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 처방으로 함께 만드는 단단한 남성 자신감
페이지 정보
작성자 낭달웅동 작성일25-11-15 댓글0건관련링크
-
http://71.cia756.com
0회 연결
-
http://83.cia954.com
0회 연결
본문
바로가기 go !! 바로가기 go !!
비아그라 처방으로 함께 만드는 단단한 남성 자신감
현대 남성의 삶은 수많은 도전과 변화로 가득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체력과 건강, 그리고 성기능에 대한 고민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앞에서 무력하게 주저앉는 대신, 꾸준한 관리와 올바른 습관 형성을 통해 단단한 자신감을 만들어 가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솔루션, 비아그라가 있습니다.
남성 건강과 성기능의 중요성
남성 건강에서 성기능은 단순한 신체 기능을 넘어서, 자존감과 사회적 관계, 정서적 안정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발기부전은 많은 남성들이 경험하지만, 그만큼 숨기거나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아 치료를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관리와 습관으로 충분히 개선 가능한 영역입니다.
비아그라 처방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그 효과와 안전성은 수많은 임상 연구에서 입증되어 있습니다. 주성분인 실데나필 시트르산염은 혈관을 확장해 음경으로의 혈류를 증가시키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발기를 돕습니다. 이를 통해 남성은 성적 자신감을 회복하고, 일상생활에서도 활력을 되찾게 됩니다.
단단한 습관, 단단한 자신감을 만든다
건강한 성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약물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생활 습관 개선이 필수적입니다.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영양,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관리 등은 남성호르몬과 전반적인 신체 건강을 증진시켜 발기력 향상에 큰 도움을 줍니다.
특히 심혈관 건강은 성기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혈관이 건강해야 음경으로 충분한 혈류가 공급되어 강하고 지속적인 발기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비아그라는 이러한 혈관 기능을 돕는 역할을 하면서, 건강한 습관과 함께할 때 더욱 큰 시너지를 냅니다.
비아그라 처방의 과학적 근거와 임상 효과
비아그라는 1998년 FDA 승인을 받은 이후,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남성들이 선택한 신뢰받는 치료제입니다. 다양한 임상 연구에서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환자의 약 80~85에서 유의미한 효과를 보였으며, 성생활의 질적 개선뿐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만족도 향상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비아그라는 남성의 심리적 자신감을 복원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합니다. 발기부전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사라지고, 파트너와의 관계도 개선되며, 이는 다시 긍정적인 건강 습관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올바른 비아그라 복용법과 전문가 상담의 중요성
비아그라는 효과적인 치료제이지만, 안전하고 효과적인 사용을 위해서는 전문가와의 상담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개인별 건강 상태에 따라 적절한 복용량과 복용 시기를 조절해야 하며, 기존에 복용 중인 약물과의 상호작용 여부도 확인해야 합니다.
복용 시 일반적으로 성관계 30분~1시간 전에 복용하는 것이 권장되며, 효과는 평균 4시간 정도 지속됩니다. 특히 고지방 음식과 음주는 흡수를 방해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세심한 관리와 함께 건강한 생활 습관을 병행할 때 비아그라는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사용자 경험과 변화의 이야기
많은 사용자들이 비아그라 복용 후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다고 전합니다. 한 알이 내 삶을 바꿨다, 자신감이 돌아와 삶이 활기찼다, 파트너와의 관계가 다시 깊어졌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줄을 잇습니다. 이는 단순한 약물 효과를 넘어, 건강한 습관과 적극적인 관리가 만나 만들어낸 시너지라 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남성으로서의 새로운 시작
남성의 건강은 개인의 삶의 질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의 행복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기능 저하는 결코 피할 수 없는 노화의 과정만은 아닙니다. 올바른 정보와 과학적 접근, 그리고 꾸준한 습관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한 문제입니다.
비아그라는 바로 그 해결책의 중심에 있습니다. 단단한 습관과 과학이 만나, 당신의 건강과 자신감을 단단히 지켜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는 관리가 내일의 활기찬 삶을 만듭니다.
