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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염원휘리 작성일25-08-19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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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소협(한국소설가협회)에서는 연례적인 문학세미나 행사를 지방에서 열었다. 내가 가르치는 고등학교의 여름방학 끝자락에 소협 행사가 들어있어서 내가 여기에 참가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나는 소협 주최의 지방 나들이 행사를 꽁 막힌 일상을 벗어나는 기분으로 갈 때가 많았다. 따로 여행 스케줄을 잡고 어쩌고 할 형편이 못되는 나였던 것이다. 이번에는 강원도 동해안으로 간다고 했는데 나에게는 초행길이었다. 문학 세미나 있는 날이 하루, 지방 곳곳에 있다는 **문학촌을 탐방하는 날 하루에다, 가벼운 등산 스케줄 하루로 짜여진 일정이어서 도합 3박4일이나 된다고 하였다. 아마도 나처럼 여행 기회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음을 감안했을 것 같다휴비스 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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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4일 일정에다 대형 버스 2대에 80명 이상의 인원이 참가하는 행사여서 나 같이 사회적인 교제 범위가 좁은 사람들에게는 지면知面을 넓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였다. 소설가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편이지만, 소설 쓴다는 고역을 서로 공유한다는 동병상련 같은 것이 있어서 초면에 말 붙이기가 쉬운 점도 있었다. 올 가을 소협 행사에도 첫무료바다이야기
날부터 나의 시선을 끄는 사람이 있었다. 가물가물 희미한 기억 속에 떠오르는 얼굴이었지만, 다른 버스에 배정되었기 때문에 쉽게 확인할 수가 없었다. 기억의 망망대해에서 겨우 건져 올린 얼굴은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김미량이었다. 버스를 내려서 걸어 다니는 시간에 틈을 보아 나는 김미량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진짜로 나의 옛날 친구임은 확인이 되었다. 그러나,선물지수
김미량이는 나보다도 더 미심쩍은 얼굴을 하고 쭈뼛거리며 말 걸어오기를 주저하여서 나는 더 이상 접근하기가 거북하였다.
김미량이는 나하고 초등학교 6년을 같이 다니다가 졸업을 하면서 멀리 있는 도시로 이사를 가버렸으니까 그럴 수 있으려니 싶었다. 나는 동문 수학하다가 사라진 과거의 친구 한 사람의 기억을 함께 모아서 갖고 있었는데, 김미변액연급보험
량이는 수십 명 친구들로 쪼개진 기억의 단편들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코흘리개 어린 시절의 김미량에 대한 기억을 분명히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가 헤어질 당시 김미량의 별명은 '공주님'이었다. 김미량이는 우리 모두가 부러워하는 갑부집 딸이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곱상한 얼굴에 말씨도 귀염성스러웠고, 입는 옷도 공주님처럼 귀온라인 릴게임
품스러운 고급 옷이었다. 공부도 항상 1등이었다. 이에 비해서 이번 소협 행사에 나타났을 때의 미량이는 수수한 복장에다가 단출한 단발머리 스타일에 아무런 장식품이 없는 민짜 얼굴이어서 공주님 대접받던 미량이가 맞는지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3박 4일이라는 여유있는 일정이 있다는 느긋한 마음이었다가 마지막 날 아침에는 밀렸던 숙제를 끝내는 심정으로 미량이 숙소를 찾아갔는데 때마침 부재중이었다. 그날은 자유로운 등산을 하기로 되어있고 점심과 저녁 식사도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기기로 되었는데, 미량이는 아침부터 자유로운 스케줄을 즐기는가 보았다. 하루 종일 등산할 수 있을 정도로는 체력에 자신이 없었던 나는 가까운 위치의 조그만 언덕을 산행 코스로 정한 일행과 함께하는 하루를 보냈다.
