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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랑다솔 작성일25-12-02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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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을 다시 설렘으로, 시알리스와 함께
오래된 연인 사이, 스킨십이 어색해질 때
연애 초반의 설렘은 누구에게나 특별합니다. 손끝만 스쳐도 두근거리던 감정, 짧은 눈빛 교환만으로도 서로를 느낄 수 있었던 순간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사랑은 익숙함으로 변하고, 스킨십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곤 합니다. 특히 오랜 연인 사이, 혹은 결혼생활이 길어진 부부들 사이에서는 스킨십의 공백이 깊은 거리감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심리적 거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남성의 신체적 변화와 성기능 저하도 큰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은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발기력이 약해지거나 성욕이 줄어들면 스킨십에 대한 부담과 회피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손을 잡는 일조차 어색하게 느껴지고, 서로의 체온을 느낄 기회가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변화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과, 이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 해답 중 하나가 시알리스Cialis입니다.
관계의 거리, 언제부터 멀어졌을까
오래된 연인들이 요즘은 스킨십이 거의 없어요라고 말할 때, 그 원인을 단순히 성격 차이, 바쁜 일상, 육아 스트레스 탓으로 돌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체적인 기능 저하와 심리적 위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합니다.
1. 성생활의 빈도 감소
관계 초반에는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던 성생활이 점차 줄어들고, 어느 순간부터는 성관계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이는 남성의 발기력 저하나 성욕 감소가 시작되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2. 피로와 스트레스 누적
현대인의 삶은 끊임없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점철돼 있습니다. 이러한 누적된 피로는 남성호르몬 수치를 떨어뜨리고, 이는 성적 반응의 약화로 이어집니다. 특히 40대 이후에는 자연적인 테스토스테론 감소로 인해 이런 현상이 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3. 심리적 위축과 회피
한두 번의 실패 경험은 쉽게 불안과 자신감 상실로 이어집니다. 발기부전이 반복되면 남성은 성관계 자체를 피하려고 하고, 스킨십조차 회피하게 됩니다. 이는 파트너와의 정서적 연결고리를 약화시키고, 사랑보다 익숙함만 남은 관계로 변질시키기도 합니다.
시알리스감정과 기능을 동시에 회복하는 열쇠
시알리스는 발기부전 치료제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단순히 기능을 회복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계의 회복, 감정의 재연결,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 회복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1. 긴 지속시간부담 없는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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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적 자극 시 반응 유도
시알리스는 성적 자극이 있을 때에만 발기 반응을 유도하기 때문에, 불필요하거나 부자연스러운 발기 없이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성생활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긴장 없이 편안하게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도와줍니다.
3. 반복적 실패에 대한 심리적 치료 효과
성관계에서의 반복적인 실패는 자존감을 크게 훼손시킵니다. 하지만 시알리스의 안정적인 효과는 이러한 불안을 줄이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심리적 확신을 회복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4. 감정적 거리 좁히기
스킨십이 회복되면, 감정적 연결도 되살아납니다. 손을 잡고, 포옹하고, 함께 잠드는 모든 순간이 다시 익숙하고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시알리스는 그러한 관계 회복의 기회를 현실로 만들어주는 실질적인 수단입니다.
전문가의 조언약물과 생활습관의 병행
시알리스는 뛰어난 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생활습관 개선과 병행할 때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전문가들은 아래와 같은 생활 방식의 변화도 함께 권장합니다.
규칙적인 운동 유산소와 근력 운동은 혈류 개선과 호르몬 분비에 도움을 줍니다
균형 잡힌 식사 아연, 오메가3, 아르기닌 등 성기능에 좋은 영양소 섭취
충분한 수면 수면 부족은 성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며 피로 누적을 유발
스트레스 관리 취미, 명상, 대화 등으로 정서 안정 추구
파트너와의 대화 감정을 숨기지 말고 공유하여 상호 이해를 도모
특히 파트너와의 대화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변화가 불안하고 민감한 주제일수록 솔직한 대화와 공감이 관계 회복의 열쇠가 됩니다.