비아그라와 함께 만드는 단단한 남성 자신감, 지금 경험해 보십시오.건강한 습관과 함께라면 당신의 자신감은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단단한 남성의 삶, 비아그라가 함께합니다.
바붐샾은 다양한 건강 보조제와 기능성 제품을 소개하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특히 성기능 관련 제품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높아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근 주목받는 바오메이 복용법은 보통 성관계 30분 전 복용하는 방식이며, 전문가들은 개인 건강 상태에 따라 복용량 조절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바오메이 불법 유통 사례도 있어 반드시 정품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오메이 정품은 정식 수입 절차와 성분 검증을 거친 제품이며, 안전성과 효과를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 사용자들의 바오메이 후기를 보면 성욕 증진과 에너지 향상에 도움을 받았다는 의견이 많으나, 일부는 부작용 사례도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가 상담 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건강을 위한 제품 선택에는 정품 여부와 올바른 복용법이 가장 중요합니다.온라인 약국을 찾고 계신가요? 하나약국은 믿을 수 있는 비아그라 구매 사이트로, 비아마켓 제품부터 골드비아까지 정품만을 제공합니다. 안전하고 간편한 구매는 하나약국에서
기자 admin@119sh.info
“성프란시스대학 다닐 때 기억나세요?” “그때가 제일 아름다웠던 것 같아요.”
환자복 입은 70대 노인이 쇳소리 가득한 목소리로 답한다.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지체 없이 튀어나온다. 그가 말하는 대학은 스무살 갓 넘긴 반짝이는 청춘들이 다니는 그런 대학이 아니다. 서울역에서 “바닥 삶”을 통과할 때 어둠을 뒤집어쓰고 다녔던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노숙인에게 예술사·문학 ·글쓰기 등을 가르치는 1년짜리 강좌)이다.
이 노인의 이름은 권일혁(73). 지난 9월 시집 ‘빗물 그 바아압’을 낸 시인이다. 집도, 가족도, 희망도 오리지널골드몽 없던 초로의 노(숙)인이었던 그는 2008년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이하 성프대)에 참여하고 17년 만에 시인이 됐다. 이 시집은 10년 전부터 발간할 계획이었으나, 권 시인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거절해 미뤄지다, 성프대 출범 20주년을 맞아 올해 출간됐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는 성프대 출범 20주년과 첫 문인의 오션파라다이스예시 탄생을 축하하는 북콘서트가 열렸다.
정작 주인공인 권씨는 참석하지 못했다. 인지장애 증상으로 수년 전부터 지역의 한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어서다. 대신 성프대에서 그를 포함해 300여명의 노숙인에게 18년 동안 글쓰기를 가르친 박경장 교수(65·문학평론가)가 병문안을 가 그의 모습을 담아왔다. 이날 재생된 영상 속 그는 시집 출간 소감 릴게임사이트추천 을 묻자 이렇게 답한다. “기분 너무 좋지요. 미안하고 부끄러워 죽겠어요.” 독자들에게는 “평범하게 우리 삶 속에 이런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는 법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시를 읽어줬으면 한다고 했다. 사제지간이자 동료 문인인 두 사람의 대화는 이렇게 끝난다. “선생님 혹시 운명하시면 저희에게 부탁하시고 싶은 게 있으실까요?”(박) “저는 뭐 가족도 없는데… 바다이야기프로그램다운로드 . ”(권) “저희가 가족이죠.”(박)
성프란시스 대학 인문학 과정 동문들이 함께 통과한 20년의 기록. 글쓰기 수업, ‘복면시왕’(복면을 쓰고 시를 낭송하는 대회), 여름 수련회, 문예발표회.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성프란시스대학 제공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권 선생님은 안 된다”며 자원 활동가조차 고개를 저었던 이, 그런데도 술에 떡이 된 채 찾아 와 구두로 입학 지원서를 낸 이. 바로 권씨였다. 얼굴에 대각선으로 그어진 칼자국 같은 상처, 쉼 없이 내뱉는 가래 끓는 소리에 쉼터나 고시원에서도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젊은 시절 대학 교정에서 경제학 원론 같은 강의 교재를 주로 팔았고, 이후엔 골동품 수집가로 꽤나 이름이 났단다. 하지만 돈 가방을 날치기하려는 강도에게 흉기로 맞아 얼굴에 큰 흉터가 생기고부터 삶은 끝도 없이 덧났다.
