳은 우리 양 작가님도 잘 아시는 곳들이고 여기 아마 노동자들도 당시에 그곳을 잘 다니고 연애도 하고 바람도 쐬고 놀러 가는 것도 있어요. 특히 물치도에 놀러 가는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 양진채 : 네 그 당시에는 작약도였죠. 그 당시에는 이렇게 인천 사람들이 거기 자주 놀러 갔죠.
◆ 조용주 : 또 답동 성당이 등장해요. 거기서 종을 치는 장면이 자주 나오고 소설 속 태후가 종을 치는 애죠. 그래서 이제 신부로 성장하는 과정들이 이렇게 쭉 나오는데 그 종이 의미하는 게 뭘까요?
◇ 양진채 : 제가 이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요소 중의 하나가 이 종을 치는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실제로 들었어요. 그러니까 제일 가까운 지인이 우연히 어느 자리에서 '내가 고등학교 때 답동 성당에서 새벽종을 한 달간 쳤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 조용주 : 원래는 종 치는 분이 따로 있는 거죠?
◇ 양진채 : 네. 소설 속에서도 그렇듯이 종을 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나 칠 수 있는 게 아니라 신앙도 있어야 하고 그다음에 체력이 굉장히 중요해요.
◆ 조용주 : 종이 답동 성당 꼭대기에 있나요?
◇ 양진채 : 맨 꼭대기는 공명실이고 그 위에는 이제 첨탑처럼 밖으로 볼 수 있는 데고 그 아래에 종이 있어요.
◆ 조용주 : 그럼 한참 올라가야 하는 거죠. 종을 치려면?
◇ 양진채 : 계단으로 2층 조금 넘게 올라가는 정도니까 그게 힘든 게 아니라 종 자체가 엄청나게 크고 밧줄이 무거우므로 웬만한 사람은 줄을 잡다가 놓치면 크게 다칠 수가 있대요.
한 2m까지 따라 올라가다가 떨어질 수가 있어서 그래서 이제 힘도 있어야 하고 종교적 신앙도 있어야 하고 뭐 이런 여러 조건 때문에 아무나 종을 칠 수는 없는데 신포시장 안에 성광 떡집이라고 있어요.
거기에 이종복 시인이라고 계시는데 그분이 종을 쳤던 분이에요. 그래서 우연히 그 얘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분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건 정말 중요한 요소다. 종이라는 것이 보통 그 당시에는 70년대는 삼종 기도를 했기 때문에 하루 3번 종을 쳤거든요.
근데 이 종이라는 게 소설 속에서도 나와 있지만, 예수님의 고통과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한 뭐 위안과 이런 여러 의미로 종을 쳤는데요. 이 종을 치는 것을 소설 속에 꼭 넣고 싶었어요.
인분 뒤집어 쓴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 [사진=연합뉴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기증자료]
동일방직의 여성들이 폭력을 당할 때, 지금 같은 경우에는 무슨 일이 터지면 다 연락망이 돼서 동원되고 뭐라도 할 수는 있지만, 그 당시에 그 새벽에 그 똥물을 뒤집어쓰고 있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것 때문에 누군가가 그렇게 온 상처 입은 여성 노동자들을 좀 도와줄 수 있었더라면, 소설 속에 태호나 경준처럼 올라가서 종이라도 쳐 줄 수 있었더라면 그때의 싸움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답동 성당이 아주 이 소설 속에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고요. 답동 성당에 계신 선생님들 소설 한번 읽어보시고요. 이 소설을 쓸 때 80년대도 그렇고 답동 성당은 인천에서 굉장히 중요한 종교적 역할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할을 했었어요.
◆ 조용주 : 서울에 있는 명동 성당과 같은 역할을 한 거죠. 노동자들에게.
◇ 양진채 : 87년 88년도 인천에서도 대대적인 민주화 운동을 할 때, 모든 싸움의 시작은 답동 성당 안에서 집회를 하고 그 길로 나와서 동인천역까지 가는 그 대로변에서 행진하고 했었거든요.
또 거기에 계신 신부님들이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탄압을 막아주기도 하고 싸움을 함께 하기도 하셨고 그래서 원래는 제가 동구에 있어서 '도시산업선교회' 얘기를 더 많이 넣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제 도시산업선교회는 저하고 인연이 깊기도 하고 굉장히 많이 찾아가기도 하고 거기 계신 목사님도 잘 알고 그런데도 (답동 성당) '종'이 필요했기 때문에 답동 성당을 모델로 했고 답동 성당이 당시에 그러니까 실제로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을 품어준 두 곳, 도시산업선교회와 답동 성당이기도 했고요.