결론익숙함을 다시 설렘으로, 시알리스와 함께
오래된 관계일수록 더 깊은 신뢰와 정이 자리하지만, 그만큼 무뎌지는 감정과 신체 반응이 관계에 균열을 만들기도 합니다. 스킨십이 어색해지고, 성생활이 멀어지는 순간은 단지 나이가 들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관리와 회복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시알리스는 그 기회를 다시 잡게 해주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해답입니다. 그것은 단지 약 하나가 아니라, 자신감의 회복이며, 사랑의 연결을 다시 엮는 끈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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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lotnara.info
12·3 불법 계엄의 핵심 퍼즐인 ‘비화폰끼리’ 나눈 통화 내역을 공개한다. 계엄 준비가 구체화된 2024년 12월1일부터 계엄이 해제된 2024년 12월4일까지 통화한 내역 중 일부다. 〈시사IN〉 취재와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을 통해 드러난 대통령경호처·군 비화폰 통화 기록을 토대로, 윤석열을 비롯한 계엄 세력이 감추고자 했던 나흘간의 기록을 복원했다. 이 기간에 윤석열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각 사령관들 사이에 오간 구체적인 통화 시점과 통화 시간이 특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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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1일 윤석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지켜보던 중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계엄 D-2 혼자 끄적거린 메모?
2024년 12월8일 김용현 게임릴사이트 전 국방부 장관이 검찰에 진술한 계엄 이틀 전 상황은 이렇다. “(윤석열이) 만약 계엄을 하게 되면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어봐서 내가 세 가지를 말했다. 첫 번째로 계엄선포문이 있어야 하고, 이를 국무회의 안건으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세 번째로 포고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걸 준비할 수 있냐고 했다. 그때가 백경게임랜드 2024년 12월1일 오전 11시경이었고, 내가 ‘가서 준비해보겠다’라고 했다.”
경호처 비화폰 통화 기록은 그 후 계엄 준비가 본격화된 과정을 보여준다. 윤석열이 지시를 내리고 3시간 뒤, 김용현 전 장관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차례로 전 황금성릴게임 화를 걸었다(이하 직책 생략). 김용현은 오후 2시21분부터 이진우와 도합 22분43초간의 통화를 마친 직후인 오후 2시47분, 여인형에게 전화를 걸어 7분36초간 통화했다.
그 뒤 세 사령관 사이 바삐 전화가 오갔다. 먼저 이진우가 여인형과 곽종근을 찾았다. 오후 3시15분 여인형에게 전화를 걸 바다이야기온라인 어 17분56초간 통화한 후, 연달아 곽종근에게 전화해 16분29초간 통화했다. 여인형은 김용현에 이어 이진우와 통화를 마치고 10분쯤 지난 오후 3시44분, 휴대폰으로 메모를 쓰기 시작했다.
‘반국가 세력 수사본부 김대우. -경찰/조본 30명 위치 파악. -합동체포조 운용. -특전사, 경호대, 경호팀 운용. -수방사, 조본, 문서고 구금 시설, 국군교도소 구금 운용 준비. -합동팀 편성. 방첩 5, 군사경찰 5, 경찰 5, 경호 5 기준 20명 1개 팀. 장비, 차량 등 정밀 편성. -합동체포조 작전 개시. -출국금지’. 메모에 등장하는 김대우는 ‘계엄 당시 여인형이 이재명·우원식·한동훈 등 14명을 잡아 구금 시설로 이송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하는 전직 방첩사 수사단장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여인형의 휴대폰이 울렸다. 곽종근은 이진우와 통화를 마친 직후인 오후 3시50분 여인형에게 전화해 2분39초간 이야기를 나눴다. 30분쯤 뒤인 오후 4시24분 여인형이 휴대폰에 메모를 추가했다.