“눈물이 핑 돌았다/ 상처, 이 얼굴의 상처 때문이리라/ 인정사정없이 눈물이 쏟아졌다/(…)/내가 너를 확고하게 차별하리라/ 이제 또 어디에 이력서를 내야 할까”(‘차별’)
90만원에 4대 보험을 들어주는 경비 일을 하려고 본 면접. 면접관은 그의 얼굴을 빤히 쏘아보더니 70만원에 뒤쪽 문 경비를 제안했다. “분노가 치밀”지만 “입장 바꿔 생각하면 맞다” 싶은, 당하고도 이해되고 그러면서도 억울해 속이 터지는 심정이 담겼다. 그러다 다다른 곳이 서울역이었다. “장대비 속에 긴 배식 줄/ 빗물 바아압 빗물 구욱 비잇무울 기이임치이/ (…)/ 이 순간만큼은 왜 사는지도 호강이다 왜 먹는지도 사치다/(…) 오직 생명뿐이다/ 그의 지시대로 행할 뿐,(…)”(‘빗물 그 바아압’) 빗물에 불어난 밥과 국, 김치를 욱여넣으며, 생명에 복종했다. 때때로 반역을 도모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다른 길은 없다/ 외길만이 주어진 선택을 회피함은/ 비열한 삶과 더욱더 깊어 가는 고독의 늪/ 버겁고 버거운 미래의 연속만이 전개될 뿐/(…)”(‘자살회상’)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에서 노숙인 대상 글쓰기 강연을 18년간 해온 박경장 교수(문학평론가).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그러다 만난 게 시였다. “무조건 많이 쓰라”는 박 교수의 조언에 그는 입학 후 1500여편의 시를 쏟아냈다. 이게 시가 맞나 갸우뚱할 때 확신을 준 사람은 김응교 문학평론가(숙명여대 교수)였다. 지난 2012년 10월, 노숙인센터에 특강 하러 온 김 평론가가 우연히 권씨를 만났다. 김 교수가 즉석에서 그에게 시를 써달라 청했더니 정말 반짝이는 시가 나타났다.
“권 선생님이 그 자리에서 ‘존재의 궁전’이라는 제목의 시를 써 내려가는 데 너무 놀랐어요. 이 사람은 이미 작가구나…. 얼마나 놀랐으면 첫 만남에 끄적여줬던 그 종이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어요.”(김응교 평론가) 김 평론가는 그날의 만남을 회고하며 시집 뒤편에 이렇게 썼다. “‘있잖아, 선생님이 나, 글, 잘 쓴대. 그쵸! 선생님.’ 어린애처럼 자랑하고 있었다. 온갖 흉한 흉터가 있는 얼굴이 햇살 받은 들꽃처럼 장글장글 빛나고 있었다.”
권일혁 시인의 시를 ‘발견한’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 그는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에서 열린 성프란시스대학 20주년 기념 북콘서트에서 권 시인과의 일화를 설명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시를 만났다고 갑자기 돈이 생기고, 잘 곳이 생기고, 가족이 생긴 건 아니다. 하지만 잿빛 서울역살이에 때때로 눈부신 환희가 깃들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흥분했어/ 모든 고통이 순식간에 몽땅 날아가 버렸어/(…)/ 하하하 통쾌한 오늘”(‘자서전’)
그의 시집을 읽고 나면 알게 된다. 노숙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천성이 나태해 서울역 ‘보루바꾸’(박스)에 퍼진 게 아니라, 처절히 애쓰다 박스 안에 쓰러진 이라는 걸. 수치도 불편도 잊고 속 편히 잠든 게 아니라 다짐하고 다시 무너지는 나날을 부지런히 겪어내고 있다는 것을. 행인들 눈에는 서울역 붙박이처럼 보여도, 자활·쉼터·쪽방촌·고시원 등을 분주히 오가고 있다는 것도. 박 교수는 “여태까지는 지식인 작가들이 도시 빈민의 삶을 ‘대변’하는 작품들 위주였다면, 권 시인의 등장은 도시 빈민 당사자의 문학이 시작되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제2, 제3의 권일혁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성프대 인문학 과정은 2005년 9월 시작됐다. 사회복지기금 수급자, 노숙인, 재소자, 전과자 등을 대상으로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미국의 ‘클레멘토 코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올해 기준 서울시 지원(3500만원)과 기부·후원금(약 2000~3000만원)으로 운영된다.