또 80년대에 그런 역할을 해왔던 이 성당의 역할들 이런 것들을 다시 한번 환기하고 싶어서 답동 성당을 이번 소설에 등장시켰어요.
◆ 조용주 : 그렇게 된 거예요. 네 그러면 우리 양 작가님 음악 하나 듣고 가야 할 텐데요. 어떤 곡 들어볼까요?
◇ 양진채 : 어 생각을 해 봤는데요.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이 곡이 문득 떠오르더라고요. 가사 중에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막막한 어둠으로 별빛조차 없는 길일지라도 포기할 수는 없는 거야.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뜨겁게 날 위에 부서진 햇살을 보겠지'라는 가사가 있어요.
이 그분들께 제 방식대로 여러분들이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걸어와서 어느 날에는 햇살을 부서진 햇살, 나를 위해 부서진 햇살을 보듯이 지금의 삶을 맞닥뜨릴 수 있었던 것.
그분들이 이게 삶이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라 당당한 삶으로 여태껏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는 모습으로 보여드려서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제 나름의 그분들을 안아주는 방식이랄까요. 그런 생각으로 이 노래를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 조용주 : 토요일 오전에 편안한 문화 쉼터가 되어주는 조용주가 만난 사랑과 책, 오늘 책으로 만난 사랑 코너에서는 <언제라도 안아줄게>를 쓰신 양진채 작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나스카 라인'으로 등단하셨죠? 데뷔 이후에 단편 장편, 테마 소설, 스마트 소설까지 다양한 형식 창작 활동을 이어오셨는데요.
작년에 인천광역시 문화상을 수상하셨고 또 인천 출판인협회인가요? 거기서 출판문화상도 수상하시고 큰 상 2개나 받으셨어요?
◇ 양진채 : 문화 쪽으로 보면 그전에 인천문인협회에서 주는 인천 문학상을 받았고 이 인천시 문화상은 그 해에 또 그 해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인천에서 문화 활동을 하면서 공적이 있는 사람들한테 주는 상이 인천시 문화상인데 저는 문학 부문에서 받았고요.
그건 이제 딱 이 책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시기가 묘하게 맞았고 인천 출판문화상은 인천 교보문고하고 인천 투데이라는 신문사가 공동으로 이상 인천 출판문화상 조직위원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책을 5권을 선정하는데요. 제 책이 선정되기도 해서 소설이라 특별상을 받아서 인천 출판문화상도 받았고 오늘 여기 오기 전에 갔더니 별도의 매대로 제 책이 있더라고요.
◆ 조용주 : 네 우리 양 작가님 그동안 상도 지금 올해 작년에 많이 받으셨는데 그전에 낸 소설들 있고 저도 읽어봤는데요. 무성 영화 시절 인천 제물포에서 하는 '변사 기담'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 <변사 기담>을 포함해서 <인천이란 지도를 들고>라는 또 산문집도 냈고 주로 인천을 배경으로 해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계신데요.
양 작가님께서 인천은 소설의 배경에 가까운지 주인공에 가까운지 인천에 대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지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좀 말씀해 주세요.
◇ 양진채 : 그러니까 작가들이 작품을 쓰다 보면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돼요. 결국은 잘 쓰는 작가들은 많이 있는데 이 소설을 읽고 '아! 이건 양진채 소설가가 쓴 것 같은데'라고 느낄 수 있는 것들. 작가들이 자기 이름을 드러내는 방법이 있는데 저는 가진 것도 없고 뭐 이야기할 것도 없어서 아 그러나 인천이 있다.
다른 작가들이 갖지 못하는 소위 서울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갖지 못하는 인천의 정체성을 내 소설 속에 계속 녹여 내야겠다. 내 이야기 속에 그런 생각을 해서 이제 첫 장편 <변사 기담>도 애관극장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었고요.
이번에 <언제라도 안아줄게>도 애관극장 바로 옆에 있는 답동 성당 그리고 동일방직 또 도시 산업선교회 이런 부분을 다루고 있는데요. 제게 인천은 배경과 주인공의 중간쯤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늘 인천이라는 장소 안에 숨어 있거든요.
인천은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도시라기보다는 늘 누군가의 삶을 받아내는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주해 온 사람들, 공장에 다니던 사람들, 항구와 주변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처럼요. 그래서 제게 인천은 무대를 꾸며주는 공간이라기보다 묵묵히 삶을 살아내는 인물에 가깝다고 생각을 합니다.