나는 일찌거니 산행을 마치고 바닷가 해변을 홀로 거니는 저녁 시간을 맞게 되었다. 무심코 들어선 곳은 어선들이 많이 정박해 있는 조그만 포구였다. 하나같이 호기심 자극하는 풍경들이었다. 느긋하게 포구 주변을 거니는 것이 정말 여행 기분이 나는 것 같았다. 하룻저녁 여기에서 시간을 보내면 이런 곳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고 있던 나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대중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슬그머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들어간 낯선 식당 안에 김미량이가 앉아있을 줄이야. 우리는 여기에서 오래 기다리던 사람을 만난 듯이 손을 내밀어 악수하였다. 미량이의 놀람도 나에 못지않아 보였다. 입을 연 것은 나였다.
--우리 여기서 만나기로 40년 전에 약속한 거 맞지? 여기 갈매기식당에서 만나기로 했잖아.
--맞다니까, 맞아. 저녁 여섯 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좀 일찍 들어온 셈이지.
--그래, 나도 시간 대어 오느라고 했는데, 좀 늦어버렸네.
우리 두 사람은 소설가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넉살 좋은 너스레를 이어갈 마음의 준비가 잘 되고 있었다.
--우리 여기서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기로 했더라? 그런 게 있었는데, 내가 바쁘게 오느라고 깜빡해 버렸어.
--아, 그건 내가 잘 기억하고 있지. 40년 지나는 동안에 있었던 일을 차곡차곡 보고하기로 했잖았나.
--맞아, 맞아. 그냥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기로 했어. 우리가 뭐를 숨기겠어. 우리가 코흘리개 친구였을 때는 일생 중 가장 꿈이 많은 시절, 한 사람의 성격이 형성되는 기초 공사가 있는 시절이라고 하잖아.
--글쎄, 그렇다니까.
--근데, 난 40년 동안이라고 해봐야, 이것이 내 인생이었다고 보고할 일이 변변치 않아. 너무 단순하고 싱거운 얘기들이야. 지방대학 국문과를 나와서 가까운 곳 사립고등학교에서 국어선생 하고있어. 지방신문 신춘문예로 겨우 등단했지만 이것이 내 대표 작품이다, 할 정도의 명작은 아직 막막해. 부부 교사라서 생활은 쪼들리지 않지만, 소설 쓸 시간이 없어. 좀 괜찮은 단편소설 하나 쓰기도 힘들다니까. 넌 소설가로 사는 재미가 어떠니? 소설 쓰는 동기 유발 같은 거 말이야.
--나도 너한테서 듣고 싶은 게 그런 거야. 그 어려운 소설 쓰는 동기가 뭐냐, 이거지.
--뭐, 나는 이것 때문에 소설을 쓴다, 하고 내세울 만한 건 딱히 없어. 다만 세상 사는 것이 별로 재미가 없어서 현실 세계에 없는 재미가 여기에는 있을까, 하고 기웃거리는 것 뿐이야. 넌 어떠냐고. 소설 쓰는 마음의 추진력 같은 것이 뭐냔 말이지.
--나도 나의 소설 쓰는 동기가 뭐일까 자문할 때가 많은데, 아마도 난 나의 뿌리 깊은 자존심에 밀려서 소설을 쓰는 거 같애.
--뭐, 자존심 때문에?
--그래, 난 자존심이 별나게 높은 사람인 거 같애. 학생 때 공부도 우등생이었고,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귀한 집 딸, 예쁜이로 잘 받들어 준 탓인 거 같애
--맞아, 넌 초등학교 때 우리끼리 공주님으로 통했던 거 기억나?
--그럼, 기억하고 말고. 그때, 학교에서 공주님 대우받았던 탓도 있을 거야. 그런데, 어릴 때부터 공주님 자존심이 따라다니던 여자, 이런 여자는 힘든게 많아. 자존심 강한 사람은 과부하 인생을 사는 거라. 해서는 안될 일들도 많고, 꼭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뭔가 보통 아닌 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하고 달라야 한단 말이지. 자존심 때문에 아무 직업이나 택하지도 못했어. 대학교수 목표로 1년만 더, 1년만 더 하다 보니까 지금 10년째 시간강사야.