기술도 아니고 인문학이라니, 한가하다는 시선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확신을 갖고 20년을 이어갔다. “저희 학교 초대 학장인 임영인 신부가 노숙인들 의식주 돌봄을 오래 해오셨는데요, 이분들께 아무리 좋은 직장을 알선해도 ‘거리의 삶’을 청산한 경우를 단 한건도 못 봤다고 합니다. (…) 결국 다시 서기 위해 진짜 필요한 건 자존감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인문학 공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박경장 교수)
입학생 모집은 주로 ‘길거리 캐스팅’이었다. “80∼90%는 ‘아웃리치’로 오신 분들이었어요. 활동가들이 직접 서울역으로 나가 몇 개월을 지켜보면서 신중하게 추천했지요. 인문학 과정인 만큼 최소한의 문해력을 갖춘 분을 모셨고, 정신 질환을 앓고 있거나 알코올 의존증이 심하신 분들은 전문적인 케어(돌봄)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제외했습니다. 한 기수에 20명 안팎인데, 20대부터 60대 후반까지, 초교 중퇴부터 대졸자까지 연령도 학력도 다양합니다.”
이들은 1년 동안 주 3회 저녁 7시에 모여 두시간 동안 예술사, 역사, 문학, 글쓰기, 철학을 두루 배운다. 여느 대학과 다른 건 강의 전에 다 같이 먹는 한끼 밥이다. 참여자들이 직접 지어 교수진, 실무진, 활동가와 함께 먹는다.
“노숙인들을 영어로 홈리스(homeless)라고 하죠. 하우스리스(houseless)가 아닙니다. 이들은 단순히 잘 곳이 없는 분들이 아니에요. 인간관계의 처음이자 끝인 가족의 붕괴와 이로 인한 연쇄적인 관계 단절을 겪어 오신 분들이에요. (…) 누구나 사회생활하면서 한두번은 넘어지죠. 그때 받쳐주고 일으켜주는 게 가족인데, 이분들은 그게 없어 일어나지 못한 거예요. 가족을 식구라고도 하잖아요. 성프대 1년은 인문학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관계 회복을 모색하는 과정입니다.”
밥은 노숙인들을 인문학 곁에 붙들어두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골치 아프다며 인문학을 떠났다가도 고소한 밥 냄새에 홀려 다시 책상에 앉는다.
인문학 배운다고 책상 앞에만 붙들리지 않는다. 에버랜드, 몬테크리스토 뮤지컬 관람, 리움 미술관 등지로 철마다 소풍, 수련회, 졸업여행 등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아무리 아름다운 곳을 방문해도 선생님들이 감동을 안 하세요. 오랫동안 거리에서 생활하시다 보니까 몸도 쇠약해지고, 오감이 다 무뎌진 거죠.”
‘무감’(無感·느낌 없는 느낌)은 노숙인을 지배하는 정서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다. “자존감이 바닥나면, 사람은 창피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실존에 대한 무감 상태이기 때문이에요. (…) 이분들의 글을 받아보면 ‘거울 보기’를 주제로 한 글이 많은데요. 거울을 보며 실존을 직면하고 ‘이게 뭐냐’ 싶은 창피함을 느낍니다. 이 창피함이 자존 회복의 시작입니다.”
