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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랑다솔 작성일26-01-03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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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reelnara.info
영암 내동리 쌍무덤 복터 제거 후 전경(마한역사문화유적). 전남도 제공
근대는 '개인'이라는 성취였다근대 이후 '개인'은 피와 땀으로 성취한 역사적 결과물이다. 혈연과 신분, 집단적 귀속에 흡수되지 않는 주체로서의 개인은 근대 정치, 사회, 윤리의 핵심 단위가 되었다. 근대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개인이라는 성취'라고 해도 무방하니 말이다. 자유와 권리의 확장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낳았고 급기야 핵개인의 시대까지 진입하였다.
그러나 이 빛나는 성취는 역설적으로 개인의 고립을 심화시켰다. 불온 바다이야기릴게임연타 한 시대마다 그러하긴 하지만 부쩍 늘어난 마약의 범람과 유통 풍경이 한 사례일 수 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제공하는 영성을 잃어버렸다고나 할까.
영성은 불안, 우울, 스트레스 저항력을 높이고 자기인식을 심화시키며 공감, 인내, 용서와 같은 덕목을 길러 정서적 안정과 긍정적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삶의 만족도와 회복 탄력성을 증진 시켜 전반적 백경게임랜드 인 웰빙과 통합적 성격을 이루도록 돕는 요소이다.
영성은 왜 취향과 교리로 줄어들었나하지만 현대에는 사적 신념이나 취향 혹은 종교적 교리의 문제로 축소되었다. 명상 프로그램이나 요가 유행의 행방이 이를 말해준다. 공동체적 영성도 전체주의의 기억과 결합되어 경계의 대상으로 치부된다. 나는 오랫동안 이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실천방안을 궁구해왔 바다이야기고래 다. 개인을 해체하지 않고 고립시키지도 않는 마음 수련이라고나 할까.
삼국지위지동이전 마한조에 기록된 떼춤과 떼창의 제의적 풍경을 단순한 원시적 집단주의의 잔재로 보지 않고 주체적 개인들이 참여하는 고도의 운동 메커니즘으로 재해석해온 까닭이기도 하다.
현대적 영성이란 무엇일까? 특정 종교를 넘어 삶의 근원적 의미와 목적을 모바일릴게임 탐구하고 내면의 통합과 성장을 추구하며 세속적 삶과 영적 가치를 연결하며 타인과의 연대감 속에서 온전한 삶을 실현하는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여정이라고 정의할 만하다. 물질적 만족을 넘어 정체성과 삶의 목적에 대한 성찰, 자아 초월, 창조적 삶, 더 큰 선을 향한 봉사 등 삶의 모든 영역을 포섭하는 통합적이고 역동적인 개념 말이다.
핵개인, 바다이야기오락실 혼자서도 살아가는 인간전통적인 가족 구조가 해체되고 가족이나 타인에 의한 의존 없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결정하며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가 핵개인이다. 송길영 작가가 제안한 용어인데 벌써 보통명사가 되었다. 저출생,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기술 발달로 인해 혼자서도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개인의 확장 시대다. 현대의 핵개인들은 자신의 취향과 욕구 중심으로 소비하고 스스로 선택하며 AI나 각종 플랫폼 기술의 도움을 받아 독립적인 삶을 추구한다.
높은 자율성과 주체성이 두드러진다. '나혼산(나혼자 산다) 라이프 스타일'의 확장, 그래서 과거의 효(孝)나 가족 부양 같은 전통적 가치관이 약해지고 개인의 행복과 만족이 최우선시된다. 하지만 극심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 가족 부양 및 돌봄 부담 가중, 기존 사회적 안전망 약화로 인한 불안정성 증가, 전통적 가치 붕괴, 개인화된 소비와 정보 환경 속에서의 고립 심화 등 폐해가 날로 쌓여간다.