--너네 집은 갑부였잖아. 꼭 직업을 가져야 되나. 전업작가, 얼마나 좋아.
--넌 모르고 있을 테지만, 그동안 우리 집은 폭삭 망해버렸어. 한때는 아버지 사업이 번창 일로를 달리다가 사업확장 꿈을 안고 과잉 투자하는 바람에 있는 재산 다 까먹고 건강까지 잃고 말았어. 나에게 남은 건 어린 시절 친구들이 심어준 자존심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난 집안이 망해서 창피한 것을, 역사에 남을 글쟁이라도 되어서 자존심 살리려고 했어. 그런 말, 들어봤을 거야. 승자는 역사를 쓰고 패자는 소설을 쓴다고 말이지. 패자가 된 억울함과 허망함을 견디지 못하니까 소설을 써서라도 자존심을 살리는 거지. 내가 이번 소협 행사에서 널 보고도 가까이 가지 못하고 짐짓 피해 다닌 건 너에게 나의 초라한 인생 드러나면 어쩌나 싶은 거지.
--친구 좋다는 거 뭐니. 무슨 얘기 해도 다 통하는 게 친구 아니냐고. 특히 어렸을 때 친군 더하지.
--고마워.
--그리고, 희망을 가져. 넌 대학 강단에서 소설 공부를 폭넓게 하고 있으니까, 대작이 곧 나올 거야. 소설가에게 중요한 건 뭐를 소재로 소설을 쓰느냐 하는 문제일 거 같애. 난 학교 선생밖에 해본 게 없으니까, 소설 소재가 빈약한 게 탈이야.
--나에겐 그런 걱정이 좀 적은 편이야. 우리 집 역사에서 소설 쓸 소재는 풍부하니까. 패자가 소설 쓸게 많다고 하지만, 과거 역사가 화려했던 패자일수록 소설 쓸 밑천은 많을 꺼 같애.
--뭐, 갑부 집안이 몰락한 역사를 말하는 거야?
--그래. 우리 아버진 자기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서 자수성가한다는 야심과 의욕으로 성공을 이루어 냈다고 해. 우리 어머닌 남편의 사업 성공에 대한 자만심이 너무 커서 남편의 사업 확대 야심을 부풀려 놓고 결국에는 집안 몰락이라는 불행을 가져온 거야. 가난한 집 딸이었으니까, 부자 남자와 결혼한 것이 벼락 부자된 심정이었겠지. 자만심이 허영심으로 이어진 셈이지. 난 우리 집안 자체에 작품 쓸 소재가 많으니까, 딴 직업을 기웃거릴 필요가 없을 거 같애. 자부심 강한 아빠와 자만심 강한 엄마, 여기에다가 자존심 강한 딸, 이런 인물들이 서로 얽혀들어 있는 거 얼마나 드라마틱하겠냐고. 인간의 성취동기는 자존심과 자부심과 자만심, 이런 거 아니겠어? 난 소설을 쓸 때 옛날 우리 집 세 식구에게 일어난 일들을 작품 속에서 재현하는 기분이 들어. 근데, 자부심이나 자만심에 비해서 자존심이 제일 난해한 테마인 거 같애. 자만심이나 자부심으로 말하면, 자기가 갖고있는 무엇인가에 대해 자만하고 자부하느냐에 따라서 그 출발점이나 도착점이 좌우되지 않겠어? 그렇지만 자존심은 달라. '그 사람은 무엇무엇에 대해 자만하고 자부한다'는 건 말이 되지만, '그는 무엇에 대해 자존한다'는 건 말이 안되잖아. 나 자신의 자존심이 너무 황당하여 요즘에는 유명 소설작품 속에 나타난 자존심 모티브 사례를 공부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잠깐, 우리 공주님이 지금 먹고 있는 것이 라면이라는 건 정말 뜻밖이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야. 나도 공주님 따라서 라면을 주문해야겠네.