성프대를 거쳐 간 모두가 권 시인처럼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아니, 너무 쉽게 변화를 이야기하는 건 이들이 거쳐온 고통에 대한 모욕일지도 모른다. 박 교수도 성프대 2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서울역 야생화’에서 “‘정말 변하나요?’라는 질문에는 ‘노숙인은 변해야 한다’는 당위와 ‘나는 됐고’라는 당착이 깔려있다”고 꼬집은 바 있다. 하지만 ‘변화’는 ‘갱생’이나 ‘극복’만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다. 관계가 늘어나고, 추억이 쌓인다면 그것 역시도 부정할 수 없는 변화다. 어쩌면 이승에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인연을 발견한 것은 이 과정에 참여한 이들 대부분이 손에 쥐고 나오는 값진 성과다.
“노숙인 대부분이 고독사하시고, (시신을 인도할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세요. 그래서 저희들이 학교장으로 이분들의 마지막을 배웅합니다.” 알코올 의존증과 오랜 거리 생활로 적지 않은 노숙인이 일흔을 못 넘기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명절 때면 추모 예배를 드리려고 돌아가신 동문들을 나열하는데, 벌써 40명이 넘습니다. 1년에 두세번 학교장을 치러요. (…) 태어날 때 곁을 지킨 이가 가족이듯, 떠날 때 곁을 지켜준 사람도 가족입니다. 우리는 동문을 통해서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프대의 기억이 분명 어떤 마음의 평안함을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여재훈 전 성프란시스대학 학장, 현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장). 각자의 상자에 갇혀 혼자이던 사람들이 밥과 글을 나누며 한번 더 생을 만개하는 것. 다시 서울역사 바닥으로 돌아가더라도 만개의 기억을 품고 눕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날 열린 북콘서트에서는 “세계 유일 노숙인 풍물패”라 스스로 소개하는 ‘두드림’의 공연이 있었다. 권씨가 원년 멤버로 참여했던 동아리다. 한(恨)에 꼼짝없이 갇혀 흥을 잃은 노숙인의 오감을 깨우기 위해 박 교수가 만든 소모임이었다. 이날 이들은 퓨전국악 ‘뷰티풀 코리아’에 맞춰 북을 두드리고, ‘칼각’ 봉산탈춤을 선보였다. 한때는 서울역 시멘트 바닥에 “껌처럼” 붙어있던 이들이, 흰옷을 입고 함께 물결치고 있었다. 객석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살아 있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빗물 그 바아압l 권일혁 지음, 걷는사람, 1만2000원
서울역 야생화 l 박경장 지음, 더좋은책, 1만8000원
서울역 눈사람l 성프란시스대학 편집위원회 엮음, 삼인, 1만6800원
환자복 입은 70대 노인이 쇳소리 가득한 목소리로 답한다.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지체 없이 튀어나온다. 그가 말하는 대학은 스무살 갓 넘긴 반짝이는 청춘들이 다니는 그런 대학이 아니다. 서울역에서 “바닥 삶”을 통과할 때 어둠을 뒤집어쓰고 다녔던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노숙인에게 예술사·문학 ·글쓰기 등을 가르치는 1년짜리 강좌)이다.
이 노인의 이름은 권일혁(73). 지난 9월 시집 ‘빗물 그 바아압’을 낸 시인이다. 집도, 가족도, 희망도 오리지널골드몽 없던 초로의 노(숙)인이었던 그는 2008년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이하 성프대)에 참여하고 17년 만에 시인이 됐다. 이 시집은 10년 전부터 발간할 계획이었으나, 권 시인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거절해 미뤄지다, 성프대 출범 20주년을 맞아 올해 출간됐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는 성프대 출범 20주년과 첫 문인의 오션파라다이스예시 탄생을 축하하는 북콘서트가 열렸다.