‘-과수실, 정보보호단. 사이버사를 민간 전문가팀과 합동 운용. -선관위, (여론조사) 꽃 증거 확보. 기타. -작전부대 상황, 대전복’ 여인형은 11월24일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위의 내용들이 혼자 끄적거린 메모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오후 4시53분 김용현은 마지막으로 곽종근에게 전화를 걸어 도합 14분57초간 통화했다. 곽종근은 2024년 12월1일 김용현에게 ‘국회, 선관위 과천청사·관악청사·수원 연수원, 더불어민주당 당사, 여론조사 꽃 등 6개 장소에 부대를 투입해 시설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 통화에서 ‘6개 장소 확보’ 지시를 받았을 개연성이 크다. 곽종근은 김용현과 통화 종료 9분 뒤인, 오후 5시17분 여인형에게 전화를 걸어 9분54초간 통화했다. 내란 특검(특별검사 조은석)은 이 통화에서 여인형이 곽종근에게 관련 지시를 전달받았을 거라고 보고 있다.
ⓒ시사IN
■ 계엄 D-1 “깜짝 놀랐지. 내일 보자!”
곽종근은 경호처 비화폰 통화 기록이 공개되기 전부터, 계엄 전날 밤 김용현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김용현 옆에는 윤석열이 있었다. “장관의 전화가 와서 받고 보니 대통령 목소리였다. 이때 대통령은 ‘며칠 이후로 준비되면 보자!’라고 해서 ‘알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이후 같은 전화기로 국방부 장관이 등장해 ‘깜짝 놀랐지. 내일 보자!’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2024년 12월16일 작성 자수서)” 이러한 곽종근 주장을 뒷받침하는 통화 기록이 확인됐다.
경호처 비화폰 통화 기록에 따르면, 2024년 12월2일 오후 10시13분 김용현은 곽종근에게 전화를 걸어 52초간 통화했다. 곽종근은 이 통화에서 윤석열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기억한다. 이때 김용현은 곽종근에게만 전화를 건 게 아니었다. 곽종근과 통화 전후로 여인형, 이진우와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을 찾았다. 각 통화 간격은 1분에서 3분 사이로 짧았다. 여인형, 이진우, 박안수와 통화할 때도 윤석열이 김용현 곁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2024년 12월2일 밤 10시9분, 김용현은 여인형을 가장 먼저 찾았다. 여인형과 1분38초간 통화한 뒤, 오후 10시12분부터 이진우와 40초간, 오후 10시13분부터 곽종근과 52초간, 오후 10시15분부터 박안수와 51초간 통화했다. 박안수와 통화를 마치고 10여 분쯤 지난 뒤 곽종근, 이진우, 여인형에게는 추가로 전화를 걸었다.
내란 특검은 계엄을 하루 앞둔 이날, 김용현이 계엄 임무를 수행해야 할 부대의 대비 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주요 사령관들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의심한다. 김용현은 계엄 선포 직후,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열고 ‘이제부터 전군은 장관이 지휘한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항명죄로 처벌한다’ ‘수방사령관과 특전사령관은 제한 사항을 확인하고, 기존에 하달했던 임무를 정상적으로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계엄 선포 전 이미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한 임무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시사IN
■ 계엄 선포 직전 여인형·이진우·곽종근·조지호·김봉식·노상원을 찾는 전화벨
2024년 12월3일 오전 11시25분, 여인형은 더 구체적인 내용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었다. “최초 지시. -헌법과 법률에 의거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합법적 명령에 의거 임무를 개시함. -포고령, 작전 계획에 의거 조치할 것. -국정원, 경찰, 조사본부 등 모든 정보 수사기관은 합수본부장 명령에 따를 것임. -참모장은 의명 합수본부로 전환 준비. -합수본은 방첩수사단장의 반국(가) 세력 수사본부, 1처장의 부정선거/여론조작 수사본부로 편성(···).”
여인형은 그날 오후 1시33분까지 “참모장은 경찰, 조사본부로부터 각 100명씩 수사관을 파견받을 것” 등 계엄 관련 메모를 적어나갔다. 3시간여 뒤인 오후 4시43분, 여인형의 전화기가 울렸다. 윤석열이었다. 윤석열은 계엄 선포 6시간 전부터 여인형을 직접 챙겼다.
ⓒ시사IN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은 7월10일 윤석열 내란우두머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 선포 직전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마 오후 9시40분이나 50분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여인형) 사령관이 창문 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고 ‘네네네네’ 하고 와서 ‘장관님이야. 좀 늦어진대’라고 말했다.”
