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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이 차가운 공기를 가른다. 응원봉은 새카만 밤을 밝힌다. 누군가는 플루트로 혁명의 노래를 연주하고, 누군가는 열 번째 멜로디언을 분다. 그 사이를 분주히 헤치고 다니는 몇몇 사람들. 가슴팍에 ‘민주주의 기록단’이라는 명찰을 단 채 불쑥 내민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당신의 민주주의를 기증받습니다.’


김승은 식민지역사박물관 학예실장(54)과 동료들은 지난겨울부터 봄까지 시민들이 주식사랑
윤석열 탄핵 집회에 가져온 ‘시위 용품’을 모집했다. “1월부터 이 명함을 들고 나가기 시작했어요. ‘당신의 민주주의를 기증받습니다. 시위 용품을 기증해주세요. 깃발, 응원봉, 손팻말 어떤 것이든 괜찮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어요. ‘전국 눈사람 안아주기 운동본부’ 이런 깃발을 보면 저희도 궁금하잖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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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6일부터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긴급 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의 비하인드 스토리다. 과연 얼마나 들어올까, 처음의 반신반의가 무색하게 시민 518명이 2300여 개에 이르는 시위 물품을 기증했다. 현장에서 바로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기증 신청서를 쓴 시민들이 4월4일 윤석열 탄핵 선고 이제이스탁
후 우편으로 보내준 것이다. “파면된 날 밤에만 150명이 신청하더니, 며칠 동안 택배 박스가 우르르 쏟아졌다”라고 김 실장은 회상했다. 직접 박물관을 방문해 기증품을 전달한 이도 70명가량 된다.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에서 열린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황금성오락실
장의 모습. ⓒ시사IN 박미소





‘민주주의와 깃발’에 전시된 윤석열 탄핵 집회의 시위 용품. ⓒ시사IN 박미소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는 박물관에 들어서기3S 주식
전에 이미 시작된다. 기증받은 깃발 367개를 똑같이 본떠 만든 프린트로 건물 외벽을 감쌌다. 윤퇴청(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일동)에서 집회 포스터를 만든 ‘금손’ 활동가가 이번에도 기꺼이 실력을 발휘했다. 박물관은 기증품뿐만 아니라 거기에 얽힌 이야기도 수집했다. 남태령 시위에서 장구를 보고 소리 큰 악기가 좋겠다 싶어 본인도 멜로디언을 들고나왔다가 탄핵 집회 동안 아홉 개를 망가트리고 열 개째가 되었다는 사연에는 기증자의 치열했던 시간이 묻어난다. 기증품의 사진과 스토리, 광장 시민 140여 명의 인터뷰는 ‘온라인 전시-오늘의 민주주의를 기록합니다(democracyflag.oopy.io)’에서도 볼 수 있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디귿자(ㄷ자) 형태의 전시실에서 12·3 불법계엄과 탄핵 집회를 다룬 1부 ‘12월3일 어제와 다른 날들, 어제와 다른 나들’과 한국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를 개괄한 3부 ‘과거가 현재를 돕는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서로를 마주보도록 배치되었다. “의도한 것”이다. 박물관은 아담한 크기이지만, 전시장에 들어서서 받는 울림은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김민정 도예 작가가 제작한 윤석열 탄핵 집회 미니어처 도자기 작품. ‘민주주의와 깃발’에 전시돼 있다. ⓒ시사IN 박미소





‘민주주의와 깃발’에 전시된 윤석열 탄핵 집회의 시위 용품들. ⓒ시사IN 박미소



“식민지역사박물관이라서 가능했던 전시”라고 김승은 실장은 말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2007년 민족문제연구소를 중심으로 준비위원회를 발족한 이래 수많은 시민의 성원이 모여 2018년 개관했다.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현재로 가져오는 ‘전시행동’을 꾸준히 이어온 박물관으로서 탄핵 광장을 기록하고 전시로 옮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활동이었다. “시민들이 만들어준 공간이잖아요. 탄핵 집회에 우리만의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죠.”


8월17일까지였던 전시 기간은 연장을 고려하고 있다. 기증자와 시민들의 요구가 뜨거웠다. 얼마 전에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국제 전시의 큐레이터가 다녀가기도 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광주, 대구 등 지역에서 전시행동 〈민주주의와 깃발〉이 이어질 예정이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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