정작 주인공인 권씨는 참석하지 못했다. 인지장애 증상으로 수년 전부터 지역의 한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어서다. 대신 성프대에서 그를 포함해 300여명의 노숙인에게 18년 동안 글쓰기를 가르친 박경장 교수(65·문학평론가)가 병문안을 가 그의 모습을 담아왔다. 이날 재생된 영상 속 그는 시집 출간 소감 릴게임사이트추천 을 묻자 이렇게 답한다. “기분 너무 좋지요. 미안하고 부끄러워 죽겠어요.” 독자들에게는 “평범하게 우리 삶 속에 이런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는 법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시를 읽어줬으면 한다고 했다. 사제지간이자 동료 문인인 두 사람의 대화는 이렇게 끝난다. “선생님 혹시 운명하시면 저희에게 부탁하시고 싶은 게 있으실까요?”(박) “저는 뭐 가족도 없는데… 바다이야기프로그램다운로드 . ”(권) “저희가 가족이죠.”(박)
성프란시스 대학 인문학 과정 동문들이 함께 통과한 20년의 기록. 글쓰기 수업, ‘복면시왕’(복면을 쓰고 시를 낭송하는 대회), 여름 수련회, 문예발표회.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성프란시스대학 제공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권 선생님은 안 된다”며 자원 활동가조차 고개를 저었던 이, 그런데도 술에 떡이 된 채 찾아 와 구두로 입학 지원서를 낸 이. 바로 권씨였다. 얼굴에 대각선으로 그어진 칼자국 같은 상처, 쉼 없이 내뱉는 가래 끓는 소리에 쉼터나 고시원에서도 거부당하기 일쑤였다. 젊은 시절 대학 교정에서 경제학 원론 같은 강의 교재를 주로 팔았고, 이후엔 골동품 수집가로 꽤나 이름이 났단다. 하지만 돈 가방을 날치기하려는 강도에게 흉기로 맞아 얼굴에 큰 흉터가 생기고부터 삶은 끝도 없이 덧났다.
“눈물이 핑 돌았다/ 상처, 이 얼굴의 상처 때문이리라/ 인정사정없이 눈물이 쏟아졌다/(…)/내가 너를 확고하게 차별하리라/ 이제 또 어디에 이력서를 내야 할까”(‘차별’)
90만원에 4대 보험을 들어주는 경비 일을 하려고 본 면접. 면접관은 그의 얼굴을 빤히 쏘아보더니 70만원에 뒤쪽 문 경비를 제안했다. “분노가 치밀”지만 “입장 바꿔 생각하면 맞다” 싶은, 당하고도 이해되고 그러면서도 억울해 속이 터지는 심정이 담겼다. 그러다 다다른 곳이 서울역이었다. “장대비 속에 긴 배식 줄/ 빗물 바아압 빗물 구욱 비잇무울 기이임치이/ (…)/ 이 순간만큼은 왜 사는지도 호강이다 왜 먹는지도 사치다/(…) 오직 생명뿐이다/ 그의 지시대로 행할 뿐,(…)”(‘빗물 그 바아압’) 빗물에 불어난 밥과 국, 김치를 욱여넣으며, 생명에 복종했다. 때때로 반역을 도모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다른 길은 없다/ 외길만이 주어진 선택을 회피함은/ 비열한 삶과 더욱더 깊어 가는 고독의 늪/ 버겁고 버거운 미래의 연속만이 전개될 뿐/(…)”(‘자살회상’)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에서 노숙인 대상 글쓰기 강연을 18년간 해온 박경장 교수(문학평론가).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그러다 만난 게 시였다. “무조건 많이 쓰라”는 박 교수의 조언에 그는 입학 후 1500여편의 시를 쏟아냈다. 이게 시가 맞나 갸우뚱할 때 확신을 준 사람은 김응교 문학평론가(숙명여대 교수)였다. 지난 2012년 10월, 노숙인센터에 특강 하러 온 김 평론가가 우연히 권씨를 만났다. 김 교수가 즉석에서 그에게 시를 써달라 청했더니 정말 반짝이는 시가 나타났다.