정성우 전 처장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통화 기록이 확인됐다. 계엄 선포 직전 김용현은 바삐 움직였다. 오후 9시45분부터 여인형과 24초간, 오후 9시46분부터 이진우와 1분12초간, 오후 9시48분부터 곽종근과 15초간, 오후 9시49분부터 조지호 경찰청장과 22초간, 그 직후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과 44초간, 오후 9시50분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18초간 통화했다. 현재 모두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기소된 인물들이다. 내란 특검은 김용현이 계엄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될 이들에게 계엄 선포 사실을 알리려 했다고 본다.
■ 계엄 선포 직후 윤석열이 직접 챙긴 작전
2024년 12월4일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했다. 경호처 비화폰 통화 기록에 따르면, 윤석열은 계엄 선포 후 김용현과 더불어 지휘관 6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오후 10시53분), 조지호(오후 11시15분), 박안수(오후 11시17분), 여인형(오후 11시19분), 이진우(오후 11시33분), 곽종근(오후 11시36분) 순이다. 각각 정치인 체포, 국회 봉쇄, 선관위 점거와 서버 반출 지시를 받은 지휘관이다.
계획대로 작전이 전개되는 것처럼 보였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31분 정보사령부가 선관위 과천청사에 진입해 출입을 통제하고 서버실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오후 10시46분 서울경찰청이 국회 출입 통제를 지시한 데 이어, 오후 11시37분 경찰청이 국회 출입 전면 통제를 지시했다. 방첩사도 오후 11시30분경부터 체포조 10개 팀 49명을 차례로 국회에 보냈다. 오후 11시49분 특전사 707특임단을 태운 헬기가 국회 운동장에 착륙했다.
ⓒ시사IN
하지만 국회와 시민들이 맞섰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57분 우원식 국회의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에 대응 조치하겠다”라며 국회 본회의장으로 국회의원을 소집했다. 국회의원과 함께, 계엄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국회로 모였다. 소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도 하나둘 나타났다. 오전 0시21분 우원식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을 위해 본회의장 의장석에 착석했다.
윤석열은 서둘렀다. 윤석열은 오전 0시25분 여인형에게 전화를 걸어 1분8초간 통화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오전 0시33분, 김용현이 마찬가지로 여인형에게 전화해 26초간 통화했다. 그 직후 여인형은 정치인 체포 지시를 내렸던 김대우를 찾았다. 오전 0시34분 김대우에게 전화해 1분33초간 통화했다. 여인형과 김대우가 통화한 뒤, 국회로 출동한 방첩사 ‘정치인 체포조’에 이재명·우원식·한동훈 3명 우선 체포 지시가 떨어졌다.
‘기존에 부여된 구금 인원 전면 취소하고 모든 팀은 우원식, 이재명, 한동훈을 먼저 체포하여 구금 시설(수방사)로 이동한다’ ‘포승줄 수갑 이용’. 오전 0시40분경 방첩사 최 아무개 소령은 김대우의 지시에 따라, 체포조 각 팀 조장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이러한 임무를 전파했다. 최 소령은 “이유는 듣지 못했는데, 당시 국회의원들의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 가결을 막기 위해 위 세 명을 체포하는 게 가장 급한 일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1월2일 검찰에 진술했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이 임박하자, 윤석열은 국회에 부대원을 투입한 곽종근, 이진우와 국회 봉쇄 지시를 내린 조지호를 연달아 찾았다. 곽종근은 2024년 12월4일 오전 0시30분경 윤석열이 전화해 ‘아직 의원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다.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고 2024년 12월9일부터 폭로해왔다. 경호처 비화폰 통화 기록을 통해, 윤석열이 이날 오전 0시31분 곽종근에게 전화를 걸어 40초간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윤석열은 이후 오전 0시32분부터 이진우에게 1~2분 간격으로 연달아 세 차례 전화를 걸고, 오전 0시48분 조지호에게 전화를 했다. 내란 특검은 윤석열이 이때 이진우에게 ‘아직도 못 들어갔어?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한 명씩 들쳐업고 나오라고 해’ ‘문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 지시하고, 조지호에게 ‘국회로 들어가는 국회의원들을 포고령 위반으로 전부 체포해’라고 지시한 것으로 파악했다.