얼마 전에 '새얼 아침 대화'에 갔는데 지용택 이사장님이 '바다는 빗물에 젖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게 인천이라는 거죠. 바다가 빗물에 젖지 않듯이 가뭄에 마르지 않듯이. 다 받아주는 공간. 제 소설 속의 인천도 자신을 화려하게 드러내는 공간이 아니라 바로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 조용주 : 네 좋습니다. 그러면 마음을 담아서 <언제라도 안아줄게> 이 책 속에서 우리 양진채 작가께서 직접 소개해 주고 싶은 구절이 있다고 하시는데 낭독해 주시죠.
◇ 양진채 : "미은은 외롭게 싸우는 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고 달려가려 했다. 오랫동안 고공농성을 하는 동지들, 침몰한 배에 아이를 묻은 부모, 축제일에 압사당한 이의 가족, 또 산재 사고로 억울하게 죽은 이의 가족 어디든 갔다 가서 피켓을 들든 청소를 하고 밥을 하든 구호를 외치든 행진을 하든 이야기를 나누든 서서 있든 뭐든 했다.
온갖 악의적인 폭력에 맞서 오랫동안 싸워야 할 때 그걸 온전히 그대로 맞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고립되지 않게 곁에 있다고 혼자가 아니라 이렇게 누군가 옆에 있다고 그러니 쓰러지지 말라고 부디 기운을 내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그건 미은을, 명숙을 그 아이 찰떡을 위해 태오나 경준이 종을 쳐주던 것과 같았다."
1970년대 국가기관이 개입한 대표적 노조 탄압 사례인 동일방직 '분뇨 투척 사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추가로 위자료를 받게 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8월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을 받았더라도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린 결과다. 서울고법 민사15부(이동근 부장판사)는 14일 김모씨 등 동일방직 조합원 및 그 유족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국가가 이들에게 총 4억5천1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18.12.14 [사진=연합뉴스]
이 소설 속 문장은요. 태오와 경준이 아무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미은의 절규를 듣고 답동 성당 종탑으로 올라가 손바닥에 부르트도록 종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구절을 읽은 이유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동일방직의 여성들처럼 누군가 그들의 얘기를 간절히 들어주길 원하는 목소리들이 있어요.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려면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언제든 그들의 소리를 듣고 곁에 있어 주려는 마음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소설을 쓰게 된 중요한 지향점이기도 해요.
◆ 조용주 : 여기 등장하는 미은, 명숙, 선자 모두 같은 공장에서 일하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제 시대를 견뎌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피해자이기 전에 웃고 사랑하며 질투하고 꿈꾸는 존재로 그려져서 더 아프게 느껴지는데요.
오랜 시간 역사에서 잊혀 왔던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을 삶의 얼굴을 가진 인물들로 전면에 내세운 이유와 그들의 일상도 섬세하게 복원하려고 했던 이유도 우리 작가님의 의도가 뭔지 궁금합니다.
◇ 양진채 : 뭐 이 소설을 쓴다면 다 그렇게 썼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결이 좀 달랐을 뿐일 텐데요. 역사에서 항상 똥물을 뒤집어쓴 여공들로만 기억됐던 분들이죠. 어느 분이든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도 그분도 다 먹고 자고 하는 일들을 다 했었던 것처럼, 이분들도 그저 웃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꿈꾸던 20대 초반의 청춘이었던 사람들이잖아요.
저는 그 삶이 지워진 채 사건만 남아 있는 게 늘 불편했어요. 그분들 중에서는 어떤 분들은 지금 70대가 되도록 자기 자식에게 그때의 그 일을 밝히지 못하는 분들도 있고요.일부러 모임에 안 나오시는 분들도 있고 한데요. 그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념 때문에 그렇게 싸웠던 것이 아니라 같이 싸우던 친구나 동료들 때문에 끝내 이 길에 있었다는 말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지금도 지금의 나이 들어서 만난 분들이 '그때 얘가 나를 그렇게 도와주고 그렇게 유치장에 갇혔을 때 나를 위해서 뭘 해 주지 않았더라면' 이런 얘기를 해요. 유치장에서 이 언니가 너무 맞고 있으니까 연약한데 너무 맞고 있으니까 대신 나를 때려라 뭐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 말이 그렇게 가슴에 박혀서 끝내 이 친구를 배반하지 않고, 동생을 배반하지 않고 이 길을 같이 걸어왔던 그랬던 분들이거든요.
일부러 투쟁의 장면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게 아니라 같이 밥 먹고 방에서 수다 떨고 사소한 꿈을 이야기하는 순간들을 많이 넣으려고 한 거죠. 그 일상들이 복원될 때 비로소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라 삶을 지금까지 살아낸 아까 조 변호사님이 얘기했던 누나, 언니, 나의 딸 지금은 이제 어머니, 할머니가 되셨겠죠. 그렇게 삶이 복원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 조용주 : 저는 이 동일방직이라는 사기업에 대해서 함부로 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인천 동구에 이제 동구가 없어져서 제물포구 안에 편입되지만, 상당히 땅이 크고 괜찮더라고요. (네 맞아요.)
