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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회적 배경과 명문학교 같은 든든한 ‘뒷백’은 없었지만, 매사에 자신감과 당당함이 넘쳤다. 자신이 하는 일을 빠른 호흡으로 내 뱉으며 마치 한 마리의 말처럼 달린다.


극이 시작되며 변호사 ‘테사’에 대해 든 생각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였다. 눈 옆의 차안대(눈가리개)가 있어 양 옆과 뒤는 결코 돌아볼 수 없는 아니 돌아보지 않는, 오직 승소라는 결승점을 향해 뛰는 경주마 말이다.




연극 ‘프리마 파시’의 공연장면 /(주)쇼노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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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법은 게임이었다. 더운 날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경찰서로 향했던 모습이 되기 전까지.


동료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몸과 마음 모두가 혼란하게 흔들리는 그녀는 몹시도 춥고 아팠다. 그 순간 그토록 잘 알고 있던 법의 테두리가 보이지 않았고, 숱하게 변론하전자업종
며 알고 있던 증거들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의 오만은 그곳에서 깨어지고, 또다른 현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강인했던 여성 변호사는 자신이 무기로 삼았던 법이, 사회를 지탱하고 지켜줄 것이란 믿음의 법이 사실은 피해자들의 편이 아님을 그렇게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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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리마 파시’ 공연장면 /(주)쇼노트 제공


연극 ‘프리마 파시’에서 프리마 파시는 ‘그럴듯해 보이는 표면 상의 진실’을 뜻한다. 증거 채택과 법적 판단의 우선적 기준, 강력한 판증이 제시 되지 못할 때 기존 사실이나 주장이 법적으로 유효하게 간주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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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를 정상적으로 계속할 지를 판단하는 문턱의 역할로, 그만큼 달걀로 바위를 치며 조금의 금이라도 내길 바라는 우리 사회의 약자 혹은 피해자들의 깊은 마음 속 이야기들이 이 속에 녹아있다. 그리고 그들이 증명해내야 할 모든 것들까지도.

정의를 찾아 줄 법에 헌신했던 테사가 그 피해자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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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배우 각자가 가진 에너지를 쏟아내는 시간으로 가득 채워졌다. 한 사람이 이끌어 가는 작품임에도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흡입력들이 이 극의 힘이자 배우의 힘이다. 극을 이끌어가고 표현하는 방식, 재판을 치러내는 감정과 모습들은 배우들마다 다르기에 이 또한 극을 보는 포인트가 됐다.

마치 법정같기도하고, 사무실 같기도 한 공간 속 긴 모양의 책상 위를 또다른 무대처럼 누비고 다니는 연출도 감각적이게 다가온다. 막으로 구성돼 있는 연극이 아니라 두개의 파트 속에서 스토리가 진행되는 극에서 책상을 밀어 환기시키는 장면들 조차 그녀가 겪는 일련의 사건의 과정, 심정들과 연결지어졌다.



연극 ‘프리마 파시’ 공연 모습 /(주)쇼노트 제공


‘브와 디르’ 장면은 특히 더 인상에 깊게 남았다. 이는 ‘재판 중 재판’으로, 공정한 재판과 배심원의 불필요한 선입견 방지를 위해 배심원단을 내보낸 채 진행되는 절차다. 테사는 이 때 진정한 자신의 진짜 마음을 당당히 꺼내 보인다. 피해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의심이 아닌 믿음을 줘야한다고 테사는 힘주어 말한다. ‘이게 나야, 여기 나 있어’를 읊조리던 그녀만큼이나 마음의 돌덩어리가 조금은 사라졌다.
절망이 아닌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는 그녀의 말은 현실에 대한 자조의 소리이자 보는 관객이 느끼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녀는 힘든 과정 속에서 두려움에 떨 지 언정 결코 몸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극은 끝내 눈시울이 붉어지는 순간, 우리를 가리고 있던 어떤 장막이 걷어지는 선명함을 느끼게 해준다. 마치 아무도 없을 것 같았던 그녀의 옆에 가족, 동료, 자신의 수사를 맡았던 경찰,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준 관객들의 존재가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또렷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맴돈다.

“어딘가, 어느 때,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거.”


연극 ‘프리마 파시’는 11월 2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