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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금 카운트가 어떻게 가는 거야? 4분의 2박?”
타악기 연주자들이 분주해졌다. 타악기 파트는 19살의 소년 작곡가 이하느리의 음악을 만나 진땀을 흘렸다. 지휘자와 가장 먼 자리에 일렬로 선 큰 북, 장구, 우드 블럭 등 다양한 타악기의 연주자들은 ‘헷갈리는 박자’ 사이로 중심을 잡아간다. 최수열 지휘자는 “변박에서 조금 안정적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템포가 잡힌다”고 말한다.
분주한 타악이 잦아들면 새로운 악장에선 관악기와 개량 양금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돌림노래처럼 들려준다. 그러다 이내 돌변하듯 자연의 소리가 빚어 서울제2금융 낸 ‘강렬한 충돌’이 청각적 충격을 안긴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장단의 재발견’ 중 이하느리의 신작 ‘언셀렉티드 앰비어트 루프스 25-25’의 연습 현장이다.
모두가 고개를 내저은 ‘극악의 난도’였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이하느리는 “최고의 연주자를 생각하고 곡을 써야 한다고 배운 이후, 곡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머릿속 창업진흥원ci 으로만 상상하던 소리를 악단의 연주를 통해 들으니 제 예상보다도 소리가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하느리는 지금 세계 클래식계의 수많은 러브콜을 받는 작곡가다. 고작 18세에 헝가리 버르토크 국제 콩쿠르를 석권했고,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위촉한 곡을 쓴 주인공이다. 이번엔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접어들었다.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물고, 국악과 한국은행 금리 양악의 방어선을 넘었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지난해 12월 1시간 길이의 국악관현악곡을 위촉하면서다. 중간 역할을 한 사람은 최수열 지휘자다.
이하느리는 “평소 국악 작품을 들으며 막연히 작곡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의외로 기회가 빨리 왔다”고 말했다. 다만 장대한 길이는 그에게 난관이었다. 8살에 바이올린 독주곡을 처음 쓰며 빌딩중개 작곡의 세계에 들어선 그는 지금까지 20분이 넘는 곡을 쓴 적은 없다. 그는 “요즘 미니어처 형식의 곡을 쓰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 40분 분량으로 줄여 다시 제안했다”고 말했다.



작곡가 이하느리가 처음으로 국악관현악에 도전한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파산면책
총 7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악보도 상당히 두툼하다. 연습 중 최수열 지휘자는 “되게 많이 한 것 같은데 아직 59마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양악을 전공한 현대음악 작곡가는 국악관현악을 만나 기존의 장단을 해체하고 재조립한다. 이하느리 신작의 중요한 모티프는 ‘루프’(4마디, 8마디가 반복되는 짧은 리듬)다. 국악의 장단이 양악의 루프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국악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승훤 단장은 “어떤 부분에선 음악이 한없는 호흡으로 흐르고, 어떤 부분에서 층층이 구조로 쌓아지며 만들어내는 사운드 집합이 인상적”이라며 “느슨하게 시작됐던 음악이 레고 블록을 쌓아가듯 사운드와 장단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최수열 지휘자는 “국악관현악은 악보만으로는 안 들리는 소리, 예상되지 않는 소리가 너무나 많아 리허설 과정에서 진짜 음악이 들린다”며 “이 곡을 어떤 상상력으로 썼는지,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희열을 느끼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피리가 굉장히 이상한 주법으로 연주하는데, 이걸 과연 알고 썼는지 아니면 모르고 썼는지 궁금하다”며 “기존 국악관현악과는 접근이 다르다”며 웃었다.
이에 대해 이하느리는 “각 악기의 밸런스와 음향, 악기군의 가능성을 고심했고, 양악적 아이디어를 국악기로 번역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때론 그가 가진 양악적 아이디어가 국악으로 발현되지 않고, 양악과 국악 사이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한다. 이 곡의 제목이 ‘언셀렉티드’인 것도 ‘선택되지 않은 아이디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이 단장은 그의 음악에 대해 “현대음악의 요소가 강한 앰비언트 음악이 국악기와 만나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며 “그림으로 치면 완전히 새로운 도화지에 기존의 재료를 얹었기에 새로운 그림이 그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네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이하느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스크랴빈의 ‘피아노 소나타 3번’ 2악장을 들었을 때 충격을 받고, “나도 이런 곡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016년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에 다니며 본격적인 작곡의 길로 접어든 후 늘 클래식 음악과 함께 했다. 다른 장르의 음악을 듣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전부터다. 지난 2023년부터 확장된 그의 음악 세계는 다양한 영감을 줬다.



이승훤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단장과 작곡가 이하느리 [세종문화회관 제공]


머릿속에 떠다니는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는 시시각각 그의 삶 속에서 튀어나온다. 불완전한 상태의 아이디어를 악보로 써 내려가면 보통 애초의 구상과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 작곡할 때는 스케치도 하지 않는다. 이번 음악 역시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태어났다.
그는 “국악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곡을 쓰기보단 양악기라 생각하고 곡을 썼다”고 했다. 그가 국악관현악을 쓰기로 결심하며 가장 마음이 간 악기는 양금이다. 특히 7음계인 전통 양금이 아닌 12반 음계의 개량 양금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악기 소리에서 작곡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며 “국악기들은 음향이 독특한 편인데 그중에서도 양금은 양악기와 같이 썼을 때 재미난 소리를 내 많은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장단의 재발견’ 공연의 1부 순서에선 김희조 작곡가의 ‘협주곡 3번’을 통해 전통 양금을, 2부의 이하느리의 곡에선 개량 양금의 고난도 테크닉과 속주를 들을 수 있다.
첫 국악관현악 도전이긴 해도 이 곡에선 19세 작곡가 이하느리가 현재 지향하는 음악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다양한 국악기와 간간이 섞인 양악기가 만들어낸 소리의 향연을 통해 악기들의 음향을 탐구한다. 그는 “의미나 개념을 담기 위해 음악을 작곡하진 않는다”며 “아이디어는 소리의 형태로 내 머릿속에 있다”고 했다. 지난 3월 그의 절친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위촉해 작곡한 연주곡 제목 ‘라운드 앤드 벨베티 스무드 블렌드(…Round and velvety-smooth blend…)’도 “(임윤찬) 형이 제목을 먼저 정했지만, 제목을 생각하고 곡을 쓰진 않았다”고 말했다. 임윤찬은 어디에서나 이하느리를 극찬하며, ‘하느리 전도사’를 자처한다.
이 공연은 국악관현악의 전통적 어법을 동시대 음악 언어로 탐색하고 확장하는 리(Re)-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국악관현악이 새로운 시대와 소통하는 음악으로 자리하기 위해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선 실험과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바이올린을 배우다 피리 정악을 이수한 이승훤 단장은 “내 인생 최초의 국악은 서태지의 ‘하여가’(가요 최초로 태평소를 접목한 곡)”라며 “국악계엔 전통과 비전통을 가르지만, 사실 작곡이나 지휘는 동서양의 구분이 없는 장르”라고 했다.그러면서 그는 “익숙한 국악을 현대적으로 들려줄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대전제에 동의한다”며 “끊임없이 하고 싶은 만큼 시도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년 작곡가의 국악관현악 실험이 될 ‘장단의 재발견’ 공연은 오는 26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