--난 집에서도 라면이 주식이라서, 밖에 나와서도 이게 젤 마음에 들어. 시간과 돈을 절약하는 덴 최고인데, 맛도 좋거든. 오늘도 다른 사람과 같이 와서 라면을 먹기는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을 거 같아서 혼자 온 거야. 바다 냄새 섞인 라면 맛은 어떤 것인지 너도 한번 시험해 보라구. 자네 라면값은 내가 내줄게. 공주님 체신으로는 좀 안됐다만은.
--공주님, 감사합니다아.
식당을 나와서 숙소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김미량 작가가 한 말들을 곰곰이 되씹어 보았다.
우선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에 공주님 존대를 해준 것이 김미량의 생애에 일대 재앙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님 자존심이 대학교수의 자존심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나로서는 단조로운 중등학교 교사 자리도 적나라한 세상사 경험을 가로막는다고 생각되는데 이 같은 폐쇄성은 중등교사에 비해 대학교수 자리가 더 심할 것이 아닌가. 김미량 작가는 자존심이 자신의 소설 테마여서 그걸 소설 속에 재현한다고 했고 자부심이나 자만심하고 다른 점을 비교하였지만, 이같이 인생사를 도식화하는 것은 대학교수의 나태한 사고방식일 것이고, 그런 비교는 오히려 소설 쓰는 상상력을 옥죄는 족쇄가 될 것 같았다. 자존심 때문에 아무 직업이나 택하지 못하고, 대학 강단에 머물러있다니 그런 넌센스가 있나. 문학이론이나 소설작법이란 경직된 사고의 틀에 미리부터 갇혀있는 것이고, 넓은 바다에서 한 움큼의 물을 작은 컵으로 건져 올리는 격이 아닌가. 꽃 그림을 그리려고 들판으로 나가는 사람이 꽃의 색깔과 모양을 미리 작정하고 나가는 꼴이다. 그냥 아무 선입견 없이 처음 보는 꽃처럼 마주해야 될 것이 아닌가. 시장바닥에서 소설 소재를 찾아야지 남의 소설들 속에서 무엇을 찾는단 말인가. 문득 대학교수 치고 대단한 소설가가 된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이 떠올랐다.
올해에도 소협(한국소설가협회)에서는 연례적인 문학세미나 행사를 지방에서 열었다. 내가 가르치는 고등학교의 여름방학 끝자락에 소협 행사가 들어있어서 내가 여기에 참가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나는 소협 주최의 지방 나들이 행사를 꽁 막힌 일상을 벗어나는 기분으로 갈 때가 많았다. 따로 여행 스케줄을 잡고 어쩌고 할 형편이 못되는 나였던 것이다. 이번에는 강원도 동해안으로 간다고 했는데 나에게는 초행길이었다. 문학 세미나 있는 날이 하루, 지방 곳곳에 있다는 **문학촌을 탐방하는 날 하루에다, 가벼운 등산 스케줄 하루로 짜여진 일정이어서 도합 3박4일이나 된다고 하였다. 아마도 나처럼 여행 기회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음을 감안했을 것 같다휴비스 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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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4일 일정에다 대형 버스 2대에 80명 이상의 인원이 참가하는 행사여서 나 같이 사회적인 교제 범위가 좁은 사람들에게는 지면知面을 넓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였다. 소설가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편이지만, 소설 쓴다는 고역을 서로 공유한다는 동병상련 같은 것이 있어서 초면에 말 붙이기가 쉬운 점도 있었다. 올 가을 소협 행사에도 첫무료바다이야기
날부터 나의 시선을 끄는 사람이 있었다. 가물가물 희미한 기억 속에 떠오르는 얼굴이었지만, 다른 버스에 배정되었기 때문에 쉽게 확인할 수가 없었다. 기억의 망망대해에서 겨우 건져 올린 얼굴은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김미량이었다. 버스를 내려서 걸어 다니는 시간에 틈을 보아 나는 김미량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진짜로 나의 옛날 친구임은 확인이 되었다. 그러나,선물지수
김미량이는 나보다도 더 미심쩍은 얼굴을 하고 쭈뼛거리며 말 걸어오기를 주저하여서 나는 더 이상 접근하기가 거북하였다.