“권 선생님이 그 자리에서 ‘존재의 궁전’이라는 제목의 시를 써 내려가는 데 너무 놀랐어요. 이 사람은 이미 작가구나…. 얼마나 놀랐으면 첫 만남에 끄적여줬던 그 종이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어요.”(김응교 평론가) 김 평론가는 그날의 만남을 회고하며 시집 뒤편에 이렇게 썼다. “‘있잖아, 선생님이 나, 글, 잘 쓴대. 그쵸! 선생님.’ 어린애처럼 자랑하고 있었다. 온갖 흉한 흉터가 있는 얼굴이 햇살 받은 들꽃처럼 장글장글 빛나고 있었다.”
권일혁 시인의 시를 ‘발견한’ 김응교 시인(숙명여대 교수). 그는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에서 열린 성프란시스대학 20주년 기념 북콘서트에서 권 시인과의 일화를 설명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시를 만났다고 갑자기 돈이 생기고, 잘 곳이 생기고, 가족이 생긴 건 아니다. 하지만 잿빛 서울역살이에 때때로 눈부신 환희가 깃들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흥분했어/ 모든 고통이 순식간에 몽땅 날아가 버렸어/(…)/ 하하하 통쾌한 오늘”(‘자서전’)
그의 시집을 읽고 나면 알게 된다. 노숙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천성이 나태해 서울역 ‘보루바꾸’(박스)에 퍼진 게 아니라, 처절히 애쓰다 박스 안에 쓰러진 이라는 걸. 수치도 불편도 잊고 속 편히 잠든 게 아니라 다짐하고 다시 무너지는 나날을 부지런히 겪어내고 있다는 것을. 행인들 눈에는 서울역 붙박이처럼 보여도, 자활·쉼터·쪽방촌·고시원 등을 분주히 오가고 있다는 것도. 박 교수는 “여태까지는 지식인 작가들이 도시 빈민의 삶을 ‘대변’하는 작품들 위주였다면, 권 시인의 등장은 도시 빈민 당사자의 문학이 시작되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제2, 제3의 권일혁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성프대 인문학 과정은 2005년 9월 시작됐다. 사회복지기금 수급자, 노숙인, 재소자, 전과자 등을 대상으로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미국의 ‘클레멘토 코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올해 기준 서울시 지원(3500만원)과 기부·후원금(약 2000~3000만원)으로 운영된다.
기술도 아니고 인문학이라니, 한가하다는 시선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확신을 갖고 20년을 이어갔다. “저희 학교 초대 학장인 임영인 신부가 노숙인들 의식주 돌봄을 오래 해오셨는데요, 이분들께 아무리 좋은 직장을 알선해도 ‘거리의 삶’을 청산한 경우를 단 한건도 못 봤다고 합니다. (…) 결국 다시 서기 위해 진짜 필요한 건 자존감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인문학 공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박경장 교수)
입학생 모집은 주로 ‘길거리 캐스팅’이었다. “80∼90%는 ‘아웃리치’로 오신 분들이었어요. 활동가들이 직접 서울역으로 나가 몇 개월을 지켜보면서 신중하게 추천했지요. 인문학 과정인 만큼 최소한의 문해력을 갖춘 분을 모셨고, 정신 질환을 앓고 있거나 알코올 의존증이 심하신 분들은 전문적인 케어(돌봄)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제외했습니다. 한 기수에 20명 안팎인데, 20대부터 60대 후반까지, 초교 중퇴부터 대졸자까지 연령도 학력도 다양합니다.”
이들은 1년 동안 주 3회 저녁 7시에 모여 두시간 동안 예술사, 역사, 문학, 글쓰기, 철학을 두루 배운다. 여느 대학과 다른 건 강의 전에 다 같이 먹는 한끼 밥이다. 참여자들이 직접 지어 교수진, 실무진, 활동가와 함께 먹는다.
“노숙인들을 영어로 홈리스(homeless)라고 하죠. 하우스리스(houseless)가 아닙니다. 이들은 단순히 잘 곳이 없는 분들이 아니에요. 인간관계의 처음이자 끝인 가족의 붕괴와 이로 인한 연쇄적인 관계 단절을 겪어 오신 분들이에요. (…) 누구나 사회생활하면서 한두번은 넘어지죠. 그때 받쳐주고 일으켜주는 게 가족인데, 이분들은 그게 없어 일어나지 못한 거예요. 가족을 식구라고도 하잖아요. 성프대 1년은 인문학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관계 회복을 모색하는 과정입니다.”