그리고 중요한 위치예요. 그 중요한 위치가 지금 방치되어 있는데, 저는 더는 아파트 들어오고 이런 거는 별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 지역이 아파트 대신에 뭐 이렇게 공원으로, 그건 안 되겠지만 최소한 이러한 동일방직에 관련된 사건들을 기억할 수 있는 박물관이나 역사관 이런 것들이 좀 생겼으면 좋겠어요. 전체 땅으로 봐서는 미술관 같은 문화시설이 들어오면 제일 좋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그건 이제 토지주가 있으니까 뭐라고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장소고 원래 일본 강점기 때부터 거기가 방직 공장이었죠?
◇ 양진채 : 네 방적 공장. 방적은 솜에서 실을 짜내는 거고, 방직은 이제 천까지 만드는 과정이고요.
실제로 많은 분이 지금 조 변호사님이 얘기했던 것처럼, 이 넓은 땅 안에 그런 노동 역사관 같은, 이게 객관적인 사실이잖아요. 최초의 여성 지부장을 세우고 싸워왔던 이런 것들을 좀 이 사건뿐만 아니라 노동 역사를 인천에서 알려낼 수 있는 그런 것도 좀 만들고. 뭐 여러 제안을 하고 이야기하는데 토지주인 동일방직 측에서는 그런 거에 대해서 아주 완고해요.
◆ 조용주 : 자기의 그런 역사를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사용자가 잘못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걸 시인하는 그런 역사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건가 보네요. 그럴 수 있겠죠. 뭐 쉽지 않죠. 그런데 저는 도시 측면에서 볼 때 그 공간이 되게 중요한 위치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공간 하나 변하는 것으로 동구가 그러니까 이제 제물포구 엄청 많이 바뀌지 않을까.
그래서 중구 개항장 쪽은 어쨌든 내향 재개발이든 이런 얘기가 나오지만 사실 동구는 공장들이 많잖아요. 공장들이 워낙 크고 오래된 곳이 많긴 한데, 어차피 이제 그것도 현대에 맞게 변화해야 하고 이제 공장이 비면 그게 하나의 문화시설이나 공공시설로 가면 훨씬 더 우리 원도심이 더 살기 좋은 데가 될 것 같거든요.
근데 그 핵심이 동일방직 부지예요. 그래서 저기가 좀 잘 변했으면 좋겠다. 그냥 아파트만 들어오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인천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변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좀 들더라고요.
◇ 양진채 : 역시 도시 개발, 도시 공부를 하셔서 조 변호사님이 좋은 의견을 내주셨는데요. 그래서 동일방직을 좀 그렇게 해보려고 많은 선진 지역도 갔다 오고, 동일방직 대표, 회장님과 논의도 해보고 그랬었는데 어쨌든 지금은 안 되는 상황인데,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변화되기를 아주 간절히 바라죠.
◆ 조용주 : 리더의 의지와 방법을 찾으면 다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뭐 거기서 제가 지금 말할 건 아닌 것 같고요. 오랜 시간 우리 양 작가님과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끝으로 우리 어떤 곡을 듣고 마무리할까요?
◇ 양진채 : 두 번째 곡으로는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골라봤습니다. 소설 마지막 아까 말씀하셨듯이 해양장례 장면에 '아모르 파티' 노래가 나와요. 아모르 파티는 운명을 사랑하라 하는 의미인데요.
비슷한 느낌으로 이 노래에도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 하지만 후회는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딱 맞아떨어지진 않는데 노래를 생각하는데 이 노래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요. 그분들에게는 그렇게 이 세상을 모르고 그 싸움에 나섰을지는 모르지만, 그분들이 지금까지 후회하지 않는 당당한 삶을 살고 있고 그래서 그것만이 내 세상 그분들이 그렇게 싸웠던 것들에 대한 응원처럼 한번 이야기를 듣는 노래를 듣는 그런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그 길에 섰던 그분들뿐만 아니라 많은 분이 길 위에 서 있는데요.그 모든 분과 함께 듣고 싶고요. 오늘 <사람과 책>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새해에 좋은 일 더 많이 생기길 바라면서요. 저는 소설 쓰는 양진채였고요. 소설 <언제라도 안아줄게>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조용주 : 지금까지 양진채 작가와 함께했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조용주가 만난 사랑과 책>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경인방송을 떠나게 됐는데요. 그동안 '사람과 책'을 넘나들며 여정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청취자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또 다른 곳에서 뵐 수 있으면 그때 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조용주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용주 변호사, 양진채 작가 [경인방송 사람과 책 제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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