김미량이는 나하고 초등학교 6년을 같이 다니다가 졸업을 하면서 멀리 있는 도시로 이사를 가버렸으니까 그럴 수 있으려니 싶었다. 나는 동문 수학하다가 사라진 과거의 친구 한 사람의 기억을 함께 모아서 갖고 있었는데, 김미변액연급보험
량이는 수십 명 친구들로 쪼개진 기억의 단편들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코흘리개 어린 시절의 김미량에 대한 기억을 분명히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가 헤어질 당시 김미량의 별명은 '공주님'이었다. 김미량이는 우리 모두가 부러워하는 갑부집 딸이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곱상한 얼굴에 말씨도 귀염성스러웠고, 입는 옷도 공주님처럼 귀온라인 릴게임
품스러운 고급 옷이었다. 공부도 항상 1등이었다. 이에 비해서 이번 소협 행사에 나타났을 때의 미량이는 수수한 복장에다가 단출한 단발머리 스타일에 아무런 장식품이 없는 민짜 얼굴이어서 공주님 대접받던 미량이가 맞는지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3박 4일이라는 여유있는 일정이 있다는 느긋한 마음이었다가 마지막 날 아침에는 밀렸던 숙제를 끝내는 심정으로 미량이 숙소를 찾아갔는데 때마침 부재중이었다. 그날은 자유로운 등산을 하기로 되어있고 점심과 저녁 식사도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기기로 되었는데, 미량이는 아침부터 자유로운 스케줄을 즐기는가 보았다. 하루 종일 등산할 수 있을 정도로는 체력에 자신이 없었던 나는 가까운 위치의 조그만 언덕을 산행 코스로 정한 일행과 함께하는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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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기서 만나기로 40년 전에 약속한 거 맞지? 여기 갈매기식당에서 만나기로 했잖아.
--맞다니까, 맞아. 저녁 여섯 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좀 일찍 들어온 셈이지.
--그래, 나도 시간 대어 오느라고 했는데, 좀 늦어버렸네.
우리 두 사람은 소설가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넉살 좋은 너스레를 이어갈 마음의 준비가 잘 되고 있었다.
--우리 여기서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기로 했더라? 그런 게 있었는데, 내가 바쁘게 오느라고 깜빡해 버렸어.
--아, 그건 내가 잘 기억하고 있지. 40년 지나는 동안에 있었던 일을 차곡차곡 보고하기로 했잖았나.
--맞아, 맞아. 그냥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기로 했어. 우리가 뭐를 숨기겠어. 우리가 코흘리개 친구였을 때는 일생 중 가장 꿈이 많은 시절, 한 사람의 성격이 형성되는 기초 공사가 있는 시절이라고 하잖아.
--글쎄, 그렇다니까.
--근데, 난 40년 동안이라고 해봐야, 이것이 내 인생이었다고 보고할 일이 변변치 않아. 너무 단순하고 싱거운 얘기들이야. 지방대학 국문과를 나와서 가까운 곳 사립고등학교에서 국어선생 하고있어. 지방신문 신춘문예로 겨우 등단했지만 이것이 내 대표 작품이다, 할 정도의 명작은 아직 막막해. 부부 교사라서 생활은 쪼들리지 않지만, 소설 쓸 시간이 없어. 좀 괜찮은 단편소설 하나 쓰기도 힘들다니까. 넌 소설가로 사는 재미가 어떠니? 소설 쓰는 동기 유발 같은 거 말이야.