ⓒ시사IN
■ 2차 계엄 시도? ‘0213’ 통화의 의미
2024년 12월4일 오전 1시1분,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됐다. 윤석열은 멈추지 않았다. 오전 1시6분 이진우에게 전화를 걸어 1분12초간 통화하고, 오전 1시13분 다시 이진우와 42초간 통화했다. 이진우와 그의 부하들은 이때 윤석열이 ‘그러니까 내가 계엄 선포되기 전에 병력을 움직여야 한다고 했는데 다들 반대해서’ ‘해제됐다 하더라도 내가 두 번, 세 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지시했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윤석열은 이진우와 통화를 마치고 2분 후인 오전 1시16분 합동참모본부 지하 결심지원실로 이동했다. 계엄 해제 심의를 위한 국무회의를 여는 대신, 오전 1시44분까지 약 30분간 이곳에 머물렀다. 윤석열 곁에는 김용현과 박안수만 남은 상태였다. 윤석열이 떠난 후인 오전 2시9분, 김용현은 곽종근에게 전화해 ‘선관위 병력 투입’을 다시 지시했다. 김영권 전 특전사 파견 방첩사 방첩부대장은 당시 곽종근의 대답을 듣고 이런 메모를 남겼다.
“△0213 MND(국방부 장관) 현 병력 상황 하문. 선관위 투입? → 국회 X, 안 됩니다. △미쳐가는구나··· 다 수사 대상.” 김영권은 “사령관이 아주 힘없는 목소리로 ‘장관님, 이미 국회에서 병력이 빠져나왔는데 선관위에 다시 들어가는 것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하는 걸 들었다”라고 2024년 12월24일 검찰에 진술했다. 경호처 비화폰 통화 기록에 따르면, 곽종근이 김용현과 통화를 마친 시각이 오전 2시12분53초다. 메모에 적힌 ‘0213(오전 2시13분)’에 김용현이 재차 병력 투입을 지시했다는 김영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시사IN〉 취재를 통해 윤석열이 오전 3시47분 이진우에게 전화를 걸어 3분49초간 통화한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이후인 오전 3시47분, 왜 수도방위사령관인 이진우에게 전화를 했는지 묻는 〈시사IN〉 질의에 윤석열 측 변호인은 “통화 내용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어서 답변하기 적절치 않다. 새벽에 (윤석열이) 전화를 여러 군데 했던 거 같은데, 새벽이라고 (두 사람이 통화한 사실이) 이상한 건 아닌 것 같다”라고 답했다.
ⓒ시사IN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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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1일 윤석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을 지켜보던 중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계엄 D-2 혼자 끄적거린 메모?
2024년 12월8일 김용현 게임릴사이트 전 국방부 장관이 검찰에 진술한 계엄 이틀 전 상황은 이렇다. “(윤석열이) 만약 계엄을 하게 되면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어봐서 내가 세 가지를 말했다. 첫 번째로 계엄선포문이 있어야 하고, 이를 국무회의 안건으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세 번째로 포고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걸 준비할 수 있냐고 했다. 그때가 백경게임랜드 2024년 12월1일 오전 11시경이었고, 내가 ‘가서 준비해보겠다’라고 했다.”
경호처 비화폰 통화 기록은 그 후 계엄 준비가 본격화된 과정을 보여준다. 윤석열이 지시를 내리고 3시간 뒤, 김용현 전 장관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차례로 전 황금성릴게임 화를 걸었다(이하 직책 생략). 김용현은 오후 2시21분부터 이진우와 도합 22분43초간의 통화를 마친 직후인 오후 2시47분, 여인형에게 전화를 걸어 7분36초간 통화했다.
그 뒤 세 사령관 사이 바삐 전화가 오갔다. 먼저 이진우가 여인형과 곽종근을 찾았다. 오후 3시15분 여인형에게 전화를 걸 바다이야기온라인 어 17분56초간 통화한 후, 연달아 곽종근에게 전화해 16분29초간 통화했다. 여인형은 김용현에 이어 이진우와 통화를 마치고 10분쯤 지난 오후 3시44분, 휴대폰으로 메모를 쓰기 시작했다.