밥은 노숙인들을 인문학 곁에 붙들어두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골치 아프다며 인문학을 떠났다가도 고소한 밥 냄새에 홀려 다시 책상에 앉는다.
인문학 배운다고 책상 앞에만 붙들리지 않는다. 에버랜드, 몬테크리스토 뮤지컬 관람, 리움 미술관 등지로 철마다 소풍, 수련회, 졸업여행 등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아무리 아름다운 곳을 방문해도 선생님들이 감동을 안 하세요. 오랫동안 거리에서 생활하시다 보니까 몸도 쇠약해지고, 오감이 다 무뎌진 거죠.”
‘무감’(無感·느낌 없는 느낌)은 노숙인을 지배하는 정서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다. “자존감이 바닥나면, 사람은 창피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실존에 대한 무감 상태이기 때문이에요. (…) 이분들의 글을 받아보면 ‘거울 보기’를 주제로 한 글이 많은데요. 거울을 보며 실존을 직면하고 ‘이게 뭐냐’ 싶은 창피함을 느낍니다. 이 창피함이 자존 회복의 시작입니다.”
성프대를 거쳐 간 모두가 권 시인처럼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아니, 너무 쉽게 변화를 이야기하는 건 이들이 거쳐온 고통에 대한 모욕일지도 모른다. 박 교수도 성프대 2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서울역 야생화’에서 “‘정말 변하나요?’라는 질문에는 ‘노숙인은 변해야 한다’는 당위와 ‘나는 됐고’라는 당착이 깔려있다”고 꼬집은 바 있다. 하지만 ‘변화’는 ‘갱생’이나 ‘극복’만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다. 관계가 늘어나고, 추억이 쌓인다면 그것 역시도 부정할 수 없는 변화다. 어쩌면 이승에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인연을 발견한 것은 이 과정에 참여한 이들 대부분이 손에 쥐고 나오는 값진 성과다.
“노숙인 대부분이 고독사하시고, (시신을 인도할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세요. 그래서 저희들이 학교장으로 이분들의 마지막을 배웅합니다.” 알코올 의존증과 오랜 거리 생활로 적지 않은 노숙인이 일흔을 못 넘기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명절 때면 추모 예배를 드리려고 돌아가신 동문들을 나열하는데, 벌써 40명이 넘습니다. 1년에 두세번 학교장을 치러요. (…) 태어날 때 곁을 지킨 이가 가족이듯, 떠날 때 곁을 지켜준 사람도 가족입니다. 우리는 동문을 통해서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프대의 기억이 분명 어떤 마음의 평안함을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여재훈 전 성프란시스대학 학장, 현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장). 각자의 상자에 갇혀 혼자이던 사람들이 밥과 글을 나누며 한번 더 생을 만개하는 것. 다시 서울역사 바닥으로 돌아가더라도 만개의 기억을 품고 눕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날 열린 북콘서트에서는 “세계 유일 노숙인 풍물패”라 스스로 소개하는 ‘두드림’의 공연이 있었다. 권씨가 원년 멤버로 참여했던 동아리다. 한(恨)에 꼼짝없이 갇혀 흥을 잃은 노숙인의 오감을 깨우기 위해 박 교수가 만든 소모임이었다. 이날 이들은 퓨전국악 ‘뷰티풀 코리아’에 맞춰 북을 두드리고, ‘칼각’ 봉산탈춤을 선보였다. 한때는 서울역 시멘트 바닥에 “껌처럼” 붙어있던 이들이, 흰옷을 입고 함께 물결치고 있었다. 객석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살아 있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빗물 그 바아압l 권일혁 지음, 걷는사람, 1만2000원
서울역 야생화 l 박경장 지음, 더좋은책, 1만8000원
서울역 눈사람l 성프란시스대학 편집위원회 엮음, 삼인, 1만6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