--나도 너한테서 듣고 싶은 게 그런 거야. 그 어려운 소설 쓰는 동기가 뭐냐, 이거지.
--뭐, 나는 이것 때문에 소설을 쓴다, 하고 내세울 만한 건 딱히 없어. 다만 세상 사는 것이 별로 재미가 없어서 현실 세계에 없는 재미가 여기에는 있을까, 하고 기웃거리는 것 뿐이야. 넌 어떠냐고. 소설 쓰는 마음의 추진력 같은 것이 뭐냔 말이지.
--나도 나의 소설 쓰는 동기가 뭐일까 자문할 때가 많은데, 아마도 난 나의 뿌리 깊은 자존심에 밀려서 소설을 쓰는 거 같애.
--뭐, 자존심 때문에?
--그래, 난 자존심이 별나게 높은 사람인 거 같애. 학생 때 공부도 우등생이었고,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귀한 집 딸, 예쁜이로 잘 받들어 준 탓인 거 같애
--맞아, 넌 초등학교 때 우리끼리 공주님으로 통했던 거 기억나?
--그럼, 기억하고 말고. 그때, 학교에서 공주님 대우받았던 탓도 있을 거야. 그런데, 어릴 때부터 공주님 자존심이 따라다니던 여자, 이런 여자는 힘든게 많아. 자존심 강한 사람은 과부하 인생을 사는 거라. 해서는 안될 일들도 많고, 꼭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뭔가 보통 아닌 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하고 달라야 한단 말이지. 자존심 때문에 아무 직업이나 택하지도 못했어. 대학교수 목표로 1년만 더, 1년만 더 하다 보니까 지금 10년째 시간강사야.
--너네 집은 갑부였잖아. 꼭 직업을 가져야 되나. 전업작가, 얼마나 좋아.
--넌 모르고 있을 테지만, 그동안 우리 집은 폭삭 망해버렸어. 한때는 아버지 사업이 번창 일로를 달리다가 사업확장 꿈을 안고 과잉 투자하는 바람에 있는 재산 다 까먹고 건강까지 잃고 말았어. 나에게 남은 건 어린 시절 친구들이 심어준 자존심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난 집안이 망해서 창피한 것을, 역사에 남을 글쟁이라도 되어서 자존심 살리려고 했어. 그런 말, 들어봤을 거야. 승자는 역사를 쓰고 패자는 소설을 쓴다고 말이지. 패자가 된 억울함과 허망함을 견디지 못하니까 소설을 써서라도 자존심을 살리는 거지. 내가 이번 소협 행사에서 널 보고도 가까이 가지 못하고 짐짓 피해 다닌 건 너에게 나의 초라한 인생 드러나면 어쩌나 싶은 거지.
--친구 좋다는 거 뭐니. 무슨 얘기 해도 다 통하는 게 친구 아니냐고. 특히 어렸을 때 친군 더하지.
--고마워.
--그리고, 희망을 가져. 넌 대학 강단에서 소설 공부를 폭넓게 하고 있으니까, 대작이 곧 나올 거야. 소설가에게 중요한 건 뭐를 소재로 소설을 쓰느냐 하는 문제일 거 같애. 난 학교 선생밖에 해본 게 없으니까, 소설 소재가 빈약한 게 탈이야.
--나에겐 그런 걱정이 좀 적은 편이야. 우리 집 역사에서 소설 쓸 소재는 풍부하니까. 패자가 소설 쓸게 많다고 하지만, 과거 역사가 화려했던 패자일수록 소설 쓸 밑천은 많을 꺼 같애.
--뭐, 갑부 집안이 몰락한 역사를 말하는 거야?