이를 반영한 현상이 반려동물의 급속한 증가이기도 하다. 가족의 유대 약화와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 등 사회적 관계망 축소로 인한 고독사 위험이 증가한다. 기존의 권위주의적 질서나 공동체 해체, 상호 네트워크 기반의 새로운 관계 형성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외로움 문제 해결이라는 문제 봉착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극도로 개인화된 소비 빛 정보 습득 환경이 오히려 다양한 관점과의 접촉을 막고 고립을 심화시킨다. 팬덤화된 온라인 커뮤니티가 일종의 감옥화되는 경향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개인의 주체적인 활동을 촉진하는 동시에 강력한 집단 규범과 배타성이라는 역설적인 족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마한의 떼춤과 떼창에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마한 및 삼한의 고대 제천의례에 대한 시선은 대체로 두 갈래인 듯싶다. 하나는 농경사회에서의 풍요 기원 의례 즉 기능주의적 제의로 해석하는 경향이다. 다른 하나는 집단적 주술 혹은 원시 종교의 형태로 파악하는 관점이다.
하지만 이 관점들은 개인의 주체성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현대의 풍경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떼춤과 떼창을 집단성의 결과가 아니라 개인을 전제로 성립하는 집단 운동으로 파악해야 하지 않겠나?
또한 정태적 형식인 원무(圓舞)가 아니라 구심력과 원심력이 동시에 작동하는 운동 체계 즉 윤가무(輪歌舞)의 형태로 개념화할 필요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2025년 말 학술지에 실은 논문을 통해 개괄해두었으니 참고 가능할 것이다.
고대 제의는 왜 오해돼 왔는가영성을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형식과 상태의 문제로 재정의하여 고대 의례를 현대 영성 담론의 중심부로 재배치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삼국지위지동이전 등 고대 기록에는 제의적 풍경이 간결하면서도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핵심은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밤낮의 구분 없이 노래하고 춤추며, 이 행위가 수일간 지속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서술은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와 한 계열의 제천의례 전반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중국의 시선은 이 풍경을 종종 방탕하거나 무질서한 것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밤낮의 구분이 해체되고 노동과 형벌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며 일상의 규범이 유예되는 시간 말이다.
이것은 무질서가 아니라 예컨대 마한의 소도(蘇塗)라는 공간이 갖는 다른 질서의 개시이다. 오월제와 시월제의 내용이 이를 말해준다. "나라의 여러 읍락에서 '소도'라고 하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달아서 신으로 섬겼다." 부여의 영고 기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섣달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여러 날 동안 연속해서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데 이를 '영고'라고 한다.
이 기간에는 형벌을 주지 않고 감옥에도 보내지 않으며 죄수를 석방한다. 군사에 관한 일이 있을 때도 역시 소를 잡아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잡은 소의 발굽으로 길하고 흉한 것을 점친다." 이 풍경은 제천의례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시간 구조를 전환하는 장치였음을 시사한다.
지금 우리에게 밀어닥친 AI시대의 풍경이 요구하는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고대 풍경 속에서 미래적 영성을 어찌 이끌어 낼 것인지가 지금의 내 관심사다.
영암삼호 강강술래. 국악협회 영암군지회장 임봉금 제공
남도인문학팁
영성의 재정의, 다시 마한을 상고하며 영성은 개별적으로 무엇을 믿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게 어떤 것인가의 문제로 환원되어야 한다. 교리나 신앙 대상 이전에 반복, 리듬, 공간, 관계의 형식을 통해 생성되는 의식상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강강술래와 농악을 주목하는 까닭이며 고대 제의의 떼춤과 떼창을 미숙한 종교로 환원하지 않고 영성의 원형으로 재평가할 필요이기도 하다. 불교쪽에서는 요가나 명상 등을 통해 진전되는 듯 보이는데 기독교쪽은 움직임이 없거나 둔하다.
현대판 대동사회로 나아가는 데 종교적 역할이 작지 않다. 분발을 촉구한다. 더욱이 내가 사는 남도 쪽에 바야흐로 마한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영암 나불도에 국립마한센터가 설립되는 것이 한 사례다.
대대적으로 추적하고 접근할 내력들을 마련하는 것이 연구자로서의 책무다. 마한의 떼춤과 떼창은 의미 전달이나 신화 재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체의 변성(變性) 즉 개인의 주체성이 유지되면서도 집단적 리듬 속에 자신을 재배치하는 구조를 산출할 수 있다.