‘반국가 세력 수사본부 김대우. -경찰/조본 30명 위치 파악. -합동체포조 운용. -특전사, 경호대, 경호팀 운용. -수방사, 조본, 문서고 구금 시설, 국군교도소 구금 운용 준비. -합동팀 편성. 방첩 5, 군사경찰 5, 경찰 5, 경호 5 기준 20명 1개 팀. 장비, 차량 등 정밀 편성. -합동체포조 작전 개시. -출국금지’. 메모에 등장하는 김대우는 ‘계엄 당시 여인형이 이재명·우원식·한동훈 등 14명을 잡아 구금 시설로 이송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하는 전직 방첩사 수사단장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여인형의 휴대폰이 울렸다. 곽종근은 이진우와 통화를 마친 직후인 오후 3시50분 여인형에게 전화해 2분39초간 이야기를 나눴다. 30분쯤 뒤인 오후 4시24분 여인형이 휴대폰에 메모를 추가했다.
‘-과수실, 정보보호단. 사이버사를 민간 전문가팀과 합동 운용. -선관위, (여론조사) 꽃 증거 확보. 기타. -작전부대 상황, 대전복’ 여인형은 11월24일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위의 내용들이 혼자 끄적거린 메모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오후 4시53분 김용현은 마지막으로 곽종근에게 전화를 걸어 도합 14분57초간 통화했다. 곽종근은 2024년 12월1일 김용현에게 ‘국회, 선관위 과천청사·관악청사·수원 연수원, 더불어민주당 당사, 여론조사 꽃 등 6개 장소에 부대를 투입해 시설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 통화에서 ‘6개 장소 확보’ 지시를 받았을 개연성이 크다. 곽종근은 김용현과 통화 종료 9분 뒤인, 오후 5시17분 여인형에게 전화를 걸어 9분54초간 통화했다. 내란 특검(특별검사 조은석)은 이 통화에서 여인형이 곽종근에게 관련 지시를 전달받았을 거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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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엄 D-1 “깜짝 놀랐지. 내일 보자!”
곽종근은 경호처 비화폰 통화 기록이 공개되기 전부터, 계엄 전날 밤 김용현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김용현 옆에는 윤석열이 있었다. “장관의 전화가 와서 받고 보니 대통령 목소리였다. 이때 대통령은 ‘며칠 이후로 준비되면 보자!’라고 해서 ‘알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이후 같은 전화기로 국방부 장관이 등장해 ‘깜짝 놀랐지. 내일 보자!’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2024년 12월16일 작성 자수서)” 이러한 곽종근 주장을 뒷받침하는 통화 기록이 확인됐다.
경호처 비화폰 통화 기록에 따르면, 2024년 12월2일 오후 10시13분 김용현은 곽종근에게 전화를 걸어 52초간 통화했다. 곽종근은 이 통화에서 윤석열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기억한다. 이때 김용현은 곽종근에게만 전화를 건 게 아니었다. 곽종근과 통화 전후로 여인형, 이진우와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을 찾았다. 각 통화 간격은 1분에서 3분 사이로 짧았다. 여인형, 이진우, 박안수와 통화할 때도 윤석열이 김용현 곁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2024년 12월2일 밤 10시9분, 김용현은 여인형을 가장 먼저 찾았다. 여인형과 1분38초간 통화한 뒤, 오후 10시12분부터 이진우와 40초간, 오후 10시13분부터 곽종근과 52초간, 오후 10시15분부터 박안수와 51초간 통화했다. 박안수와 통화를 마치고 10여 분쯤 지난 뒤 곽종근, 이진우, 여인형에게는 추가로 전화를 걸었다.