--그래. 우리 아버진 자기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서 자수성가한다는 야심과 의욕으로 성공을 이루어 냈다고 해. 우리 어머닌 남편의 사업 성공에 대한 자만심이 너무 커서 남편의 사업 확대 야심을 부풀려 놓고 결국에는 집안 몰락이라는 불행을 가져온 거야. 가난한 집 딸이었으니까, 부자 남자와 결혼한 것이 벼락 부자된 심정이었겠지. 자만심이 허영심으로 이어진 셈이지. 난 우리 집안 자체에 작품 쓸 소재가 많으니까, 딴 직업을 기웃거릴 필요가 없을 거 같애. 자부심 강한 아빠와 자만심 강한 엄마, 여기에다가 자존심 강한 딸, 이런 인물들이 서로 얽혀들어 있는 거 얼마나 드라마틱하겠냐고. 인간의 성취동기는 자존심과 자부심과 자만심, 이런 거 아니겠어? 난 소설을 쓸 때 옛날 우리 집 세 식구에게 일어난 일들을 작품 속에서 재현하는 기분이 들어. 근데, 자부심이나 자만심에 비해서 자존심이 제일 난해한 테마인 거 같애. 자만심이나 자부심으로 말하면, 자기가 갖고있는 무엇인가에 대해 자만하고 자부하느냐에 따라서 그 출발점이나 도착점이 좌우되지 않겠어? 그렇지만 자존심은 달라. '그 사람은 무엇무엇에 대해 자만하고 자부한다'는 건 말이 되지만, '그는 무엇에 대해 자존한다'는 건 말이 안되잖아. 나 자신의 자존심이 너무 황당하여 요즘에는 유명 소설작품 속에 나타난 자존심 모티브 사례를 공부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잠깐, 우리 공주님이 지금 먹고 있는 것이 라면이라는 건 정말 뜻밖이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야. 나도 공주님 따라서 라면을 주문해야겠네.
--난 집에서도 라면이 주식이라서, 밖에 나와서도 이게 젤 마음에 들어. 시간과 돈을 절약하는 덴 최고인데, 맛도 좋거든. 오늘도 다른 사람과 같이 와서 라면을 먹기는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을 거 같아서 혼자 온 거야. 바다 냄새 섞인 라면 맛은 어떤 것인지 너도 한번 시험해 보라구. 자네 라면값은 내가 내줄게. 공주님 체신으로는 좀 안됐다만은.
--공주님, 감사합니다아.
식당을 나와서 숙소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김미량 작가가 한 말들을 곰곰이 되씹어 보았다.
우선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에 공주님 존대를 해준 것이 김미량의 생애에 일대 재앙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님 자존심이 대학교수의 자존심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나로서는 단조로운 중등학교 교사 자리도 적나라한 세상사 경험을 가로막는다고 생각되는데 이 같은 폐쇄성은 중등교사에 비해 대학교수 자리가 더 심할 것이 아닌가. 김미량 작가는 자존심이 자신의 소설 테마여서 그걸 소설 속에 재현한다고 했고 자부심이나 자만심하고 다른 점을 비교하였지만, 이같이 인생사를 도식화하는 것은 대학교수의 나태한 사고방식일 것이고, 그런 비교는 오히려 소설 쓰는 상상력을 옥죄는 족쇄가 될 것 같았다. 자존심 때문에 아무 직업이나 택하지 못하고, 대학 강단에 머물러있다니 그런 넌센스가 있나. 문학이론이나 소설작법이란 경직된 사고의 틀에 미리부터 갇혀있는 것이고, 넓은 바다에서 한 움큼의 물을 작은 컵으로 건져 올리는 격이 아닌가. 꽃 그림을 그리려고 들판으로 나가는 사람이 꽃의 색깔과 모양을 미리 작정하고 나가는 꼴이다. 그냥 아무 선입견 없이 처음 보는 꽃처럼 마주해야 될 것이 아닌가. 시장바닥에서 소설 소재를 찾아야지 남의 소설들 속에서 무엇을 찾는단 말인가. 문득 대학교수 치고 대단한 소설가가 된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이 떠올랐다.