장차 기회가 되면 마한 영성의 운동 원리를 톺아보고 싸목싸목 풀어갈 계획이다. 그래야 우리의 빛나는 전통 강강술래와 농악을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독해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적 자기를 넘어선 대동사회의 운동학이라고나 할까. 개인들이 서로를 주체로 인정하며 엮어내는 공명 구조다. 심하게 파편화되고 극도로 개인화된 이 시대의 풍경을 마냥 내버려 두는 것은 민속학자의 직무유기다. 무림 고수들의 질정 바란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근대는 '개인'이라는 성취였다근대 이후 '개인'은 피와 땀으로 성취한 역사적 결과물이다. 혈연과 신분, 집단적 귀속에 흡수되지 않는 주체로서의 개인은 근대 정치, 사회, 윤리의 핵심 단위가 되었다. 근대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개인이라는 성취'라고 해도 무방하니 말이다. 자유와 권리의 확장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낳았고 급기야 핵개인의 시대까지 진입하였다.
그러나 이 빛나는 성취는 역설적으로 개인의 고립을 심화시켰다. 불온 바다이야기릴게임연타 한 시대마다 그러하긴 하지만 부쩍 늘어난 마약의 범람과 유통 풍경이 한 사례일 수 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제공하는 영성을 잃어버렸다고나 할까.
영성은 불안, 우울, 스트레스 저항력을 높이고 자기인식을 심화시키며 공감, 인내, 용서와 같은 덕목을 길러 정서적 안정과 긍정적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삶의 만족도와 회복 탄력성을 증진 시켜 전반적 백경게임랜드 인 웰빙과 통합적 성격을 이루도록 돕는 요소이다.
영성은 왜 취향과 교리로 줄어들었나하지만 현대에는 사적 신념이나 취향 혹은 종교적 교리의 문제로 축소되었다. 명상 프로그램이나 요가 유행의 행방이 이를 말해준다. 공동체적 영성도 전체주의의 기억과 결합되어 경계의 대상으로 치부된다. 나는 오랫동안 이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실천방안을 궁구해왔 바다이야기고래 다. 개인을 해체하지 않고 고립시키지도 않는 마음 수련이라고나 할까.
삼국지위지동이전 마한조에 기록된 떼춤과 떼창의 제의적 풍경을 단순한 원시적 집단주의의 잔재로 보지 않고 주체적 개인들이 참여하는 고도의 운동 메커니즘으로 재해석해온 까닭이기도 하다.
현대적 영성이란 무엇일까? 특정 종교를 넘어 삶의 근원적 의미와 목적을 모바일릴게임 탐구하고 내면의 통합과 성장을 추구하며 세속적 삶과 영적 가치를 연결하며 타인과의 연대감 속에서 온전한 삶을 실현하는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여정이라고 정의할 만하다. 물질적 만족을 넘어 정체성과 삶의 목적에 대한 성찰, 자아 초월, 창조적 삶, 더 큰 선을 향한 봉사 등 삶의 모든 영역을 포섭하는 통합적이고 역동적인 개념 말이다.
핵개인, 바다이야기오락실 혼자서도 살아가는 인간전통적인 가족 구조가 해체되고 가족이나 타인에 의한 의존 없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결정하며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가 핵개인이다. 송길영 작가가 제안한 용어인데 벌써 보통명사가 되었다. 저출생,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기술 발달로 인해 혼자서도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개인의 확장 시대다. 현대의 핵개인들은 자신의 취향과 욕구 중심으로 소비하고 스스로 선택하며 AI나 각종 플랫폼 기술의 도움을 받아 독립적인 삶을 추구한다.
높은 자율성과 주체성이 두드러진다. '나혼산(나혼자 산다) 라이프 스타일'의 확장, 그래서 과거의 효(孝)나 가족 부양 같은 전통적 가치관이 약해지고 개인의 행복과 만족이 최우선시된다. 하지만 극심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 가족 부양 및 돌봄 부담 가중, 기존 사회적 안전망 약화로 인한 불안정성 증가, 전통적 가치 붕괴, 개인화된 소비와 정보 환경 속에서의 고립 심화 등 폐해가 날로 쌓여간다.
