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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15일 손기정 서명 엽서.뉴시스





손기정 선수가 지난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부상으로 받은 보물 '청동투구'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 전시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나는 KORE주식길잡이
A에서 온 손긔졍이오."

1936년 8월 9일, 독일 베를린 올림픽 주 경기장. 장내를 가득 채운 관중들이 힘차게 질주하는 선수를 향해 환호를 보냈다. 42.195㎞를 달린 최종 기록은 2시간 29분 19초. 당시 올림픽은 물론, 국제대회에서 '마의 30분'으로 불려 온 벽을 깨뜨린 신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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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상대 위에 선 손기정 선수(1912∼2002)의 표정은 수심(愁心)이 가득했다. 그의 가슴에는 일장기가 있었고,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君が代)가 울려 퍼졌다. 국내 언론들은 일장기를 지우거나 흐리게 한 사진을 담아 소식을 전했다. 이른바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전세계가 떠들썩했지만, 손 선수는 며칠 뒤 작은 엽서에 'Korean(코리안) 손긔졍'이챗
이라는 서명을 남겼다.
그는 베를린 올림픽 우승 후, 수많은 축하객들을 만나는 동안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내가 일본 사람이 아니라 조선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리느냐'는 것이었다. 손 선수는 자주 말썽이 났지만, 기필코 '손긔졍'이라는 한글 사인과 곁들여 조선 지도를 그려주거나 'KOREA'라는 영문자로 국적을 표시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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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우승 직후인 지난 1936년 8월 15일 직접 서명한 엽서 실물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등 그의 발자취를 조명하는 특별 전시가 서울 용산에서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오는 12월 28일까지 상설전시관 기증 1실에서 선보이는 '두 발로 세계를 제패하다' 특별전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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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세계를 제패하다'는 1947년 손 선수 제자인 서윤복 선수(1923~2017)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을 축하하며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이 써준 휘호 '족패천하'에서 따온 말이다. 이번 전시는 최초 공개된 손 선수의 서명 엽서를 비롯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과 월계관, 우승 상장, 당시 특별 부상이었던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보물 제904호), 관련 신문 기사 등 그의 여정을 보여주는 전시품 18건이 공개된다.
또한, 인공지능(AI) 기술로 재현한 영상 콘텐츠도 만나볼 수 있다.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1936년 청년 손 선수부터, 1947년과 1950년 'KOREA'의 이름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그의 제자들,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선 노년의 손 선수 모습까지 그날의 감동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전시는 손 선수가 기증한 보물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당초 '청동 투구'는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우승자에게 수여하게 돼 있었으나 손 선수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박물관에 보관돼왔다.
이후 반환을 위한 오랜 노력 끝에 1986년 베를린 올림픽 개최 50주년 기념행사에서 그의 품으로 돌아왔고, 이듬해 보물로 지정됐다.
그가 뒤늦게 받았던 '청동 투구'는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코린토스에서 제작됐다. 올림픽 제전 때 승리를 기원하면서 신에게 바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오묘한 청록빛, 잘록하게 들어갔다가 유연하게 빠지는 모양새 등이 예사롭지 않다.
'청동 투구'를 50년 만에 돌려받은 손 선수는 "이 투구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것"이라며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다.
여러 전시품 가운데, 최초 공개된 그의 서명 엽서도 역사적 가치가 크다. 손 선수는 자신이 일본이 아닌, 한국 사람인 것을 알리고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글로 '손긔졍'이라고 사인해 줬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엽서와 관련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이밖에 1936년 8월 10일 그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전한 뉴욕타임스 신문도 최초로 선보인다. 특히 기사 본문에는 손 선수가 한국 출신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어 흥미를 끈다.
"120파운드의 한국 출신 청년은 26마일의 고된 여정을 지나 마침내 결승선에 다다랐다. 그 앞에는 올림픽의 왕관 중의 왕관을 향한 붉은 흙길만이 남아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이나 고통의 기색조차 없었고, 표정은 마치 대리석 가면처럼 굳어있었다. 오직 그는 앞만 보고 달렸고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조차 그를 흔들 수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이번 전시에 대해 "어려운 시대 상황에도 희망과 용기를 전해준 손 선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의 뜨거운 의지와 신념을 되새기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