내란 특검은 계엄을 하루 앞둔 이날, 김용현이 계엄 임무를 수행해야 할 부대의 대비 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주요 사령관들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의심한다. 김용현은 계엄 선포 직후,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열고 ‘이제부터 전군은 장관이 지휘한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항명죄로 처벌한다’ ‘수방사령관과 특전사령관은 제한 사항을 확인하고, 기존에 하달했던 임무를 정상적으로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계엄 선포 전 이미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한 임무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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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엄 선포 직전 여인형·이진우·곽종근·조지호·김봉식·노상원을 찾는 전화벨
2024년 12월3일 오전 11시25분, 여인형은 더 구체적인 내용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었다. “최초 지시. -헌법과 법률에 의거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합법적 명령에 의거 임무를 개시함. -포고령, 작전 계획에 의거 조치할 것. -국정원, 경찰, 조사본부 등 모든 정보 수사기관은 합수본부장 명령에 따를 것임. -참모장은 의명 합수본부로 전환 준비. -합수본은 방첩수사단장의 반국(가) 세력 수사본부, 1처장의 부정선거/여론조작 수사본부로 편성(···).”
여인형은 그날 오후 1시33분까지 “참모장은 경찰, 조사본부로부터 각 100명씩 수사관을 파견받을 것” 등 계엄 관련 메모를 적어나갔다. 3시간여 뒤인 오후 4시43분, 여인형의 전화기가 울렸다. 윤석열이었다. 윤석열은 계엄 선포 6시간 전부터 여인형을 직접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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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은 7월10일 윤석열 내란우두머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 선포 직전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마 오후 9시40분이나 50분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여인형) 사령관이 창문 쪽으로 가서 전화를 받고 ‘네네네네’ 하고 와서 ‘장관님이야. 좀 늦어진대’라고 말했다.”
정성우 전 처장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통화 기록이 확인됐다. 계엄 선포 직전 김용현은 바삐 움직였다. 오후 9시45분부터 여인형과 24초간, 오후 9시46분부터 이진우와 1분12초간, 오후 9시48분부터 곽종근과 15초간, 오후 9시49분부터 조지호 경찰청장과 22초간, 그 직후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과 44초간, 오후 9시50분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18초간 통화했다. 현재 모두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기소된 인물들이다. 내란 특검은 김용현이 계엄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될 이들에게 계엄 선포 사실을 알리려 했다고 본다.
■ 계엄 선포 직후 윤석열이 직접 챙긴 작전
2024년 12월4일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했다. 경호처 비화폰 통화 기록에 따르면, 윤석열은 계엄 선포 후 김용현과 더불어 지휘관 6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오후 10시53분), 조지호(오후 11시15분), 박안수(오후 11시17분), 여인형(오후 11시19분), 이진우(오후 11시33분), 곽종근(오후 11시36분) 순이다. 각각 정치인 체포, 국회 봉쇄, 선관위 점거와 서버 반출 지시를 받은 지휘관이다.
계획대로 작전이 전개되는 것처럼 보였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31분 정보사령부가 선관위 과천청사에 진입해 출입을 통제하고 서버실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오후 10시46분 서울경찰청이 국회 출입 통제를 지시한 데 이어, 오후 11시37분 경찰청이 국회 출입 전면 통제를 지시했다. 방첩사도 오후 11시30분경부터 체포조 10개 팀 49명을 차례로 국회에 보냈다. 오후 11시49분 특전사 707특임단을 태운 헬기가 국회 운동장에 착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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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회와 시민들이 맞섰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57분 우원식 국회의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적 절차에 따라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에 대응 조치하겠다”라며 국회 본회의장으로 국회의원을 소집했다. 국회의원과 함께, 계엄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국회로 모였다. 소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도 하나둘 나타났다. 오전 0시21분 우원식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을 위해 본회의장 의장석에 착석했다.
윤석열은 서둘렀다. 윤석열은 오전 0시25분 여인형에게 전화를 걸어 1분8초간 통화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오전 0시33분, 김용현이 마찬가지로 여인형에게 전화해 26초간 통화했다. 그 직후 여인형은 정치인 체포 지시를 내렸던 김대우를 찾았다. 오전 0시34분 김대우에게 전화해 1분33초간 통화했다. 여인형과 김대우가 통화한 뒤, 국회로 출동한 방첩사 ‘정치인 체포조’에 이재명·우원식·한동훈 3명 우선 체포 지시가 떨어졌다.