이를 반영한 현상이 반려동물의 급속한 증가이기도 하다. 가족의 유대 약화와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 등 사회적 관계망 축소로 인한 고독사 위험이 증가한다. 기존의 권위주의적 질서나 공동체 해체, 상호 네트워크 기반의 새로운 관계 형성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외로움 문제 해결이라는 문제 봉착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극도로 개인화된 소비 빛 정보 습득 환경이 오히려 다양한 관점과의 접촉을 막고 고립을 심화시킨다. 팬덤화된 온라인 커뮤니티가 일종의 감옥화되는 경향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개인의 주체적인 활동을 촉진하는 동시에 강력한 집단 규범과 배타성이라는 역설적인 족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마한의 떼춤과 떼창에서 무엇을 읽을 것인가?마한 및 삼한의 고대 제천의례에 대한 시선은 대체로 두 갈래인 듯싶다. 하나는 농경사회에서의 풍요 기원 의례 즉 기능주의적 제의로 해석하는 경향이다. 다른 하나는 집단적 주술 혹은 원시 종교의 형태로 파악하는 관점이다.
하지만 이 관점들은 개인의 주체성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현대의 풍경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떼춤과 떼창을 집단성의 결과가 아니라 개인을 전제로 성립하는 집단 운동으로 파악해야 하지 않겠나?
또한 정태적 형식인 원무(圓舞)가 아니라 구심력과 원심력이 동시에 작동하는 운동 체계 즉 윤가무(輪歌舞)의 형태로 개념화할 필요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2025년 말 학술지에 실은 논문을 통해 개괄해두었으니 참고 가능할 것이다.
고대 제의는 왜 오해돼 왔는가영성을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형식과 상태의 문제로 재정의하여 고대 의례를 현대 영성 담론의 중심부로 재배치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삼국지위지동이전 등 고대 기록에는 제의적 풍경이 간결하면서도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핵심은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밤낮의 구분 없이 노래하고 춤추며, 이 행위가 수일간 지속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서술은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와 한 계열의 제천의례 전반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중국의 시선은 이 풍경을 종종 방탕하거나 무질서한 것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밤낮의 구분이 해체되고 노동과 형벌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며 일상의 규범이 유예되는 시간 말이다.
이것은 무질서가 아니라 예컨대 마한의 소도(蘇塗)라는 공간이 갖는 다른 질서의 개시이다. 오월제와 시월제의 내용이 이를 말해준다. "나라의 여러 읍락에서 '소도'라고 하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달아서 신으로 섬겼다." 부여의 영고 기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섣달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여러 날 동안 연속해서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데 이를 '영고'라고 한다.
이 기간에는 형벌을 주지 않고 감옥에도 보내지 않으며 죄수를 석방한다. 군사에 관한 일이 있을 때도 역시 소를 잡아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잡은 소의 발굽으로 길하고 흉한 것을 점친다." 이 풍경은 제천의례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시간 구조를 전환하는 장치였음을 시사한다.
지금 우리에게 밀어닥친 AI시대의 풍경이 요구하는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고대 풍경 속에서 미래적 영성을 어찌 이끌어 낼 것인지가 지금의 내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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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재정의, 다시 마한을 상고하며 영성은 개별적으로 무엇을 믿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게 어떤 것인가의 문제로 환원되어야 한다. 교리나 신앙 대상 이전에 반복, 리듬, 공간, 관계의 형식을 통해 생성되는 의식상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강강술래와 농악을 주목하는 까닭이며 고대 제의의 떼춤과 떼창을 미숙한 종교로 환원하지 않고 영성의 원형으로 재평가할 필요이기도 하다. 불교쪽에서는 요가나 명상 등을 통해 진전되는 듯 보이는데 기독교쪽은 움직임이 없거나 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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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으로 추적하고 접근할 내력들을 마련하는 것이 연구자로서의 책무다. 마한의 떼춤과 떼창은 의미 전달이나 신화 재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체의 변성(變性) 즉 개인의 주체성이 유지되면서도 집단적 리듬 속에 자신을 재배치하는 구조를 산출할 수 있다.
장차 기회가 되면 마한 영성의 운동 원리를 톺아보고 싸목싸목 풀어갈 계획이다. 그래야 우리의 빛나는 전통 강강술래와 농악을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독해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적 자기를 넘어선 대동사회의 운동학이라고나 할까. 개인들이 서로를 주체로 인정하며 엮어내는 공명 구조다. 심하게 파편화되고 극도로 개인화된 이 시대의 풍경을 마냥 내버려 두는 것은 민속학자의 직무유기다. 무림 고수들의 질정 바란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