‘기존에 부여된 구금 인원 전면 취소하고 모든 팀은 우원식, 이재명, 한동훈을 먼저 체포하여 구금 시설(수방사)로 이동한다’ ‘포승줄 수갑 이용’. 오전 0시40분경 방첩사 최 아무개 소령은 김대우의 지시에 따라, 체포조 각 팀 조장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이러한 임무를 전파했다. 최 소령은 “이유는 듣지 못했는데, 당시 국회의원들의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 가결을 막기 위해 위 세 명을 체포하는 게 가장 급한 일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1월2일 검찰에 진술했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이 임박하자, 윤석열은 국회에 부대원을 투입한 곽종근, 이진우와 국회 봉쇄 지시를 내린 조지호를 연달아 찾았다. 곽종근은 2024년 12월4일 오전 0시30분경 윤석열이 전화해 ‘아직 의원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다.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고 2024년 12월9일부터 폭로해왔다. 경호처 비화폰 통화 기록을 통해, 윤석열이 이날 오전 0시31분 곽종근에게 전화를 걸어 40초간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윤석열은 이후 오전 0시32분부터 이진우에게 1~2분 간격으로 연달아 세 차례 전화를 걸고, 오전 0시48분 조지호에게 전화를 했다. 내란 특검은 윤석열이 이때 이진우에게 ‘아직도 못 들어갔어?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한 명씩 들쳐업고 나오라고 해’ ‘문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 지시하고, 조지호에게 ‘국회로 들어가는 국회의원들을 포고령 위반으로 전부 체포해’라고 지시한 것으로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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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계엄 시도? ‘0213’ 통화의 의미
2024년 12월4일 오전 1시1분,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됐다. 윤석열은 멈추지 않았다. 오전 1시6분 이진우에게 전화를 걸어 1분12초간 통화하고, 오전 1시13분 다시 이진우와 42초간 통화했다. 이진우와 그의 부하들은 이때 윤석열이 ‘그러니까 내가 계엄 선포되기 전에 병력을 움직여야 한다고 했는데 다들 반대해서’ ‘해제됐다 하더라도 내가 두 번, 세 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지시했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윤석열은 이진우와 통화를 마치고 2분 후인 오전 1시16분 합동참모본부 지하 결심지원실로 이동했다. 계엄 해제 심의를 위한 국무회의를 여는 대신, 오전 1시44분까지 약 30분간 이곳에 머물렀다. 윤석열 곁에는 김용현과 박안수만 남은 상태였다. 윤석열이 떠난 후인 오전 2시9분, 김용현은 곽종근에게 전화해 ‘선관위 병력 투입’을 다시 지시했다. 김영권 전 특전사 파견 방첩사 방첩부대장은 당시 곽종근의 대답을 듣고 이런 메모를 남겼다.
“△0213 MND(국방부 장관) 현 병력 상황 하문. 선관위 투입? → 국회 X, 안 됩니다. △미쳐가는구나··· 다 수사 대상.” 김영권은 “사령관이 아주 힘없는 목소리로 ‘장관님, 이미 국회에서 병력이 빠져나왔는데 선관위에 다시 들어가는 것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하는 걸 들었다”라고 2024년 12월24일 검찰에 진술했다. 경호처 비화폰 통화 기록에 따르면, 곽종근이 김용현과 통화를 마친 시각이 오전 2시12분53초다. 메모에 적힌 ‘0213(오전 2시13분)’에 김용현이 재차 병력 투입을 지시했다는 김영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시사IN〉 취재를 통해 윤석열이 오전 3시47분 이진우에게 전화를 걸어 3분49초간 통화한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이후인 오전 3시47분, 왜 수도방위사령관인 이진우에게 전화를 했는지 묻는 〈시사IN〉 질의에 윤석열 측 변호인은 “통화 내용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어서 답변하기 적절치 않다. 새벽에 (윤석열이) 전화를 여러 군데 했던 거 같은데, 새벽이라고 (두 사람이 통화한 사실이) 이상한 건 아닌 것 같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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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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